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수도권 민심 “못살겠다, 갈아보자”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1.06.15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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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에서 현역 의원들의 물갈이를 바라는 욕구가 수도권에서 거세다. <시사저널>이 실시한 네 번째 권역별 민심 조사에서 서울·인천·경기 지역의 유권자 중 45%가 내년 4월 총선에서 현역이 아닌 새 인물에게

▲ 2005년 11월 뉴라이트전국연합 출범식에 참석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 경기도지사. ⓒ시사저널 이종현

“물갈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요구가 상당히 거셀 것이다.” 정치 컨설턴트 김능구 이윈컴 대표가 내년 4월에 치러질 총선을 전망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수도권 지역 여론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현역 의원에 대한 교체 요구가 상당하다. 유권자들이 정치권을 심판하는 징벌적 투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라고 내다보았다.

수도권은 여론의 바로미터이다. 이곳에서 선거의 승패가 사실상 결정 난다. 영·호남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최근에는 충청권이 야당세로 돌아서면서 여야의 지역세가 더욱 팽팽해졌다. 여기서 수도권은 선거의 최대 승부처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정당들은 이 지역 민심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론의 향배에 따라 ‘개혁 공천’ 경쟁이 펼쳐질 수도 있다.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6월3일 서울·인천·경기 지역 주민 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지역구 현역 의원에 대한 유권자들의 교체 욕구가 여실히 드러났다. ‘내년 총선에서 현역 국회의원에게 투표하겠는가, 다른 인물에게 투표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5%가 ‘다른 인물에게 투표하겠다’라고 밝혔다. ‘현역 국회의원에게 투표하겠다’라는 응답은 28.8%에 그쳤다.


 

“위기감 느낀 현역들, 지역구에서 살다시피…”

이러한 민심은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에게 더 큰 부담이 될 것으로 보여진다. 지난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은 수도권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그 결과 현재 이 지역 국회의원 1백11명 중 81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다. 전체의 73%에 이른다. 반면 제1 야당인 민주당은 29명에 불과하다. 유일하게 무소속인 강용석 의원도 한나라당 간판으로 당선된 바 있다.

결국 ‘현역 물갈이’ 여론이 높아질수록 다수 의원을 보유한 한나라당이 더 큰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내년 총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가는 분위기이다. 현역 의원 중 상당수가 공천 경쟁에서 탈락하거나, 공천을 받더라도 선거에서 고배를 마실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서울의 한 정치권 인사는 “지역구에서 살다시피 하는 중진 의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지역 민심이 좋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민주당 경기도당 관계자도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이 확산되고 있다. 지역구에서 오랜 기간 조직을 다져온 다선 의원들도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여기에는 현 정권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조사에서 ‘정당 지지도’의 경우 한나라당(35.8%)이 민주당(24.6%)을 10%포인트 이상 앞서는 것으로 조사된 반면, ‘내년 총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비록 오차 범위 내(±4.38%)이기는 하지만 ‘야당 후보’(37.1%)가 ‘여당 후보’(31.1%)보다 다소 많게 나타났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정당 지지도와 달리 야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더 많이 나오는 데는 ‘반(反)이명박 정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야당이 좋아서 지지를 한다기보다 현 정권에 대한 반발 심리가 크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정치권 내에서도 “한나라당을 지지하지만 현 정권이 잘못하고 있다는 여론이 많다”라고 보고 있다.

그런 만큼 ‘현역 교체’ 여론이 높다고 해서 당장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참패’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단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도 있다. 신교수는 “한나라당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반드시 유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에 대한 불만이 높아질수록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나라당에서 이러한 요구를 반영해 새 인물을 공천한다면 결국 정당 대결로 돌아가게 된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들어 한나라당이 현 정권과 거리를 두고 쇄신 방안 찾기에 골몰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편으로는 수도권의 야당 지지층이 ‘현역 교체’를 매개로 결집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야권 연대’에 대한 요구가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도권 선거의 경우 여야 대결 구도가 명확해야만 야권으로서 해볼 만한 싸움이 된다. 지난 4·27 분당 을 재·보선에서도 이는 입증되었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과거 선거의 경우, 야권의 분열이 한나라당에 반사 이익을 가져다준 측면이 있다. 야권 지지층에서 현역 교체에 대한 요구가 많이 나오고, 민주당 등 특정 정당보다도 야권 전체 후보에 대한 지지가 높게 나오는 것은 야권 연대가 성사된다면 상당한 파괴력을 가질 수도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할 경우 오히려 승리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지지도는 수도권에서도 강세

‘대통령 후보 지지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여당 후보’ 대 ‘야당 후보’로 놓고 보았을 때 양쪽의 지지도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았다. ‘내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여당 후보’(33.2%)와 ‘야당 후보’(33%)의 격차는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다만 20~40대에서는 야당 후보의 지지도가 12.7~17.3%포인트 더 높게 나타났다.

반면 여·야 유력 대선 후보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가상 맞대결에서는 박 전 대표(52.4%)가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어 손대표(28.1%)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주목되는 부분은 정당 지지층의 이탈 현상이다.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밝힌 응답자 중 8.5%가 손대표를 지지한 데 반해,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자 중 29%,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자 중 25.3%가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박 전 대표가 수도권에서도 나름의 경쟁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박 전 대표(29.8%)가 여전히 부동의 1위를 지킨 가운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15.6%)이 2위를 차지했다. 반면 야권의 대표 주자인 손대표(10%)는 3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마의 15%’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여권에서 ‘박근혜 대항마’ 후보로 현재 가장 유력시되는 오세훈 서울시장(7%)과 김문수 경기도지사(5.3%)가 각각 4, 5위를 차지했다.

6~10위는 모두 야권 인사들이었는데, 손대표와 야권 선두 경쟁을 펼쳐온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4.2%), 호남 대표 정치인으로 뽑힌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3.3%), 정계 진출설이 끊이지 않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3%), 한명숙 전 총리와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이상 2.6%) 등이 이름을 올렸다.

박근혜 전 대표의 독주 현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야권에서 유력 대선 후보의 윤곽이 드러나면 어느 정도 조정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나라당의 변화된 상황이 박 전 대표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4·27 재·보선에서 참패를 한 후 당내 권력의 추가 박 전 대표 쪽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박 전 대표에게는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능구 대표는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고공비행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여당 내에서 야당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도 박 전 대표에게는 우호적일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박 전 대표측이 한나라당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박근혜식 한나라당’을 가져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금처럼 엉거주춤하다가는 기존의 지지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지지 기반은 영남권이다. 한나라당의 텃밭이기도 하다. <시사저널>이 실시한 전국 각 권역별 여론조사에서 ‘이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를 묻는 질문에 ‘잘하고 있다’는 긍정적 답변이 대구·경북(TK)에서 51.9%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그 다음이 부산·울산·경남(PK, 46.1%)이었다. 반면 충청권(32.7%)과 호남권(20.0%) 등 서부 벨트는 30%대 이하였다. 그렇다면 여론의 바로미터인 수도권은 어떨까. 36.7%로 나타났다.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적 답변은 52.3%였다. 역시 20~40대 청·장년층이 현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현상은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당 지지도’에 있는 한나라당이 아직 우위를 지키고 있다. 35.8%로 민주당(24.6%)에 비해 11.2%포인트 앞섰다. 하지만 20~30대에서는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7~10%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당의 뒤를 국민참여당·진보신당·민주노동당 등 진보 정당들이 이어갔지만, 2~3%대에 그쳤다.

수도권 지역 주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현안은 ‘물가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32.1%가 그렇게 답했다. 3분의 1에 가까운 수치라는 점에서 현재 물가 문제를 수도권 주민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PK(19.8%)와 TK(24.1%), 호남(22.5%), 충청(25.8%) 등 지방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난다. 물가 문제에 이어 실업 문제(12.1%), 대학 등록금 문제(9.2%) 등이 뒤를 이었다. 특이한 것은 등록금 문제의 경우 20대(16.7%)와 50대(10.9%)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대학생 당사자이거나,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그 연령층에 많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 오세훈 시장(왼쪽), 김문수 지사(오른쪽).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잠룡’으로 불린다. 잠재적 대권 주자라는 뜻이다. 실제 두 사람은 <시사저널>이 이번에 실시한 수도권 여론조사 결과, ‘차기 대통령 지지율’에서 나란히 4, 5위에 올랐다. 2위가 대선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고, 3위가 야권 주자인 손학규 민주당 대표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1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여권 ‘대항마’로 오시장과 김지사가 유력한 셈이다. 실제 한나라당 친이계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두 사람의 대권 도전설이 나온다. 둘 중 한 명이 친이계 대표 주자로 나서게 되면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출마의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두 사람은 모두 현역 광역단체장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라는 점에서 임기의 절반도 채우지 않고 시장과 도지사를 사퇴하겠다고 나설 경우 상당한 역풍이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오시장과 김지사측도 이런 점에 대해 매우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내년 대선 출마를 위해 오세훈 시장(혹은 김문수 지사)이 시장(혹은 도지사)직을 사퇴한다면 이에 대해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수도권 유권자들은 어떤 답을 내놓았을까.

지역 주민들의 의견은 찬반이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세훈 시장의 경우 찬성이 39.3%, 반대가 46.4%였다. 반대가 다소 높게 나왔지만, 7.1%포인트 차로 오차 범위 내에 있다. 김문수 지사의 경우, 사퇴의 부담에서 좀 더 자유로울 듯하다. 찬성 39.0% 대 반대 40.8%로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송영길 인천시장에 대해서도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런데 인천시민들은 송시장에 대해 ‘대선 출마를 위해 시장직을 사퇴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견이 71.3%로 찬성(16.6%) 의견을 압도했다.

이같은 결과에는 각 단체장마다 대선 출마에 대해 보이는 적극성의 강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대선 출마 행보에 대해 가장 적극성을 보이는 이가 김지사인 것은 분명하다. 김지사는 이미 “경기도지사직을 유지하면서도 대선 행보에 나설 수 있다”라는 입장까지 표명하고 있다. 오시장 또한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딱히 부정하지 않고 있다. 반면 송시장은 대선 후보로 별로 거론되지 않는 탓인지는 몰라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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