“디지털 데이터로 사람 행동 예측 가능”
  • 김세원│편집위원 ()
  • 승인 2011.06.07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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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 바라바시 교수 인터뷰

▲ 지난 5월25일 서울Q디지털포럼에서 강연하는 바라바시 교수. ⓒSBS 제공

그림책 속의 점들을 차례로 이으면 버스가 되고 달팽이가 되는 어린 시절 ‘점잇기 놀이’의 추억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좀 더 자라 중·고교 수학 시간에 여러 점들을 붓을 떼지 않고 하나의 선으로 이어 그리는 ‘한 붓 그리기’를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점(노드)과 선으로 구성된 연결선(링크)이 수천~수백만 개가 모이고 이들의 상호 작용이 복잡하게 얽히면 복잡계(System of Complexity)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복잡계에서는 노드와 링크의 총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른바 허브(거점)가 생겨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세포의 구성부터 전염병의 전파까지, 항공 교통 노선부터 조직 내의 인간관계까지 세상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복잡계의 비밀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는 복잡계 네트워크의 구조를 규명해 무질서해 보이는 현상 속에서 질서를 찾고자 하는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인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 특훈교수(44)가 SBS가 주최한 서울디지털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 2002년 11개 국어로 번역·출간된 그의 저서 <링크 : 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테디셀러이다.

헝가리에서 태어나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바라바시 교수는 지난 5월25일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복잡계 네트워크로 본 디지털 세상: 우리의 행동 뒤에 숨겨진 비밀은?’을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은 물론 행사장에서 열린, 지난해 5개 국어로 출간된 그의 책 <버스트(Burst): 인간의 행동 속에 숨겨진 법칙> 사인회에도 수많은 청중이 몰려 그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행사가 끝난 뒤 그의 대표 저서인 <링크>와 <버스트>를 번역해 한국에 소개한 서울대 물리학과 강병남 교수와 함께 W호텔에서 바라바시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라바시 교수가 주창한 네트워크 이론은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 의학, 공학, 심지어 처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폭넓게 응용되고 있다.

어떻게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을 창안했나?

1999년 미국 노터데임 대학 물리학과 박사 후 과정 연구실에서 정하웅 현 KAIST 물리학과 교수와 재미 삼아 월드와이드웹(www) 연결망을 들여다보다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네트워크는 무작위로 이어진 연결망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월드와이드웹의 연결망을 실제 분석해보니 연결선(링크)들의 특정한 집중 현상이 나타났다. 링크들의 공통 분모라고 할 허브(거점)였다. 대부분의 데이터는 그 허브를 통해 연결되고 있었다. 월드와이드웹뿐만 아니라 인터넷, 분자 구조, 뇌신경의 연결 등 거의 모든 복잡계 네트워크가 허브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복잡계 네트워크의 구조와 역동성을 연구하는 프리스케일 네트워크 이론을 정립했다.

1990년대 말 할리우드 배우 케빈 베이컨이 할리우드의 다른 배우들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아본 ‘케빈 베이컨’ 게임이 전세계 언론에 풍미했다. 이 게임은 영화계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60억 인구 중 누구라도 국적, 지리적 거리에 상관없이 여섯 명만 거치면 연결이 된다는 이른바 ‘여섯 단계의 분리’ 원칙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데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과 어떤 관계가 있나?

1998년 와츠와 스트로가츠 연구팀이 <네이처>에, 모든 네트워크에는 지름길이 있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도 몇 사람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는 ‘좁은 세상 네트워크’ 모형을 발표해 과학계에 네트워크 연구 붐을 일으켰다. 케빈 베이컨 게임도 이것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에 앞서 1962년 헝가리 수학자들이 네트워크의 개념을 제시했다. 링크가 무작위적으로 발생하고 특정 확률로 연결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연결되는 노드가 있고 연결되지 않는 노드도 있을 것이다. 노드를 두 개씩 연결하면 링크가 생겨나고 링크가 생길수록 경로들이 구축되고 서로 융합되면서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네트워크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관계에 비유하자면, 네트워크의 링크가 무작위적으로 연결되었을 때는 한 사람의 친구 수가 평균과 가까운 프와송 분포를 따르게 된다. 여기서 월드와이드웹의 웹페이지를 노드, URL을 링크라고 보고 네트워크 지도를 그려보니 프와송 분포가 아니라 파울로드 분포를 따르고 있었다. 다시 말해 네티즌 개개인의 관심사가 완전히 제각각이라면 월드와이드웹에서 개별 네티즌의 친구 수는 평균적으로 일정할 것이고 네트워크 지도도 노드와 링크가 고르게 분포되어야 하는데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났다. 링크가 집중된 허브, 다시 말하면 소수의 마당발이 존재하고 있었다. 미국 내 항공 교통망 지도를 보면 복잡계 네트워크의 구조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서울디지털포럼 강연에서 인간의 행동도 예측할 수 있다고 발표했는데,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의 행동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가?

 자연과학의 목표는 대상이 무엇이든 데이터를 측정하고 계량화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경우는 계량화된 데이터가 없어 측정과 계량, 예측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사람들이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신용카드 등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여기서 얻어진 데이터가 서버 등에 대량으로 축적되면서 인간의 행동도 계량화해서 예측하는 것이 가능해지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 통신사들을 통해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트래킹이 가능해졌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위성 항법 장치(GPS)를 통해 스마트폰 이용자의 이동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해보았더니 지난 3개월 동안의 위치를 알면 93%의 정확도로 미래의 위치 예측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구 결과 80% 이하의 예측 가능성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이동성에 대한 우리 모두의 예측 가능성은 대동소이하며 5% 이내에서 차이가 날 뿐이다. 왜 그런가? 물론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반복적인 행동에 익숙해서 자유 의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동성은 하나의 사례이고 자연과학의 틀을 인간에게 적용해 인간의 다른 행동 양상도 예측할 수 있는가가 현재 내 관심사이다.

이번에 세계적인 과학 저널 <네이처>에 표지 논문을 등재했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인가? 

네트워크의 패턴(경향성)을 밝힘으로써 네트워크를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통계물리학으로 증명한 논문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이 모두 5천여 개가 되지만 차가 A에서 B로 이동할 때 필요한 것은 엔진, 페달, 핸들, 브레이크 등 몇 가지 특정 부품에 국한된다. 따라서 네트워크상에서 특정 허브만 통제하면 전체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복잡계 네트워크의 구조와 패턴에 따라 네트워크의 제어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분석했더니 예상치 못한 놀라운 연구 결과가 도출되었다. 복잡계 네트워크들은 나름의 패턴과 경향성을 갖고 있으며 네트워크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허브의 수는 생각보다 훨씬 적었다. 달리 말하면, 네트워크에서 허브가 어디인지를 파악해 허브를 장악하면 네트워크 전체를 제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는 사람들 간의 상호 작용이 무작위적·무차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통제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왔는데 소수의 마당발이 누구인지를 파악해 이들을 활용한다면 조직 전체를 쉽게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연구가 진행된다면 앞으로 전염병의 확산, 전쟁이나 테러 같은 재앙도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일반 네트워크와 복잡계 네트워크의 차이는 무엇인가?

복잡계 네트워크의 일종인 인터넷의 경우 특정 서버가 다운되어도 다른 부분은 작동한다. 또 다른 복잡계 네트워크인 인체의 경우에도 한 부분에 이상이 생겨도 움직일 수 있다. 반면 랜덤 네트워크나 레귤러 네트워크의 경우 어느 한 부분에 이상이 생기면 체계 전체가 붕괴된다. 차이는 허브의 존재에 있다. 인체, 인터넷, 월드와이드웹처럼 허브가 존재하는 프리스케일 네트워크는 자체적으로 일정하게 체제를 유지하려는 항상성, 붕괴에 대한 저항을 갖고 있다. 또 다른 프리스케일 네트워크인 항공 교통망의 경우에도 어느 공항이 무작위적으로 폐쇄되어도 공항의 수가 줄어들 뿐 전체가 마비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순차적으로 허브를 끊으면 붕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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