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고령화 그늘에 혈액암이 커가고 있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6.15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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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동안 발생 건수 50배 증가…의사들 “사회 문제 될 것”

 

▲ 혈액암 환자가 의사의 진단을 받고 있다. ⓒ길병원

 

주부 김옥자씨(가명·65)는 몇 년 전부터 허리와 다리에 통증을 느꼈다. 최근에는 어깨를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심해졌고, 빈혈 증세도 느꼈다. 진단 결과 혈액암(다발성 골수종) 3기로 판정 났다. 이처럼 최근 혈액암이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조혈모세포이식센터는 혈액암 환자가 2000년 2천9백명에서 2008년에는 5천5백명 이상으로 두 배가량 늘어났다고 밝혔다. 특히 노인들에게 늘어나고 있어 고령화 시대에 큰 사회 문제로 대두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이재훈 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다발성 골수종이라는 혈액암이 최근 급격히 늘어났다. 지난 30년 동안 이 암은 50배 이상 증가했다. 사망률은 25년 사이에 33배나 증가했다. 모든 암이 평균 2.3배 증가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 폭이다. 고령화 시대에 이 암이 생명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 자료를 보면 다발성 골수종 진단을 받는 사람은 연평균 1천1백38명이며, 이 가운데 7백74명이 숨지고 있다. 2010년 현재 환자 수는 5천명에 이른다. 60대가 35.5%로 가장 많고, 70대가 26.1%, 50대가 22.1%의 순이다. 

“위험 물질이 원인” 추정…뼈에 심각한 손상

다발성 골수종은 혈액암이지만 뼈에 심각한 손상을 준다. 10명 중 7명은 뼈에 통증을 느끼는데, 척추와 갈비뼈 통증이 흔하다. 암세포로 인해 뼈가 녹아내리기도 하므로 나이에 맞지 않게 심한 골다공증이 생긴다. 작은 충격에도 뼈가 잘 부러진다. 또, 환자 네 명 중 한 명은 신장이 붓거나 소변량이 감소하는 등의 장애를 경험한다. 혈액 속의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면서 환자의 80%가 빈혈을 느낀다. 면역력이 떨어져 폐렴과 요로감염과 같은 감염질환에 자주 걸리는 증상도 일반적이다. 엄현석 국립암센터 조혈모세포이식실장은 “뼈 통증으로 정형외과, 신장 이상으로 신장내과, 빈혈 증세로 내과를 찾아 여러 가지 진단을 받다가 이 암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50대 이상에서 이유 없이 뼈에 통증을 느끼거나 자주 감기와 같은 감염질환으로 고생하거나 빈혈 증세를 느낀다면 한 번쯤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일반 건강검진으로 이 암을 발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암은 혈액과 소변검사로 진단한다. 이 암세포가 분비하는 특정 물질(M-단백)을 측정하는 것이다. 또 CT, MRI 등으로 뼈를 촬영하고 골조직도 검사한다. 확진되면 항암제로 치료한다. 완치는 어렵다. 하지만 최근 효과적인 치료제가 나오고 있다. 과거 생존 기간이 3년 이하에서 6~7년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 암이 늘어난 첫번째 이유는 나이이다. 과거보다 오래 살게 되면서 이 암에 걸리는 사람이 늘어난다. 또 다른 원인은 위험 물질에 노출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최근 이슈가 된 방사능, 다이옥신(고엽제), 벤젠, 포름알데히드 등이 대표적이다. 혈액암 전문가들이 다발성 골수종을 흔히 ‘산업화와 고령화 사회의 그늘’이라고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방사능, 중금속, 제초제, 살충제 등에 노출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예방법이다. 김철수 인하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미국 네브래스카 주는 밀·콩·옥수수 농업이 발달했다. 이 지역에서 사용하는 농약 양에 비례해 농부들의 혈액암도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러나 어떤 특정 물질이 암을 일으키는지는 앞으로 연구를 통해 밝혀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2010년 한 해 동안 2만명이 이 암에 걸렸다고 한다. 인구를 고려해도 한국보다 네 배 많은 수치이다. 전문의들은 서구화된 생활 습관도 혈액암이 늘어나는 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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