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반값 등록금 정책 믿을 수가 없다”
  • 정락인 기자·이규대·한수연 인턴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1.06.15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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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액 등록금에 휘청이는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 촛불을 치켜들고 있다. <시사저널>은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 위해 서울 시내 사립대학들을 찾아가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대다수 학생이 현재의
▲ 지난 6월10일 저녁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한 촛불 집회가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대련·시민단체·정당 대표 등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시사저널 유장훈

올해 대학 3학년인 정유미씨(여·22)는 시중 은행에 9백7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두 학기의 등록금을 내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은 금액이다. 이런 추세라면 정씨는 졸업할 때까지 약 2천만원의 빚을 떠안아야 한다. 이 돈은 정씨가 졸업 후 10년 동안 갚아야 한다. 더 딱한 사연도 있다. 한 남자 대학생의 이야기이다. 김해환씨(가명)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김씨 가족의 유일한 수입은 어머니가 일용직으로 벌어오는 돈이 전부였다. 그런데 김씨 어머니에게 사정이 생겨 고정 수입이 끊겼다.   

김씨는 은행에서 빌린 학자금의 상환 기일을 넘겼고, 그때부터 은행의 독촉 전화에 시달렸다. 결국 신용불량자 신세가 되었다. 김씨는 도피처로 군 입대를 선택했다. 그런데 그에게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2년 후 복학 절차를 밟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사이 등록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 빌린 학자금도 아직 갚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다. 그렇다고 1천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감당하기에는 주위 여건이 너무 안 좋았다. 그는 복학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김씨의 생활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좋은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할 수 없이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매달 학자금을 갚고 있다. 대학 등록금 때문에 대출을 받았고, 그것으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었으며, 복학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김씨는 빌린 학자금을 계속 갚아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다. ‘등록금 1천만원 시대’ 대학생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대표는 “학자금을 빌린 대학생 대다수는 1학년 때부터 빌린다. 금액이 많다 보니 상환 기간을 아무리 길게 설정해도 한 달에 40만~50만원은 갚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언제부터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올랐을까. 1989년 노태우 정권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대학 등록금 자율화 정책을 발표했다. 대학 교육을 시장 원리에 맡기고 등록금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그 이후 대학 등록금이 춤추기 시작했다. 급기야 등록금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을 앞섰다. 대학들은 살을 찌웠지만 학생들은 빚더미에 눌리기 시작했다. 이를 참지 못한 대학생들이 해마다 3월이면 거리로 나섰다. ‘미친 등록금’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등록금을 내려달라”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대학들은 보란 듯이 등록금을 올렸다.

서울 청계광장에는 꺼졌던 ‘촛불’이 다시 피어올랐다. 그 숫자가 점점 불어나 연일 불야성을 이룬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연예인도, 학부모들도 촛불을 들었다. 학생·시민들은 ‘반값 등록금’을 외치고 있다. 시민단체와 노동조합들도 ‘반값 등록금 지지’를 표시하고 있다. 국민의 약 90%가 반값 등록금을 지지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지금 대학생들의 성난 분노를 막는 것은 ‘반값 등록금’을 시행하는 것뿐이다. 청계광장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우리들의 분노가 분출했다. ‘반값 등록금’을 쟁취하지 않으면 물러나지 않겠다”라며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도대체 대학 등록금이 어느 정도이기에 그러는 것일까. <시사저널>은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 6월8일 서울 시내 다섯 개 사립대학(연세대, 서강대, 중앙대, 홍익대, 명지대)의 강의실과 캠퍼스를 찾아 대학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총 4백명(남자 2백16명, 여자 1백81명, 3명은 표기 안 함)이 조사에 응답했다. 복수 응답도 포함시켰다. <시사저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6월9일에는 고려대, 이화여대, 서울시립대, 경희대, 한국외대 캠퍼스를 찾아가 ‘반값 등록금’에 대한 대학생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대학생들이 생각하고 있는 등록금의 체감 온도는 역시 높았다. ‘현재의 대학 등록금에 대한 생각’을 묻자, 전체 94%(3백76명)가 ‘비싸다’라고 대답했다. ‘싸다’는 대답은 1.8%(7명)에 불과했다. ‘적정하다’는 2.8%(11명)였다.  

현재의 등록금을 어느 정도까지 인하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학생들의 41%(1백59명)는 ‘50% 이내’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반값’은 되어야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다음으로 ‘30% 이내’가 36.1%(1백40명)였고, ‘70% 이내’라는 답변도 17.5%(68명)나 되었다. 반면 ‘10% 이내’라고 답변한 대학생은 2.6%(10명)에 불과했다.

이종혁씨(홍익대 기계과 2학년)는 “최근의 반값 등록금에 대한 목소리는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무엇보다 학교의 예산 집행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값 등록금’은 이명박 대통령이 던진 부메랑이다. 이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주요 공약으로 ‘반값 등록금’을 내걸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며 ‘공수표’로 만들었다. 대학생들은 여기에 더욱 반발하고 있다. 이대통령의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어서 ‘약속 이행’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에도 그대로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등록금 반값 공약에 대한 생각’을 묻자 82.6%(3백22명)가 ‘지켜야 한다’라고 답변했다.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은 4.4%(17명)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대학생 10명 중 8명이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가타부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대신 한나라당이 ‘소득 계층 하위 50% 이하, 평균 B학점 이상인 대학생에게만 혜택’을 주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등록금 책정에 학생 의견 반영 안 돼” 61.5%

박연주씨(경희대 호스피탈리티경영학부 1학년)는 “‘반값 등록금’은 이명박 정부의 공약이었다. 이를 실천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관철하는 것은 곤란하다. 예를 들어, 등록금을 줄이는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지원액도 함께 줄어든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나. 좀 더 현실적인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야당인 민주당도 나섰다. 민주당은 등록금 문제를 가장 시급한 민생 문제라고 규정했다. 국·공립대에 재정을 지원해 사립대의 등록금 인하를 유도하는 내용으로 단계별로 등록금을 인하하겠다는 것이 골자이다. 손학규 대표는 대학 총장들과 ‘반값 등록금’ 간담회를 열었고, 정동영 의원은 국회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은 내년에 치러질 총선·대선과도 무관하지 않다.

대학생들은 정치권의 ‘반값 등록금’ 정책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또 얼마나 신뢰하고 있을까. 87.9%(3백53명)가 불신하고 있었다. ‘신뢰할 수 없다’라는 의견이 29.9%(1백20명)였고, ‘정치 쇼에 불과하다’가 58%(2백33명)나 되었다. ‘신뢰할 수 있다’와 ‘잘 모르겠다’는 의견은 각각 4.5%(18명)과 7.7%(31명)였다. 즉,  대학생들은 정치권의 ‘반값 등록금’ 정책을 표를 의식한 ‘정치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최소희씨(서울시립대 환경원예학과 1학년)는 “대학생들에게 대학 등록금은 너무 큰 액수이다. 정치인들도 다 대학생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것을 생각해서 현재 대학생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해 정책을 펼쳤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대학들은 적립금을 수천억 원씩 쌓아놓고도 정작 학생들에게는 인색하다. 

대학생들도 여기에 불만을 쏟아냈다. ‘비싼 등록금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묻자 64.3%(2백81명)가 ‘대학 학교 운영의 문제’라고 보았다. 대학생들이 학교측을 얼마나 불신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 정책 실패’를 원인으로 꼽는 대학생도 28.8%(1백26명)나 되었다. 또 ‘물가 상승’이라고 답한 대학생은 4.3%(19명)였다.

이미희씨(중앙대 영어교육과 3학년)는 “반값 등록금 공약은 지키는 것이 맞지만 어차피 정부 지원금도 세금이다. 대학이 자체적으로 잘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대학이 제대로 운영을 하고 있는지 관리하는 것이 맞다”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특히 학교측의 등록금 책정 방법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등록금 책정 때 학생들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되는가’라고 묻자 절반이 넘는 61.5%(2백40명)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형식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라는 의견도 32.8%(1백28명)였다. 반면 ‘잘 반영하고 있다’라는 의견은 1.0%(4명)에 불과했다.

‘반값 등록금’은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우선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관건이다. 정치권도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고, 시민단체의 생각도 다르다.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재원 마련’ 방안은 무엇일까. 학생 44.3%(2백6명)는 ‘국가 차원의 장학기금 조성’을 꼽았다. 기업들도 대학생들의 등록금을 완화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학생 15.7%(73명)는 ‘기업들의 사회 헌납 기금’에 힘을 실었다.

“등록금 위해 아르바이트한 적 있다” 41.8% 

▲ 서강대 게시판에 붙은 반값 등록금 관련 대자보. ⓒ시사저널 유장훈

그 다음으로 ‘사립대 기부금에 대한 세액 공제’가 8.2%(38명)였고, ‘국민에게 별도의 세금 부과’와 ‘사립대 기부금에 대한 세액 공제’가 각각 7.1%(33명)였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저소득층 대여 학자금을 장학금으로 전환’ 5.4%(25명), ‘대학 연구비를 간접 경비로 30%까지 인정’ 2.6%(12명)도 있었다.

대학생들은 방학 때만 되면 ‘아르바이트 전쟁’을 벌인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다. 임상실험, 대리운전, 유흥업소 아르바이트 등을 가리지 않는다. 

‘등록금을 마련하는 방법’에 대해 학생들의 72.4%(2백88명)는 ‘부모님께 의지한다’라고 답했다. 그 다음으로 ‘대출받는다’라는 의견이 16.1%(64명)였다. ‘직접 번다’는 학생들도 7.0%(28명)였다. 

임시현씨(서강대 영문과 1학년)는 “부모님께서 고등학생 시절 사교육비도 내주셨는데, 대학에 와서까지 비싼 등록금 지출을 의지하는 것이 죄송스럽다. 학생 및 학부모의 의견을 등록금 책정 과정에서 반영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41.8%(1백64명)는 ‘있다’라고 대답했고, 57.4%(2백25명)는 ‘없다’라고 했다. 대학생 두 명 중 한 명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셈이다. 박연주씨(경희대 호스피탈리티 경영학부 1학년)는 “미대에 다니는 내 친구의 경우 비싼 등록금 때문에 일주일에 네 번, 수업 끝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한다. 공부할 시간이 없다”라고 전했다.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이 등록금을 보태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생활비를 보태기에도 모자랐다. 등록금이 비싼 데 반해, 아르바이트의 질이 낮기 때문이다. 실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은 어디에 썼는가’라고 묻자 74.9%(1백76명)가 ‘생활비’에 썼다고 했다. ‘등록금에 보탰다’는 답변은 19.6%(46명)였고, ‘학습용품 구매’는 2.6%(6명)였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한 달에 얼마 벌었는가’라는 질문에는 절반이 넘는 56.7%(127명)가 ‘50만원 이내’라고 답변했다. 그 다음이 ‘100만원 이내’로 33.9%(76명)였다. ‘2백만원 이내’와 ‘3백만원 이내’는 각각 7.1%(16명)와 1.3%(3명)였다.

대학 등록금 1천만원 시대가 대학의 풍속도도 바꿔놓았다. 대학에서 낭만이 사라진 지 오래다. 대학생들은 입학하자마자 등록금 폭탄을 맞고 취업 전선에 내던져지고 있다. 곁에 있는 친구는 ‘경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도서관, 학원, 자격증을 따는 것 외에는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 봉사나 해외여행도 본인의 스펙을 쌓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학생들을 탓할 수도 없다. 정부와 각 대학들도 대학생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들을 때가 되었다.   


 외국 대학생들은 등록금 얼마나 내고 다니나

세계 곳곳의 대학생들이 내는 등록금 액수는 국가별로 다양하다. 무상 혹은 극히 저렴한 수준을 유지하는 국가가 있는 반면, 한국처럼 막대한 금액을 내야 하는 국가도 있다. 학자금 융자, 지원금, 장학금 등을 지급하는 공적 보조금 제도 역시 국가별로 차이가 난다.

유럽의 대학은 등록금이 매우 저렴한 것으로 유명하다. 국가가 대학을 운영한다는 사고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복지 선진국’으로 알려진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의 대학생은 등록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다양한 공적 보조까지 체계화되어 있어 가장 이상적인 사례로 꼽힌다.

오스트리아, 체코,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도 무상 또는 저가 등록금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공적 보조금 제도는 비교적 미약한 편이나, 등록금은 아예 공짜이거나 연 5백~7백50유로(100만원 전후) 수준으로 저렴하다. 다만 덴마크, 아일랜드, 헝가리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비EU(유럽연합)권 외국 학생에게만 비싼 등록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적게는 연 6천 유로(약 9백5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연 1만6천 유로(약 2천5백만원)에까지 이른다.

반면 상당히 비싼 등록금을 내야 하는 국가도 있다. 미국에서는 연간 1만2천~1만6천 달러(약 1천3백만~1천7백만원) 정도의 등록금을 내야 한다. 영국의 등록금도 연간 3천2백90파운드(약 5백80만원)로 높은 수준이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역시 등록금이 비싸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등록금이 비싼 만큼 공적 보조금 제도가 잘 구비되어 있다. 호주나 영국의 경우 학자금 융자 프로그램이 돋보인다. 학생 시절에는 등록금 부담 없이 공부에 집중하고, 졸업 후 취업을 하면 상환을 시작한다. 하지만 연소득이 일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상환 의무가 없으며, 상환 능력이 없을 경우 유예 및 면제해주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 또한 각종 학자금 융자 및 장학금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등록금이 비싸면서도 공적 보조마저 취약한 곳으로는 일본과 한국이 꼽힌다. 양국의 경제력 차이를 고려하면, 전세계적으로 한국만큼 대학 교육비 부담이 과중한 곳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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