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1.06.2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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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앞 동네 문화 잡지 <스트리트H> 만드는 장성환 대표

▲ 장성환 스튜디오203 대표 ⓒ시사저널 전영기

서울 홍익대 전철역 앞은 매주 토요일 밤 9시를 넘어가면 제야의 종이 울리는 종로 보신각 앞처럼 붐빈다. 거리마다, 가게마다, 샛길마다, 발에 채이고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유흥업소가 많아서라면 강남역이나 신촌이 더 붐벼야 하겠지만 홍대 앞은 정도가 더 심하다. 왜 젊은 열기는 이곳으로 집중할까. 

남다른 홍대 앞의 분위기를 형성한 것은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다. 젊고 실험적이고 자유분방한 사고를 하는 ‘주민’이 유독 홍대 앞에는 많다. 그런 ‘동네 주민’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있다. 

편집 디자인 사무실 스튜디오203의 장성환 대표는 <스트리트H>라는 동네 문화 잡지를 2년째 만들고 있다. 이 잡지에는 광고도 없고 상업적인 내용은 하나도 없다. 잡지에는 꼼꼼하게 그린 동네 지도와 그 지도 어디쯤에 가게나 서점, 밥집, 스튜디오, 갤러리 등을 열고 있는 동네 사람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국카스텐’이나 ‘10cm’처럼 지금은 유명해진 인디밴드도 뜨기 전에 <스트리트H>에 먼저 얼굴을 내밀었다. 장대표는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지역을 만든다”라고 홍대 앞 사람을 다루는 이유를 설명했다.

풍부한 문화 생태계, 기록으로 지킨다

“뉴욕에서 <빌리지 보이스>라는 문화 잡지를 보고 나도 그런 동네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홍대 앞만 다루는 콘텐츠가 계속 월간지를 만들 만큼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해하는 분도 있는데 돈에 여력만 있으면 격주간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홍대 앞 생태계는 풍부하다. 마포구에 3천개의 출판사가 있는데 그 가운데 6백개가 홍대 앞에 있다. 대안미술이나 대안예술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도 많다. 다 홍대 앞이니까 가능하다. 홍대 앞이 문화적으로도, 외형적으로도 급변하고 있는데 이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곳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일단 지도부터 만들고 <스트리트H>를 만들었다.”

홍대 앞 샛길을 누비다 보면 ‘누가 보러 갈까’ 싶은 각종 퍼포먼스와 전시를 볼 수 있다. 다양한 날것의,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출발선에 서 있는 예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홍대 앞이라는 이야기이다. 형태를 정의하기 어려운 ‘다방면 예술가’가 골목마다 진을 치고 그런 예술을 보기 위해 감성이 아직 닫히지 않은 젊음이 모여들고, 그 젊음을 구경하기 위해 또 다른 젊음이 모여들면서 주말 저녁에 홍대 앞은 젊음을 위한, 서울에서 제일 큰 놀이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얼마 전부터 장대표는 활동 영역을 넓혔다. 디자인203을 통해 홍대 앞 문화 단체에 디자인 스폰서링을 시작하고 홍대 앞 각종 축제에 공동 주관 자격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돈을 벌지 못하는 잡지를 외부의 지원 없이 계속 발행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장대표는 “이것을 일이라고 생각하면 못했을 텐데, 작업이라니까 할 수 있었다. 해보니 의미를 좇을 때 돈은 부가적으로 따라 온다. 지금까지도 다른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이 일에 쏟아붓고 있는 격이지만 꼭 손해는 아니다. 작업에 만족한다. <스트리트H>를 보고 공동 작업 제안도 많이 들어온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는 왜 홍대 앞에 집착하는 것일까. “나는 홍대 시각디자인학과 83학번이다. 홍대신문에서 문화부장을 했다. 그러나 그것 때문은 아니다. 이곳에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라고 말했다.  


 ‘홍대 앞’을 ‘홍대 앞’스럽게 만드는 사람들

프린지 페스티벌의  오성화 대표
올해로 14년째 홍대 앞을 대표하는 독립예술제인 ‘프린지 페스티벌’을 주관하는 오성화 대표는 독립 예술 웹진 인디언밥, 프린지 스튜디오, 인디스트(자원활동가)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홍대 앞 인디 문화인의 누나요, 언니 같은 존재로 동네 주민과도 각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대학로에서 열리던 프린지 페스티벌은 홍대 앞으로 옮겨와서 자연스레 대표적인 홍대 앞 축제가 되었다. 올해는 8월20일부터 열린다.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김연호 대표
1990년대 후반 시네마테크 세대였던 김연호 대표는 비디오작가연대를 거쳐 대안영상문화발전소인 아이공을 운영하고 있다. 2000년 한국 최초의 비디오아트 전문 페스티벌인 서울 국제 뉴미디어 페스티벌(네마프)을 설립해 국내외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비상업적 영역에서 의미 있는 영상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공간이다. 6월23일부터 <한국 뉴미디어아트의 십년>전이 열리고 있다. <시간의식>(김곡·김선),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윤성호) 등 이제는 상업 영화에 이름을 올린 감독들이 ‘독립 영화’ 진영에서 만든 날 선 영상이 준비되어 있다.

실험예술제 코파스  김백기 대표
홍대 앞에 거리 퍼포먼스 붐을 몰고 온 주인공이다. 가장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예술(퍼포먼스, 인터 미디어 아트, 마임, 실험극 등), 복합 장르, 탈장르 공연예술을 담아내는 실험예술제는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다. 그 자신이 퍼포머 출신인 김백기 대표가 예술감독을 맡아 진행하는 축제로 18개국에서 아티스트가 몰려올 만큼 성황리에 진행된다. 7월24일부터 8월1일까지.

와우북페스티벌  이채관 대표
“홍대 앞을 도시형 책마을로 키우고 싶다”라고 말하는 이채관 대표(와우북페스티벌 조직위원회)는 벌써 4년째 이 페스티벌에 애정을 기울이고 있다. 와우산 기슭에서 열리는 와우 북 페스티벌은 이제는 출판사에서 여기에 못 끼면 메이저(?)가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북페어와는 다른 느낌이다. 요즘은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에 시민 참여형 북 마켓인 ‘와우 책시장’도 열린다.

요기가표현갤러리  이한주 대표
한국이 좋아서 ‘곱창전골’이라는 밴드를 만든 일본인 사토 유키에 씨는 요기가표현갤러리 이한주 대표와 각별한 사이이다. ‘불가사리 실험음악회’의 전용 공연장(?)이다시피 한 요기가표현갤러리. 이곳에서는 부토나 행위 예술, 밴드 공연 등 흔하지 않은 공연만 열린다. 이한주 대표는 홍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으며 ‘마리아나 페라가모 로렌 앤드 포 탱큐스’라는 묘한 이름을 가진 그룹의 베이스를 맡고 있기도 하다.

클럽문화협회  최정한 대표
홍대 앞의 랜드마크 중 하나는 클럽이다. 클럽데이를 운영해온 클럽문화협회는 2003년 12월 공식 출범했다. 최정한 대표는 시민단체의 공간문화센터장의 대표로서 2000년부터 문제가 제기된 클럽 법제화 및 단속에 대한 간담회를 적극 추진하며 ‘클럽데이’의 산파 역할을 했다. 전에는 큰 클럽, 작은 클럽 다 모여서 클럽데이를 열었지만 이제는 큰 클럽끼리만 한다. 그래서 흥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광란의 장은 이어지고 있다.

클럽빵  김영등 대표
토요일 홍대 앞 놀이터에서 열리는 프리마켓은 지난 6월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프리마켓을 운영하는 일상창작예술센터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영등씨. 그는 1998년 산울림 소극장 근처 라이브 클럽 <빵>을 열며 홍대에 입성한 후로 ‘홍대 앞 인디문화 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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