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에만 제대로 수사했어도…”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6.2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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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저축은행 전 사장 백 아무개씨 증언 / “전일저축 비리 고발했는데 금감원·사법 당국 모두 외면”

 

▲ 백 아무개 전 전일저축은행 사장(오른쪽)이 전일저축은행이 망하게 된 과정과 저축은행의 총체적 비리 실체를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전일저축은행 대주주가 수백억 원의 저축은행 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되었다. 지난주 목요일(6월2일)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전일저축은행 대주주 은인표씨가 소유한 제주도 호텔 카지노와 서울 강남의 특급 호텔 스위트룸을 압수수색했다. 2년 전 영업정지된 전일저축은행의 지분 절반 이상을 차명으로 갖고 있던 은씨를 겨냥한 수사이다. 은씨는 제주도에 골프리조트를 만든다며 저축은행으로부터 100억원 이상을 부당 대출 받는 등 불법 대출 규모가 4백억원이 넘는다. 검찰은 은씨가 차명 대출을 통해 조성한 비자금의 규모를 확인하고 있다. 정·관계 구명 로비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위 내용은 지난 6월9일 오전 MBC <뉴스투데이>가 보도한 전일저축은행에 대한 검찰 수사 관련 주요 내용이다. 부산저축은행과 삼화저축은행으로 촉발된 저축은행 사태가 전일저축은행까지 다시 끄집어 올렸다. 전일저축은행은 이미 지난해 8월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이미 부채가 자산을 6천5백억원 이상 초과하는 등 부실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회생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 같은 돈을 맡겼던 전북도민들의 몫이었다. 한때 전국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했던 전일저축은행이 몰락하는 과정은 지금 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저축은행 사태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그 실체가 뒤늦게 다시 떠오른 셈이다.

“저축은행 비리의 종합판을 보았다”

 

▲ 지난해 12월31일 전일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한 후 예금 피해자들이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전히 ‘전일’ 이름만 나와도 절규하는 지역 주민들이 상당하다. 그 뒤에서 역시 피눈물을 쏟는 또 한 명의 사람이 있다. 바로 전일저축은행 사장을 지낸 백 아무개씨이다. 그는 “내가 2003년에 제기했던 전일저축은행의 범죄 행각을 당시 금감원과 검찰에서 제대로 처리만 했더라면 지금의 부산·삼화저축은행 같은 대재앙은 미리 막았을 것이다”라고 한탄했다. 지난 6월15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 그는 두툼한 책 한 권 분량의 문건들을 가지고 나왔다. 전일저축은행 사장에서 물러난 직후인 2003년부터 올해 6월9일까지 해마다 작성한 진정서가 수십 건이 넘었다.

전일저축은행 사태의 본질을 알리고자 그가 작성한 진정서들은 서울중앙지검의 특수부와 금융조세조사부, 전주지검, 서울고등법원과 전주지방법원, 금감원, 심지어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까지 안 보내진 곳이 없었다. KBS, MBC, JTV(전주방송) 등 주요 언론사에도 수시로 제보했다. 거기에는 내부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은행을 둘러싼 비리와 의혹들이 자세하게 적시되어 있었다. 그는 “전일저축은행 사건은 저축은행 비리의 종합 결정판이다. 책임 의식과 사명감도 없는 금감원, 부도덕한 지역 기업인에 휘둘리는 판·검·경 그리고 언론사들이 모두 공범이다. 이들은 철저히 비리를 외면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가 백씨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이었다. 당시 굿모닝씨티 사건이 전국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고, 그 가운데에 전일저축은행이 있었다. 당시 은씨 등 새로운 경영진에 의해 사장 자리에서 쫓겨나다시피 물러난 직후였던 백씨는 전일저축은행이 굿모닝씨티에 수백억 원의 불법 대출을 한 것에 대해 사정 당국에 강도 높은 수사를 촉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수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전주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외환은행 전주지점장을 지내는 등 40여 년을 금융기관에서 종사한 금융인이었던 백씨는, 2000년 8월 당시 전일저축은행 대주주였던 이종덕씨의 부탁으로 이 금고의 사장에 취임했다. 당시 전일저축은행은 그 직전까지 경영을 맡았던 이씨의 아들이 잇단 주식 투자 실패 등으로 적자를 거듭하면서 퇴출 위기에 몰렸다.

백씨는 “당시 내 금융 인맥을 총동원해 증자에 나서면서 전일저축은행을 간신히 살려놓았다. 그런데 그러자마자 오너인 이씨 부자는 은씨 등 검증되지도 않은 지역의 개인 기업가에게 1백60억원을 받고 금고를 넘기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때 전일저축은행 인수에 나선 은씨 등의 일당에 금융 브로커 박아무개씨 등이 개입되어 있어 이씨에게 매각을 반대했더니 ‘내 것을 내가 판다는데 왜 자꾸 반대하느냐’라고 야단치더라. 그래서 내가 ‘전일저축은행은 이미 회장님 개인의 것이 아니라 예금주들인 전북도민의 것’이라고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그만큼 저축은행의 오너들이 갖는 도덕성 불감증은 심각했다”라고 밝혔다.

백씨는 “그토록 진정서를 냈음에도 꿈쩍도 않던 검찰이 지난 2006년 7월경 갑자기 나를 불렀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이틀에 걸쳐 참고인 조사에 응했다. 그리고 한 달 후에 박씨가 구속되더라. 나는 그때 모든 것이 뿌리 뽑힐 줄 알았다. 그런데 거기서 그쳤다. 그때 수사에 상당한 의욕을 보였던 젊은 검사도 초임이어서 그런지 더 이상 수사를 확대하지 못하고, 결국 지방검찰청으로 전출을 가고 말았다. 그때 사실 박씨 조사 과정에서 부산저축은행 얘기도 나왔다. 그래서 내가 당시 부산저축은행의 김양 부회장과 통화를 하기도 했다. 그때 좀 더 제대로 수사했더라면 지금의 사태를 어느 정도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라고 밝혔다.

“금감원, 내가 제보한 자료 은행측에 보내줘”

은씨는 2008년 사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현재 영등포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다. 검찰에서는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을 동원한 은씨의 정·관계 로비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백씨는 “은씨는 호텔 생활을 주로 했다. 골프를 즐기고 씀씀이가 컸다. 변호사비도 통 크게 썼고, 유명 로펌을 동원했다. 특히 법조 인맥이 많았는데, 지금도 현 정부 청와대 고위 인사를 지낸 유력 인사 ㄱ씨가 면회를 다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밖에도 검찰총장 출신 ㄴ씨, 대검 중수부장 출신 ㄷ씨, 주요 기관장 출신의 국회의원 ㄹ씨 등과 친분을 과시하는 등 유력 인사로 성장했다”라고 밝혔다.

백씨는 무엇보다 금감원 문제를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금감원의 유착 비리는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전일저축은행에서 무자격자들에게 몇십억 원씩 불법 대출이 연이어 이뤄지고 있는 실태를 2004년경 내가 두 번에 걸쳐 금감원측에 팩스로 전달했다. 그런데 나중에 경찰에서 내가 김 아무개 당시 전일저축은행 대표와 대질 심문을 하는데, 그때 김대표가 갖고 있던 서류 속에서 내가 금감원에 보낸 제보 팩스를 발견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금감원에 고발한 은행 비리 문건을 금감원측이 그대로 은행 경영진에 제공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끈질기게 은씨 등 새 경영진의 비리를 제기하는 백씨를 2004년 전일저축은행측에서 명예훼손·공갈 혐의로 고소했다. 조사 과정에서 다시 한번 전일저축은행의 비리를 주장했으나, 오히려 전주지검은 그를 명예훼손·공갈 혐의로 긴급 구속시켰다. 백씨는 “결국 지금에 와서 보면 당시 내가 제기했던 문제들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지 않나. 그런데 내 말에 철저히 귀를 닫았던 검·판이 오히려 나를 전과자로 만들었다”라고 눈물을 삼켰다. 

백씨는 이전 정부의 정책적 과오도 지적했다. 그는 “금고는 지역의 서민 금융기관인데, 이것이 은행 명칭이 되면서 서민 금융기관으로서의 책임을 망각했다. 여수신 취급 지역의 제한을 철폐하면서 전국적으로 협잡배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오히려 확대했고, 부실 대출의 기회까지도 넓히고 말았다. 차라리 지역 업체에 한정했다면 업체의 신용 분석 및 평판으로도 (대출) 평가가 가능한데 이것이 어려워졌다. 대출 거래 업체에 대한 정보 부재로 온갖 사기꾼들이 다 끼어들어버렸다”라고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전일저축은행 자료들을 손에서 놓아본 일이 없다. 이런 사태가 언젠가는 터질 줄 알았다. 막상 이렇게 되고 보니 더 허탈해진다”라며 쓸쓸히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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