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최후 보루’ 대구마저 뒤집혔다
  • 김회권 기자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11.06.0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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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의 표심이 수상하다. 한나라당의 아성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지역에서도 민심 이반 현상이 노출되었다. 대구 시민의 48.5%가 내년 총선에서 야당 후보를 찍겠다고 응답한 것이다. 여당 후보 지지율보다 8.6%포인트나 앞선 수치이다. <시사저널>이 연속 기획으로 실시하고 있는 권역별 민심 조사 세 번째 대구·경북 지역의 결과를 공개한다.

ⓒ시사저널 유장훈

초비상이다. 여권의 ‘마지막 보루’인 대구마저 무너졌다. <시사저널>이 부산·울산·경남, 충청·강원, 호남·제주에 이어 실시한 대구·경북(TK) 지역 민심 여론조사에서 대구 시민들의 48.5%가 내년 4월 총선에서 야당 후보를 찍겠다고 답했다. 비록 오차 범위(±4.4%p) 내에 간신히 들어가기는 했지만, 여당 후보 지지율(39.9%)보다 8.6%포인트나 앞섰다.  

지난 5월15일 대구에 있는 경북도청 주차장은 경북 각지에서 올라온 차량으로 가득 찼다. 도청 앞 광장은 펄럭이는 현수막과 풍선, 피켓 등으로 어지러웠고 사람들은 북적댔다. 약 5천명의 대구·경북(TK) 지역민들은 초여름 날씨의 뙤약볕 속에서도 한껏 달구어진 아스팔트 위를 지켰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문제 때문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과학벨트 원점 재검토 발언 이후 경북은 사활을 걸고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규탄대회 다음 날인 5월16일, 정부는 과학벨트를 대전 신동·둔곡 지구로 확정했다. TK로서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에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물을 먹은 셈이었다.

“결국 충청에 줄 것이면서 왜 다른 지역을 이리저리 찔러보고 다니나. 괜히 TK가 이기적이라고 욕만 먹게 만들었다. 차라리 해줄 수 있다는 말이라도 안 하면 우리도 안 나설 것이고 욕이라도 덜 먹었을 것이다.” 경북도의회의 한 도의원은 정부의 우유부단함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 소속의 한 대구 시의원은 기자에게 ‘소백산·추풍령 너머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라는 피켓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 현수막이 우리 마음 그대로이다. 애초부터 공약대로 충청권에 설치했으면 잠깐 서운하고 말 일인데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것처럼 하더니 결국 다시 대전으로 가면서 추풍령 아래 사람들의 서운함이 커졌다”라고 말했다.

TK 지역은 한나라당의 텃밭이다. 지난 2007년 12월 대선에서 대구는 과반수가 훨씬 넘는 69.4%, 경북은 72.6%의 지지율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현재 대구 12곳, 경북 15곳의 지역구 중 단 한 곳만 제외한 26개 지역구를 한나라당 의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한 곳도 친박을 표방한 무소속 정수성 의원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한나라당이 전 지역을 석권하고 있다. 그런 대구·경북이 여권에 실망하고 있다. ‘MB 심판’ 혈서까지 등장했다.

경북보다 대구에서 여권에 대한 반감 높아

<시사저널>은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와 함께 들끓고 있는 대구·경북 지역 민심을 살폈다. 지난 5월28~29일 이틀간 대구·경북 지역의 주민 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면접조사 결과이다.

 

먼저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여부를 물었더니 ‘잘하고 있다’라는 긍정 평가가 51.9%를 기록해 ‘잘못하고 있다’라는 응답(45.5%)을 근소하게 앞섰다. 하지만 오차 범위(±4.4%p) 내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가 지역별·연령별·소득별로 확연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지역별로는 긍정적 평가가 많은 경북(55.5%>41.2%)과 달리 대구는 부정적 평가(50.2%)가 긍정적 평가(41.2%)보다 높게 나타났다. 연령별 차이도 확연했다. 20대(47.1%<48.6%)·30대(37.8%<60.1%)·40대(44.2%<54.6%)에서는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보다 높게 나타났다. 자영업자(44.5%<55.5%)와 화이트칼라(40.5%<57.7%)들도 부정적이었다. 국정 운영 평가를 놓고 볼 때 과연 이곳이 한나라당의 텃밭인 TK 지역이 맞나 싶을 정도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TK 지역 사정은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그대로이다’라는 답변이 51.5%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나빠졌다고 생각하는 지역 주민이 34.7%로 ‘나아졌다’라고 생각하는 응답(13.6%)의 두 배를 훌쩍 넘었다. 특히 대구 지역 주민들은 43.3%가 나빠졌다고 대답해 지역 경제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MB 정부에 대한 TK 지역의 부정적 평가가 예사롭지 않은 부분은 바로 내년 양대 선거에 대한 표심에서 분출된다. ‘내년 4월에 있을 총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여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48.9%로 ‘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라는 응답(40.3%)보다 높게 나왔다. 여야 간 지지율 차이가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눈여겨보아야 할 곳은 ‘대구’이다. 대구는 1인당 지역 내 총생산 조사에서 17년째 전국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과거에는 서울·부산·대구로 묶여 3대 도시로 불렸지만 지금은 인천과 대전, 울산의 발전상을 바라보고만 있는 실정이다. 최근의 국책사업 유치 실패는 현 정권에 대한 실망감으로 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대구에서는 ‘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라는 응답이 48.5%를 기록해 ‘여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39.9%)보다 높게 나타났다. 민심이 변할 수 있다는 신호이다. 연령별·직업별·소득별 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한나라당이 TK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대(34.1%<55.9%), 30대(36.8%<46.2%), 40대(40.0%<51.2%)에서 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이 오차 범위를 훌쩍 넘어서며 우세하게 나타났다. 소득이 높을수록 야당 후보를 찍겠다는 대답이 많았고 자영업(35.0%<44.6%), 화이트칼라(38.7%<52.9%), 학생(36.5%<50.2%) 층에서도 야권 지지가 확연히 우세했다.  

지역별·연령별·직업별 등으로 쪼개서 볼 경우 응답자 수가 적어지기 때문에 이번 여론조사의 ±4.4%포인트보다 넓은 오차 범위가 생긴다.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의미 있는 결과라는 지적이다. 이번 조사를 수행한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실망감이 일정 부분 나타나고 있다. 광역시인 대구의 경우 학력 수준도 높고 젊은 층도 많아 경북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오차 범위를 감안하더라도 여야 간 격차는 전반적으로 줄어들었다”라고 말했다. 

 
정당 지지도는 여전히 한나라당이 압도적

‘TK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는 예상대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39.9%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경북의 한 지역 언론인은 “TK 지역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신뢰는 강고한 편이다. 특히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일수록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가 강한 측면이 있다. 의외로 노년층 못지않게 중·장년층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세가 지역에서 높다”라고 말했다.

그에 비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3.2%의 지목률로 5위에 그쳤다. 이대통령의 고향이 비록 경북 포항이지만 TK 주민들은 그를 지역 정치인으로 보지 않는 것 같다. 김관용 경북도지사(7.1%), 박정희 전 대통령(5.8%)이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대구 수성구가 고향인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야권 유력 정치인임에도 이대통령보다 앞선 4위(3.3%)에 오른 점이 이채롭다.

‘현재 TK 지역 현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물가 문제’라는 응답이 24.1%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실업(일자리) 문제’(20.3%), ‘서울·수도권과의 격차 문제’(11.4%), ‘교육 문제’(8.7%), ‘지역 개발 문제’(8.6%) 등이 따랐다. 대구에서는 ‘실업(일자리) 문제’를 지목한 사람이 가장 많았지만, 경북에서는 ‘물가 문제’를 지목한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정당 지지도에서는 한나라당이 59.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나타내 여전히 TK 지역이 텃밭임을 입증했다. 민주당은 11.5%, 자유선진당은 3.5%를 얻었다. 민주노동당(3.0%)과 국민참여당(2.5%)이 그 뒤를 이었고 ‘무응답’은 18.9%였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문제’도 아니었다. ‘과학벨트 유치 실패’도 아니었다. TK 지역 주민들에게 ‘지역 현안 가운데 앞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이슈는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니 ‘4대강 사업’이라는 대답이 맨 먼저 돌아왔다. 26.2%의 지목률이었다. 그 뒤를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20.3%), 대구·경북 지역 홀대론(13.1%),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무산(8.9%)이 뒤따랐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지목률은 경북(30.0%)에서 높았고 20대(32.8%), 화이트칼라(30.7%)와 학생층(36.6%)에서 높았다.

최근 TK 지역은 ‘4대강 사업’을 둘러싸고 진통을 앓고 있다. 우선은 ‘단수 문제’가 있었다. 지난 5월8일 구미 해평취수장의 가물막이 보가 유실된 뒤 구미 시민들은 어이없는 단수 사태를 겪어야 했다. 금방 해결될 줄 알았던 단수는 4일간이나 계속되었고 구미 시민들은 ‘물 전쟁’을 치러야 했다. 세수도, 화장실 사용도, 빨래도 할 수 없었다. 구미 출신인 한나라당 김성조 의원은 “대표적 4대강 사업 찬성 지역이던 구미에서 이번 단수 사고로 여론이 1백80˚ 돌아섰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는 지역 경제와 관련된다.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은 2009년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일자리 34만개, 생산 유발 효과 40조원이 발생하는 기회이다”라며 지역민들의 기대감을 부풀게 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이 마무리되어가는 현재 시점에서 따져 보니 지역 경제가 받은 혜택은 거의 없고 오로지 대기업들만 잔치를 벌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하도급 공사를 지역 업체에게 준다고 해도 하청에 재하청을 하면 얼마나 남겠나. 오히려 낙동강을 끼고 생활하는 골재 채취업자나 운송업자, 어민 등이 받은 고통이 더 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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