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박지만 의혹’, 무엇이 숨어 있나
  • 김지영·안성모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6.15 05: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축은행 비리를 둘러싼 논란의 도마에는 문제의 인물로 떠오른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 외에 박지만 EG 회장도 올라 있다. 신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박회장이 신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연루되어 있느냐가 핵심이다. 박회장이 여권의 유력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동생이라는 점에서 의혹은 쉬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이다. 과연 박지만 회장과 신삼길 회장은 어떤 사이이고, 의혹이 이는 배경은 무엇인지 추적했다.

▲ 2009년 10월26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3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박 전 대통령의 장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오른쪽), 장남인 박지만 EG 회장(가운데)과 부인 서향희 변호사. ⓒ시사저널 유장훈

저축은행 비리 파문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초 여야 정치권은 부실 관리에 대한 전·현직 정권의 책임을 놓고 공방을 펼쳐왔다. 서민 금융의 붕괴가 가져올 정치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관계 유력 인사에 대한 로비 의혹이 제기되면서 관심의 초점이 엉뚱한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검찰 수사와는 별개로 현재 논란의 중심에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과 박지만 EG 회장이 서 있다. 신회장이 ‘마당발 인맥’을 자랑하며 로비를 펼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박회장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박회장이 여당의 유력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동생이라는 점에서 의혹이 가시지 않는 분위기이다. 박회장은 과연 신회장의 로비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일까. <시사저널>은 베일에 싸여 있는 신회장의 실체와 박회장에게 제기되고 있는 의혹을 집중 취재했다.

▲ 지난 1월27일 영업정지 명령을 받은 후 가지급금 지급을 시작한 삼화저축은행 본점. ⓒ시사저널 윤성호

▒ 저축은행 로비 핵심, 신삼길은 누구인가

삼화저축은행 로비의 핵심 인사로 지목되는 신삼길 회장은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금융권에서도 그다지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저축은행 인사들도 “신회장에 대해 모른다”라고 말한다. 그의 고향과 학력 등에 대해서도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그는 인터넷의 각종 인물 정보 사이트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외형상 철저하게 ‘음지’에서 활동해 온 셈이다.

과연 신회장은 어떤 인물일까. 사정 기관의 한 인사는 “신회장은 서울 종로의 금은방 업계에서 성장한 인물이다”라고 전했다. 그가 자본금 1억원으로 귀금속 사업에 처음 뛰어든 것은 지난 1999년 7월5일이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귀금속 수출입 업체인 ㈜모나코를 설립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 살던 신회장은 서울을 오가며 주로 금을 수입해 서울 종로 일대 금은방에 공급하는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이 번창하자 그는, 지난 2000년 7월18일 종로구 인의동에 별도로 ㈜골든힐21을 설립했다. 이 회사 역시 귀금속과 금은을 수입하는 업체였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회사 설립 초기 자본금은 1억원이었는데, 2004년 2월에는 12억3천4백68만원으로 무려 12배나 성장했다. 그 여세를 몰아 같은 해 삼화저축은행까지 인수하면서 본격적으로 금융업에 뛰어들었다. 2006년에는 국내 첫 남자 골프단인 삼화저축은행 골프단을 창단하면서 어엿한 ‘중견 사업가’로서 면모를 갖추었다.

하지만 신회장의 사업이 성장한 막후에는 불법과 편법이 동원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7년 금괴를 변칙 거래한 혐의로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조세 포탈 및 배임 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6월10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신회장은 해외에서 금괴를 수천억 원어치 수입해서 주로 종로 일대 금은방에 팔았다. 당시 그는 국내에서 금괴를 팔았음에도 수출한 것처럼 위장하면서 부가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이에 국세청에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부에 고발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구속 당시 법원 안팎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금괴 변칙 거래를 주도한 대부이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국세청 고발로 구속된 신씨는 2010년 대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백50억원이 확정되었다. 올해 1월에는 삼화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한 데 이어 4월에는 상호저축은행법 위반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 신삼길-박지만 친분 관계 어느 정도였나

▲ 신삼길 회장.

그렇다면 신삼길 회장과 박지만 회장은 어떻게 알게 된 사이일까. 처음 두 사람의 관계가 거론되었을 때 정치권에서는 중학교 동창이라는 인연으로 오래전부터 친분을 가져왔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1958년생 동갑이라는 사실이 근거로 제시되었다. 그런데 최근 공성진 전 한나라당 의원의 여동생인 공 아무개씨는 자신이 박회장을 신회장에게 소개했다고 주장했다. 공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회장과는 2002년 광고 컨설팅 사업을 할 당시에 업무 관계로 만나 ‘삼길이 오빠’라고 부를 정도로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2003년~04년경 평소 친하게 지내던 박회장을 소개해주었다”라고 말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두 사람이 처음부터 사업 관계로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신회장의 회사였던 ㈜모나코와 ㈜골든힐21 두 회사는 모두 귀금속과 비철금속을 수출입했던 업체였다. 산화철을 재처리하는 박회장의 회사 EG의 사업 분야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간에 두 사람이 7~8년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시기는 신회장이 삼화저축은행 인수를 전후해 재계는 물론 정·관계 유력 인사들과 본격적으로 교류를 갖기 시작한 때이다. 신회장은 특히 골프 모임에서 인맥을 전방위로 넓혀나간 것으로 전해졌다. 박회장도 이 모임의 단골 멤버였다고 한다.

박회장은 신회장에 대해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동갑내기인 두 사람이 일반적인 친분 이상으로 친했다고 보고 있다. 신회장이 2008년 조세 포탈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 박회장이 법원 방청석까지 찾아와 재판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민주당은 이러한 친분이 최근까지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신회장이 연행되기 두 시간 전에 박회장이 함께 식사를 했고, 신회장이 구속된 뒤에도 박회장이 몇 차례 면회를 갔다는 것이다.

▒ 박지만, 정·관계 로비에 어떤 역할 했나

한나라당 내 친박(親朴·친박근혜) 진영에서도 신회장과 박회장의 친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친분이 있다고 해서 로비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면 말고 식’의 정치 공세라고 반발하고 있다. 골프를 치고 식사와 술을 같이하는 사이였다고 하지만, 이권이 오간 사실이 밝혀진 것도 아닌데 어떻게 로비와 연결 짓느냐는 것이다.

박지만 회장의 회사인 EG에서 삼화저축은행과 거래를 한 흔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실제 EG의 한 임원도 6월10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 회사는 충남 금산에 있으며, 주거래 은행은 대전에 있는 하나은행이다. 그동안 삼화저축은행뿐 아니라 서울에 있는 어떤 금융 기관에서도 단 1원도 차입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차기 대권 주자 중 선두를 달리고 있는 박 전 대표의 동생이라는 그가 비리의 핵심 인물과 각별한 사이였다는 사실은 간단한 해명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우세하다. 박회장 본인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신회장이 목적을 갖고 그에게 접근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회장을 ‘얼굴’로 내세워 로비를 펼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에서도 이러한 정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박회장과 신회장이 서울 청담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는 자리에 정·관계 유력 인사들이 동석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삼화저축은행 사외이사를 지내 이미 로비 의혹이 제기된 정진석 전 청와대 정무수석 이외에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과 민병환 국정원 제2차장의 이름도 추가로 거론되었다. 나아가 ㅎ의원 등 친박계 몇몇 핵심 의원들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다.

권수석의 경우 김종창 전 금감원장과 동향 출신으로 알려졌다. 민차장의 경우 박정희 정부 시절 문교부장관을 지낸 고 민관식 전 국회부의장의 아들이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반응이다. 권수석은 신회장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고 그런 자리에 간 적도 없다고 했고, 민차장측도 박지만·신삼길 회장을 만난 적이 없고 음식점도 모른다고 일축했다.

▒ 삼화저축은행 고문 변호사 지낸 박씨의 부인 서향희씨의 행적

박회장의 부인 서향희 변호사의 행적을 두고도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박회장은 물론 서변호사도 평소 신회장과 가깝게 지냈다는 얘기가 무성했다. 박회장과 신회장 부부가 소망교회에 다니면서 친분이 더 두터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회장과 서변호사가 지난 2004년 말 결혼식을 올린 곳도 소망교회였다. 당시 이 교회 설립자인 곽선희 목사가 주례를 섰다.

최근 서변호사가 2년 동안 삼화저축은행 고문 변호사로 활동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의혹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서변호사는 신회장이 지난 4월 구속될 당시에도 고문 변호사였지만, 계약 만료 직후인 지난 5월 다른 법무법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문 변호사가 사건이 발생한 직후 사임한 것이 더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다.

서변호사에 대해서는 그동안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았다. 남편인 박회장보다도 더 왕성한 활동을 보이자 정계에 진출할 것이라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특히 삼화저축은행 이외에도 여러 기업의 고문 변호사와 사외이사를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박 전 대표의 후광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민주당의 한 인사는 “서변호사를 영입한 기업의 경우 ‘박근혜 테마주’라는 소문이 퍼져 주가가 급등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당장 효과를 보기도 하고, 또 미래에 대한 보험도 되니까 요청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 야당 공세, 박근혜 대권 행보 발목 잡을까

친박 진영에서는 박회장 부부가 계속 도마에 오르는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한구 의원은 “가족을 건드리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누구하고 누가 친하다는 것 말고는 더 내용이 없다”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이 공세를 이어가는 것은 결국 여당의 유력한 대권 주자인 박 전 대표에게 흠집을 내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본인이 밝혔으니 그것으로 끝난 것이죠”라는 박 전 대표의 한마디로 사안이 정리되기에는 의혹이 커졌다. 조선일보는 6월8일자 사설에서 “신씨가 자기 회사가 문을 닫고 자신은 철창 신세를 지게 될 최악의 상황을 눈앞에 두고 박씨에게 아무런 부탁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의문을 갖는 사람이 결코 야당 의원들만은 아니다”라며 ‘박지만 의혹’이 박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당초 민주당 내에서는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해 박회장을 부각시키는 데 주저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권의 핵심 인사들을 정조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열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고 한다.

민주당의 고위 당직을 맡았던 한 인사는 당시 기자에게 “이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넘어서 친·인척 비리로 확대될 것이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삼화저축은행은 2009년 7월 설립된 기업 인수·합병 전문 업체인 ㈜나무이쿼티가 정보통신 업체인 ㈜씨모텍을 인수할 수 있도록 거액을 대출해주었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가 바로 이대통령의 큰형인 이상은 다스 회장의 사위인 전종화씨였다. 씨모텍은 지난 3월 회사가 상장 폐지될 위기에 놓이자 대표이사가 자살을 해 파문이 인 회사이다. 전씨는 씨모텍 부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당시 전씨와 동업 관계였던 이철수씨가 검거되면 이대통령의 조카 사위인 전씨에 대한 수사로 확대될 수 있다. 보해저축은행에서도 불법 대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씨는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기업 사냥꾼으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의혹의 초점은 박 전 대표의 가족에게 맞춰지고 있고, 민주당에서도 예봉이 꺾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물러서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박 전 대표의 조카인 한 아무개씨가 대주주로 있는 광주 스마트저축은행이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비리가 드러나 직무정지 6개월의 중징계가 내려질 처지였지만, 최종적으로 금융위원회에서 1개월로 단축된 사실을 두고도 의혹을 제기하는 등 고삐를 죄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