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질보다 협찬에 기우는 방송
  • 곽상아│미디어스 기자 ()
  • 승인 2011.06.2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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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화 <트루맛쇼>에서 ‘열악한 외주 제작 시스템’의 현실 드러나…“문제의 원인은 방송사의 횡포”

▲ 한 방송사의 드라마 제작 현장. ⓒ시사저널 자료

“나는 왜 방송에 출연한 음식점이 맛없는지 알고 있다”라는 도발적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 <트루맛쇼>가 화제이다. 4월 전주국제영화제(JIFF)에서 장편 경쟁 부문 ‘JIFF 관객상’을 수상한 영화 <트루맛쇼>는 6월 둘째 주 맥스무비 영화 예매 순위 차트 10위에 오르고, 개봉한 지 2주 만에 오히려 상영관 수가 늘어나는 등 ‘조용한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MBC 시사교양국 PD 출신인 김재환 감독이 만든 영화 <트루맛쇼>의 주요 골자는 TV에 소개되는 ‘맛집’이 실은 방송사-외주제작사-브로커-음식점이 ‘짜고 치는 고스톱’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TV 맛집 프로그램이 ‘조작’임을 보여주기 위해 김감독은 사비를 털어 경기도 일산에 분식집을 차렸고, 1천만원을 내고 직접 SBS <생방송 투데이>에 출연한 사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에 대해 방송사 맛집 프로 담당 PD들은 “협찬하겠다며 접근해 온 식당들이 있지만 돈 받고 방송한 적은 없다”(KBS), “제작진이나 방송사가 돈을 받은 적은 없다. 중간의 홍보대행사 실무자가 개인적으로 편취한 것이다”(MBC), “(김감독이) 외주사를 속이고 함정 취재한 것이다”(SBS)라는 반응을 보이며 방송사들은 ‘조작’과 관련이 없다고 한사코 강조했다.

‘부적절한 협찬’ 없이는 제작비 충당 못 해

영화는 기본적으로 ‘TV 맛집 프로그램의 허구성’에 대한 내용이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문제의 근원이 ‘부적절한 협찬’을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제작비를 충당할 수 없는 독립 외주제작사의 열악한 현실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방송사가 제작비를 조금 주니 협찬을 받아야 한다. 방송 하나 갖고 있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무조건 (방송사에) 충성해야 한다”라는 한 광고대행사 관계자의 발언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프로그램을 납품해야 하는 독립 외주제작사들이 방송사로부터 적은 제작비를 받다 보니 협찬이나 금품 거래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외주사를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방송사가 아무리 제작비를 줄여도 외주사 입장에서는 어떤 방법을 써서든 제작을 할 수밖에 없다. (제작비가 적다 보니) 협찬을 붙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제작 구조가) 비뚤어져서 이런 문제들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방송사의 횡포이다”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외주사가 만든 콘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전파를 탈 수가 없다.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제작비 협찬을 받아오면 방송이 되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외주사 입장에서는 콘텐츠에 대한 고민보다 돈을 끌어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우선시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시장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트루맛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방송 콘텐츠, 외주사를 바라보는 방송사의 시선에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 (지상파와 비교할 때) 외주사의 힘이 미약하기 때문에 실질적 도움으로까지 이어질지는 의구심이 든다”라고 덧붙였다. 

외주사를 운영하는 대표이기도 한 김재환 감독은 “<트루맛쇼>를 만든 목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잘못된 제작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라고 밝혔다. “외주사 입장에서는 (방송사로부터 받는) 제작비가 적으니까 협찬을 받을 수밖에 없고, ‘블랙 마켓’(Black Market)이 형성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되어버렸다. 방송사가 지금까지 이런 것들을 조장해왔다”라는 것이다.

김감독은 “지난해에 MBC <뉴스데스크>는 KBS <VJ특공대>의 연출 조작 의혹을 제기하며 이를 준엄하게 꾸짖었는데, 방송사들이 바로 그와 같은 자세로 <트루맛쇼>를 대해주었으면 한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자신들과 관계된 일이라고 해서 <트루맛쇼> 논란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라며 이중 잣대를 꼬집었다.  

제작 기반 갖추기도 전에 외주 정책 펼친 탓

김감독은 외주사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그동안 외주제작사들은 모이기만 하면 ‘제작비 현실화’와 ‘저작권 확보’를 이야기했지만, 막상 이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오자 방송사 눈치를 보느라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있다. 외주사들이 이대로 계속 침묵한다면 <트루맛쇼> 이후에도 기형적 제작 구조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방송사가) 제작비를 올리고, 저작권은 (방송사와 외주사가) 나누는 방식으로 문제가 풀려야 한다”라는 것이다. <트루맛쇼> 논란이 불거진 이후 독립 PD들로 구성된 한국독립PD협회는  “(근본적으로) 외주사와 독립 PD들이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없게 만드는 방송사의 나쁜 관행을 고쳐야 한다”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김동준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은 “1990년대 초반 정부가 아무런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외주 정책을 시행한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외주사가 방송사에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다음에 외주 정책을 시행했어야 했는데 전혀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정책을 시작했기 때문에 외주사들이 전적으로 지상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관행이 형성되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외주사와 지상파 간의 불합리한 관행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문제로서 쉽게 개선되기는 힘들다. 그동안에는 언론계 관계자들 정도만이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관행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 (<트루맛쇼> 논란으로 인해) 외주 제작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대중들이 인식할 수 있게 된 점은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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