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독재자’의 속 보이는 모험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6.15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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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시위대, 이스라엘군과 ‘유혈 충돌’…반정 시위 관심 돌리려는 시리아 정부의 의도 작용한 듯

이스라엘군은 일요일인 6월5일 골란 고원의 이스라엘 국경을 침범하려던 친(親)팔레스타인계 시리아 시위대에 발포했다. 이 사건은 3주 만에 일어난 세 번째 충돌로 시리아 내 반정 시위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회담 교착 등이 혼재된 복잡한 정치적 배경을 상징한다.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는 1967년 강탈한 점령지로부터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요구하는 군중 시위를 조장하고 있고, 시리아는 국내 소요에 대한 초점을 반(反)이스라엘로 돌리기 위해 이스라엘 국경에서의 시위를 조장, 또는 묵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랍 세계의 민주화 봉기는 이스라엘과 아랍 세계의 대결로 변질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와 때를 같이해 시리아의 반정 시위는 바샤르-알 아사드 대통령 정권의 붕괴를 예고하는 상황으로 악화되고 있어 향후 전망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국면이다.  

시리아 내 난민촌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과 시리아 시위대는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골란 고원 국경으로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이스라엘군은 국경선 월경을 시도하는 시위대에 발포했다. 시리아의 사나 통신은, 이 발포로 22명이 죽고 3백50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사상자에 대한 자체 정보는 없으나 시리아의 주장은 과장되었다고 말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충돌은 1973년 골란 고원 전쟁 이래 최악의 유혈 충돌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심상치 않다. 이보다 약 3주 전인 5월15일에도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인 및 시리아인 시위대가 1967년 중동 전쟁 기념일에 맞춰 시리아, 가자 지구, 레바논, 웨스트 뱅크 4개 전선의 이스라엘 국경에서 대규모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이다가 이스라엘군의 발포로 15명이 죽었다. 

▲ 지난 6월5일 이스라엘 골란 고원 인근 시리아 내 난민촌에서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을 향해 돌을 던지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연합

이번 시위에서는 지난번과는 달리 레바논과 가자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정부가 중립적 입장을 취해 아랍 내부의 미묘한 내분을 암시했다. 반이스라엘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시리아 정부는 이스라엘 국경으로 몰려가는 수천 명의 시위대를 제지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국내 반정 시위에 대한 관심을 이스라엘로 돌리려는 계산된 행동이라고 분석했다. 시리아 시위대는 이스라엘의 발포를 유발함으로써 아랍에서의 반이스라엘 감정을 부추기려 하고 있다. 아울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이 교착된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발포로 인한 유혈 사태가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적 압력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것이 시리아의 계산이다. 이들은 특히 이스라엘군이 무장하지 않은 평화적 시위대에 발포한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시리아 국영 TV는 이스라엘군이 발포한 사실을 되풀이해서 방영했다.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긴급 각료회의에서 ‘극단주의 분자들’이 이스라엘 국경 와해를 시도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이스라엘은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하되 어떤 상황에서도 이스라엘의 주권을 사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스라엘군은 경고 방송을 하고 공포탄을 쏘았지만 시위대가 이를 무시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발포했다고 말했다.

 1967년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로부터 골란 고원을 빼앗은 이후 양국 관계는 이론상으로는 전쟁 상태이지만 국경은 지난 37년간 조용했다. 따라서 시리아가 악화되는 국내 소요와 때를 같이해 반이스라엘 시위대의 활동을 묵인하는 배경에 정권 유지를 위한 아사드의 몸부림이 깔려 있다는 추측이 나온다. 이스라엘은 67년 전쟁 때 웨스트뱅크, 가자 지구,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이번 시위는 이때의 패배를 기념한다는 구실로 시작되었으나 궁지에 몰린 아사드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조직했다는 의심이 짙다. 아사드는 3월 중순부터 시작된 반정 시위를 탱크와 무장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무자비한 진압을 했다. 현재까지 1천2백여 명이 사망했다.

시리아 정부군의 잔혹한 시위 진압도 계속

▲ 지난 5월13일 터키에서 시위대가 시리아 대통령 부자의 사진을 불태우고 있다. ⓒEPA 연합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1967년 이전 국경으로 환원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안을 제시했으나 이스라엘은 자국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1967년 이전 국경으로 돌아가면 이스라엘을 “방어할 수 없다”라는 것이 네타냐후의 입장이다. 프랑스는 최근 다음 달 파리에서 양측 평화협상을 개최하자고 제의했다. 팔레스타인은 이를 수락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이스라엘의 거부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한편 뉴욕타임스는 ‘무장 갱’들이 6월6일 터키 국경 인근의 시리아 마을에서 1백20명의 시리아 보안군과 민간인을 사살했다는 시리아 정부의 발표를 전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부에서 이탈한 시리아군과 친아사드군 간에 교전이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시리아 사태가 전환점에 왔다는 신호로 간주된다. 한 반정 단체는 아사드 대통령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 세력이 이 사건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시리아 국영 방송은 이스라엘군과 극단 분자들이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부 반정 단체들은 조만간 시리아 정부군과 반정 단체들 간에 유례없는 교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보안군이 정부에서 이탈해 반정군에 가담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한 정치평론가는 시리아가 ‘화약고’로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리아 정부군 간에 충돌이 발생한 이 마을은 40년 전 아사드 대통령 일가가 소수 수니파 부족 1만명을 죽이고 집권 기반을 마련한 역사적 장소로 이곳에는 아사드에 대한 원한이 깊게 서려 있다. 시리아군은 6월5일에도 이곳에서 반정 시위를 벌이던 주민 38명을 사살했다. 이 진압 작전에는 처음으로 무장 헬리콥터가 동원되었다. 정부군은 이 마을에 전기와 수도를 끊고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수송하지도 않았다. 반체제 인사들은 정부군의 만행을 목격한 마을 주민 전원이 반정 폭동에 가담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리아군은 이 밖에도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중부와 남부의 여러 도시에 탱크를 진입시켜 잔혹한 진압을 계속했다. 최근 수일 동안 이 지역에서만 96명이 죽었다. 사망자가 1천명 이상으로 늘어나자 아사드에 대한 사임 압력도 가중되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워싱턴에서 기자들에게 아사드가 권좌에 남을 명분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사드가 개혁을 하려 한다면  자신이 개혁의 장애물임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고 말해 간접적으로 사임을 압박했다. 클린턴 장관은 시리아 사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려는 서방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에도 동참을 호소했다. 시리아 재야 단체들은 터키의 휴양 도시에서 2일간의 전략회의를 열고 아사드를 추방하고 민주적인 시리아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 대다수는 아사드의 독재를 피해 탈출한 망명 정치인들이었지만 최근 반정 시위를 주도한 사람들도 일부 참가했다. 

40년째 시리아를 철권 지배하고 있는 아사드는 일부 외국 음모자들이 시리아를 해체하기 위해 소요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가 악화되자 ‘국민대화위원회’를 만들어 개혁과 대화를 시도하는 척하고 있으나 정부군의 유혈 진압이 계속되면서 그의 다짐은 허구로 드러나고 있다. 한 반체제 인사는 “자유는 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아사드와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반이스라엘 시위에 동조하던 팔레스타인은 일요일 시위에서 돌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시리아와 거리를 두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런 태도는 프랑스가 제의한 평화회담에 솔깃한 반응을 보인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팔레스타인은 시리아의 내정에 휘말려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무산시키지 않으려는 눈치가 역력하다. 팔레스타인으로부터도 버림을 받고 이스라엘과의 의도적인 충돌을 통해 위기를 모면하려는 아사드의 도박은 중동에 엉뚱한 긴장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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