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행군’ 중인 재벌가 사위들
  • 조득진 기자 (chodj21@sisapress.com)
  • 승인 2011.06.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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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에 울고, 실적 부진으로 ‘전전긍긍’…“온실 벗어나 100% 경영 능력 펼쳐야 할 때” 지적
▲ (왼쪽부터 순서대로)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안용찬 애경그룹 생활·항공부문 부회장, 문성욱 신세계 I&C 부사장, 김재열 제일모직 사장,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 임우재 삼성전기 전무. ⓒ일러스트 찬희

비자금 1백60억원 조성 혐의 구속, 고객 1백75만명 정보 유출과 금융 당국 제재, 흑자로 돌아선 경쟁사와 달리 5년째 적자, 지주회사 자본 잠식과 그에 따른 계열사 지분 매각, 실적 악화와 세무조사설….  

2011년 들어 재벌가 사위들이 시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대그룹 총수인 장인·장모의 우산 아래 파격 승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하던 이들에게 급브레이크가 걸린 모양새이다. ‘누구 사위, 누구 남편’이라는 세간의 시기 어린 비판을 받아야 했던 이들로서는 지금이야말로 ‘재벌가 꼬리표’를 떼어내고 경영 능력을 보여주어야 할 때라는 것이 재계 안팎의 지적이다. 

고객 정보 유출 사태로 ‘공든 탑’ 와르르

“고객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겠습니다.”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이 지난 4월11일 고객 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발표한 사과의 말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둘째사위인 정태영 사장은 취임 이후 가장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4월 초에 발생한 현대캐피탈 해킹 사건에 대해 검사를 진행한 금융감독원의 징계 여부에 따라 거취가 결정되는 등 살얼음판에 오른 것이다. 금감원은 현대캐피탈 임직원들이 전자금융거래법 등 관련 법규에서 정한 전자 금융 사고 예방 대책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초유의 해킹 사고가 일어났다고 보고 현대캐피탈 법인과 임직원에 대한 징계를 제재심의위원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이 사건으로 현대캐피탈 고객 1백75만명의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정사장은 정몽구 회장의 둘째딸인 정명이 현대커머셜 고문의 남편이다. 서울대와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을 나와 1987년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한 그가 재계의 ‘스타’로 떠오른 것은 2003년 현대카드 사장에 취임하면서다. 파격적인 마케팅을 잇달아 선보이며 당시 바닥권이었던 현대카드를 4년 만에 상위권 업체로 올려놓는 경영 수완을 보였다. 올해 들어 정사장 부부가 현대커머셜 지분을 대거 사들이자 현대·기아차그룹의 금융 부문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해킹 사건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금감원은 7월 안으로 제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현대캐피탈에 대한 조치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당초 알려진 것보다 많은 고객 정보가 유출된 이번 현대캐피탈 해킹 사건 탓에 금융권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추락한 것이 사실이다. 금융계 안팎에서는 현대캐피탈과 임직원에 대해 중징계가 내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해임 권고(면직), 직무 정지(정직), 문책 경고(감봉), 주의적 경고(견책), 주의 조처가 금융 감독 당국이 금융회사 임직원에게 내릴 수 있는 제재이다. 이 가운데 문책 경고 이상의 중징계가 내려질 경우 정사장은 향후 3년 이상 금융회사의 임원을 맡을 수 없다. 2014년 3월까지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금융계열사 경영권을 쥘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수익도 존재감도 ‘내리막길’

동양그룹의 두 사위도 ‘좌불안석’이다. 딸만 둘을 둔 동양그룹 창업주 이양구 회장이 작고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룹의 지휘를 맡은 맏사위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실적 부진으로 그룹 계열사 지분을 내다파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둘째사위인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은 1백6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지난 5월26일 구속되면서 집안 전체가 궁지에 몰려 있는 상태이다.

현재현 회장은 부산지검 검사 출신으로, 고 이양구 회장의 장녀인 이혜경 동양레저 부회장과 결혼한 이후 장인의 부름을 받고 법조인에서 경영자로 옷을 갈아입었다. 1988년 동양그룹 회장에 오른 현회장은 외환위기 당시 그룹의 금융 부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과감한 구조조정과 혁신을 통해 위기를 견뎌냈다. 2009년에는 생보업계 최초로 동양생명을 상장시키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그의 시련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해 그룹 지주사 격인 동양메이저가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지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그룹 몫의 동양생명 지분 약 50% 중 46.5%(9천억원)를 보고펀드에 매각했다. 이와 함께 그룹의 창원·대구 땅(6백40억원), 동양시멘트 전환사채(1천5백억원)를 매각했다. 현회장은 이를 통해 자금난에 숨통을 틔우고 경영이 안정 궤도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동양메이저는 여전히 ‘밑 빠진 독’이다. 건설업 불황으로 건설, 레미콘과 건자재 등 주력 사업이 내리막길이다. 그 사이 2001년 재계 서열 17위였던 동양그룹은 10년 만에 39위로 내려앉았고, 현회장의 주식 또한 건전성이 크게 떨어졌다. 지난 4월 재벌닷컴 등에 따르면, 현재현 회장의 주식 담보비율은 83.8%이다. 담보 제공 주식은 의결권 제한을 받지 않아 경영권 행사에는 당장 문제가 없지만,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어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주식이라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2001년 동양그룹에서 독립해 오리온그룹을 만든 담철곤 회장은 제과 사업을 바탕으로 외식, 케이블TV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며 2001년 7천6백67억원에 불과했던 오리온그룹의 매출액을 두 배까지 끌어올린 인물이다. 최근에는 유통과 금융 등의 신규사업 진출을 모색하며 그룹 확장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무리한 확장은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최측근을 통해 총 1백60억원의 비자금 조성을 지시하고, 조성된 자금을 유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담회장이 고급 빌라 신축 비용 허위 작성, 위장 계열사 인수, 급여와 퇴직금 허위 작성, 미술품 구입 등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건·사고는 없지만 좀처럼 오르지 않는 수익 탓에 전전긍긍하는 재벌가 사위들도 많다. 애경그룹의 안용찬 생활·항공 부문 부회장과 신세계그룹의 문성욱 신세계I&C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맏사위인 안용찬 부회장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제주항공의 연속 적자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대한항공 자회사 진에어가 지난해 출범 3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아시아나항공 계열사인 에어부산 역시 손실에서 탈피하는 등 국내 저가항공사들이 실적 ‘턴어라운드’를 했지만 저가항공사의 맏형 격인 제주항공은 초라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지난해 60억원의 영업손실과 1백11억원의 순손실 상태로 출범 이후 5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딸 채은정씨의 남편인 안부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에서 MBA를 마친 후 1987년 애경에 입사했다. 1995년 애경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후 그룹을 구조조정하는 것과 함께 10년 연속 흑자 달성 등 탁월한 경영 능력을 보여준 그는, 2006년 애경그룹의 생활·항공 부문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계열사인 제주항공을 맡았다.

제주항공의 실적 악화가 재무 구조 부실로 이어지면서 2007년 6백67억원 수준이었던 총 차입금이 2009년에 9백70억원으로 증가했다. 차입금 의존도 역시 2007년 70%에서 2009년 83%로 치솟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주항공은 애경그룹의 차세대 신성장 동력이다”라고 밝혀온 안부회장으로서는 차입금 상환과 흑자 전환이 발등의 불인 셈이다. 결국 안부회장은 지난해 제주항공이 보유한 비행기 네 대를 매각했다. 매각한 자금으로 차입금을 일부 갚았지만 증권가에서는 제주항공의 재무 구조가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 재무 구조가 안정된 후 3분기 연속 이익을 실현했다. 올해 목표한 2천100억원의 매출과 75억원의 영업이익 달성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재계의 대표적인 사위 경영인
  관계 최근 경영 상황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62)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 맏사위 지주사 격인 동양메이저 자본 잠식 상태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56)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 둘째사위 160억원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
정태영 현대카드·캐피탈 사장(51)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둘째사위  4월 현대캐피탈 해킹 사건으로 징계 예상 
안용찬 애경그룹 부회장(59)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 맏사위 제주항공 5년째 적자(저가항공사 중 유일)
문성욱 신세계I&C 부사장(39)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사위 실적 악화와 세무조사설
임우재 삼성전기 전무(43)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맏사위 기업 내 영향력·존재감 미미
김재열 제일모직 사장(43)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둘째사위 경영성과 검증 없는 과도한 승진 구설수

 


편법 증여·초고속 승진 등 대가 치르는 듯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사위인 문성욱 신세계I&C 부사장 또한 실적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35억6천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1%나 줄어들었다. 신세계I&C는 IT솔루션 및 인터넷 쇼핑 등 첨단 사업을 하는 코스닥 상장 법인으로, 업계에서는 향후 신세계그룹의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주목하고 있는 무선 주파수 인식 기술(RFID) 및 모바일 등과 같은 미래형 전략 사업을 주도할 것으로 보고 있다. 1972년 서울 출생인 문부사장은 소프트뱅크코리아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던 지난 2001년 초등학교 동창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과 결혼했다.

최근 신세계건설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도 문부사장에게는 부담거리이다. 국세청은 지난 4월 중순부터 신세계건설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에 대한 통상적인 정기 세무조사이다”라는 것이 신세계그룹 관계자의 말이지만 재계에서는 신세계그룹의 다른 계열사로 확대될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2006년 재벌 2세 편법 증여 논란 속에 심층 세무조사를 받은 신세계와 신세계I&C에 대한 세무조사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두 사위는 명암이 엇갈리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 3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둘째사위인 김재열 제일모직 부사장이 3개월 만에 제일모직 경영기획 총괄 사장으로 승진한 반면, 맏사위인 임우재 삼성전기 전무는 승진 명단에서 빠졌다. 삼성그룹은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한 빙상연맹회장에 입후보한 데에 따른 예우 차원이다”라고 밝혔지만 ‘형님’을 누르고 82일 만에 초고속 승진한 ‘동생’을 두고 세간에는 추측들이 난무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 사장과 김사장은 중학교 동기동창이다. 향후 그룹을 책임질 이사장의 측근으로 누가 더 적합한지 오너는 고민했을 것이다. 임우재 전무가 갖지 못한 언론계·경제계의 끈을 김재열 사장은 갖추고 있다”라고 말했다. 임전무는 삼성물산 평사원 출신이고, 김사장은 고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재계에서는 앞으로도 대기업의 ‘사위 경영’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재벌 오너들이 믿고 경영을 맡길 수 있는 인재풀이 한정되어 있는 데다, 재벌가 사위들 또한 해외 유학 등을 통해 기본적인 경영 마인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재벌가 사위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실적 상승, 이를 바탕으로 한 초고속 승진 등 온실을 벗어날 때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세간의 곱지 않은 시선을 극복하려면 100% 경영 능력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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