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부패, 정권 차원의 문제이다
  • 유창선 | 시사평론가 ()
  • 승인 2011.06.2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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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지위 고하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벌어져…‘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상호 묵인해 온 듯

“이제 한계가 왔다. 이대로는 안 된다.” 최근 잇따른 공직 비리에 대해 지난 6월14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이보다 하루 전 이대통령은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뼈를 깎는 심정으로 단호하게 부정과 비리를 척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저 자신도 오늘의 일을 보면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라고까지 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도 6월15일 정부 중앙 부처 감사관들을 부른 자리에서 “이제는 범국가적으로 공직 부패 문제를 정리할 때가 왔다”라고 밝혔다. 대통령과 총리가 이렇게 공직 부패·비리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갖고 있고 분노까지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다가 공직 비리의 사례들은 둑이라도 터진 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일까.

 최근 드러난 공직 비리의 실상은 위험 수위를 넘어 정권에 대한 신뢰 자체를 위협하는 단계로까지 가고 있다. 기관을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인 모습이라는 점에서, 지위 고하를 불문한 현상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부산저축은행 로비에는 감독 기관인 금융감독원이나 금융위원회 전·현직 간부들, 국세청 직원들 그리고 현직 감사위원까지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로비의 손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었고, 그 앞에서 무너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의혹 제기 수준이기는 하지만 청와대 전 비서관들의 이름이 거론되었고, 여야의 전·현직 의원들도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윗물이 이러니까 다들 막가자는 것일까. 국토해양부 과장이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고, 산하 기관인 교통안전공단은 국고를 횡령해 수사를 받고 있다. 국무총리실이 적발해 6월15일 공개한 공직 비리 사례들을 보면 국토해양부나 환경부 등 중앙 부처는 물론, 농촌진흥청 등 외청, 지방자치단체, 공공 기관, 대학 교수 등 부처나 분야를 가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토부와 환경부가 업체들의 후원을 받아 연찬회를 가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 부처들의 이른바 ‘목금(木金) 연찬회’가 논란거리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주말로 이어지는 평일에 지방 휴양지에서 업체 후원으로 연찬회를 갖는데, 여기에는 간단한 강연→세미나→만찬→술자리→골프로 이어지는 공식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이러한 연찬회가 거의 모든 정부 부처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공직 사회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함께 도덕 불감증에 걸려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이쯤 되면 ‘미꾸라지가 물을 흐린 것’이 아니라 ‘물 자체가 더러운 물’이라는 얘기가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니 그런 일들이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상호 묵인하며 공공연히 이루어져온 것 아니겠는가.

‘대통령의 격노’ 또한 관행처럼 비쳐

▲ 권도엽 국토해양부장관(가운데)이 지난 6월15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질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이같은 상황이 현실인데, 역시 관행적으로 등장하는 ‘대통령의 격노’ 같은 것으로 공직 사회의 부패·비리가 근절될 수 있을까. 역대 정부의 대통령들도 그러했고, 이명박 대통령 또한 공직 사회의 비리 근절을 진작부터 다짐했다. 그러나 역대 정부도 그러했지만, 이명박 정부 역시 실패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른바 집권 ‘4년차 증후군’을 맞고 있는 것이다. 임기 말의 정치적 레임덕이 본격화되는 동시에 공직 기강이 흔들리면서 온갖 공직 비리가 드러나는 상황이 그것이다. 이명박 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정권들도 그같은 임기 말 현상에 직면해서 공직 기강을 다잡으려 하고 공직 비리의 척결을 다짐했지만 그 악순환은 변함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공직 비리 문제를 정권적 차원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공직 비리의 실상을 놓고 보면 단순히 공직자 개인의 문제로만 넘길 수 없는 면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대통령 주변 여러 인사들이 비리에 연루되었던 사실은 이명박 정부의 공직 비리 근절 의지를 퇴색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던 은진수 감사위원, 대학 동기이자 대선 공신인 천신일 회장, 대통령의 아바타로 불리던 장수만 방위사업청장, 배건기 청와대 감찰팀장 등이 줄줄이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거나 사직했던 일들은 공직 비리 근절에 대한 이대통령의 영이 설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이들의 비리 연루 파문으로 인해 ‘측근 비리’는 없다던 대통령의 말은 더 이상 사용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측근 비리의 발호는 결국 그러한 측근들을 중용한 대통령의 인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는 법. 이대통령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러한 현실에서 대통령이 단지 하위 공직자들을 상대로 분노를 표시하거나 대대적인 감찰을 통해 공직 기강을 다잡는 차원의 방식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지금의 상황에서 이대통령은 공직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정면 돌파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정권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대통령부터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직 비리 근절의 필요성을 국민과 공직자들 앞에서 호소해야 한다. 그동안 대통령 자신의 주변 인사들이 비리에 연루되었던 일들에 대해 국민에게 고개 숙이며, 그 책임을 통감해서라도 공직 비리의 근절에 나서겠다는 선언을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측근 비리에 대해서는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고 최근의 공직 비리에 대해 남의 탓만 하는 모습이 공직 사회에 얼마나 긴장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 자기 측근들에게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밝혀야 공직 사회를 향한 경고가 설득력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는 공직 비리의 근절을 위한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직 사회 전체를 향한 메시지는 물론 필요하지만, 단지 하위 공직자들을 잡기 위한 사정(司正)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부패·비리는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임을 생각할 때, 공직 비리 척결은 고위 공직자들을 상대로 먼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공직 비리 근절에 대한 정권 차원의 의지를 보이며 이 문제를 정권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길이 될 것이다.

법·제도 강화 좋지만 대통령 의지가 더 중요

이대통령은 이쯤에서 지나온 과정을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3년 반 가까이 인사 때마다 되풀이되었던 도덕성 시비, 그것이 결국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로 연결된 것은 아닌지 말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번번이 온갖 도덕적 논란에 휩싸이는 모습은, 현 정부가 적어도 청렴하고 도덕적인 정부를 지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선입관을 낳기에 충분했다. 적어도 도덕적이고 청렴한 인사들이 정부의 얼굴로 자리하는 인사가 이루어졌다면 공직 비리 근절에 대한 대통령의 영은 훨씬 무게를 갖고 전해졌을 것이다.

 물론 제도적 차원의 개선도 필요하다. 청와대가 말하고 있는 감찰의 제도적 강화, 공직자 윤리법의 강화, 다 좋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단호한 실천적 의지이다. 아무리 제도를 개선해도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는 공직 비리를 막지 못함은 이제까지의 경험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갈 길은 분명하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대통령이 먼저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며 공직 비리 추방을 선언하라. 그리고 읍참마속(泣斬馬謖)의 모습을 보이며 공직 비리와의 전쟁을 이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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