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엘도라도’로 치고 달리는 슛돌이들
  • 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1.07.19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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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호·김우홍·김영규 등 스페인 유스팀들과 잇달아 계약

▲ 백승호 ⓒ연합뉴스

세계 축구의 대세는 스페인이다. 스페인 대표팀은 유로 2008과 2010 남아공월드컵을 잇달아 제패했고 FC 바르셀로나는 UEFA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었다. 스페인 축구를 정상에 올려놓은 원동력은 우수한 선수들을 길러내는 유스 시스템에 있다. 명문 클럽 스카우터는 10년 대계를 위한 유망주를 확보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향하고 있다. 그 스페인 축구의 심장 속에서 한국의 축구 영재들이 자라나고 있다.

‘제2의 리오넬 메시’를 꿈꾸는 한국 영재들

지난 7월6일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는 일제히 백승호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백승호는 축구 신동으로 불리며 서울 대동초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축구계의 화제를 모았던 유소년 선수이다. 그런 그가 스페인의 명문 클럽인 바르셀로나와 유소년 계약을 맺은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는 라 마시아(La masia: 스페인어로 농장을 의미)로 통칭되는 세계 최고의 유스 시스템을 갖추었다. 스카우터는 전세계를 돌며 재능 있는 유망주를 발굴해 유스팀에 입단시킨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르셀로나의 아이콘이자 현 세계 최고의 선수인 리오넬 메시이다. 아르헨티나 뉴웰드 올드보이스에서 영재로 이름을 떨치던 메시는, 13세이던 2000년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입단했다. 당시 메시는 성장 호르몬 장애를 안고 있었는데, 바르셀로나는 그에 대한 치료를 책임지고 가족 전부를 스페인으로 이주시켜주는 정성을 보였다. 결국 메시는 성장 장애를 극복했고 4년 뒤 프로에 데뷔해 2010년 현재 바르셀로나가 클럽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는 데 주역 역할을 하고 있다. 카를레스 푸욜, 챠비 에르난데스, 안드레 이니에스타, 헤라르드 피케, 페드로 로드리게스, 세르히오 부스케츠 등 바르셀로나의 다른 주전 선수도 라 마시아에서 육성된 경우이다.

백승호가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게 된 계기는 2009년 12월 현지에서 개최된 카탈루냐 14세 이하 대회에 출전하면서다. 당시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였던 백승호의 플레이를 인상 깊게 본 알베르트 부이츠 바르셀로나 13세 이하 유소년팀 총괄 감독이 대회 직후 곧바로 러브콜을 보냈다. 간단한 테스트를 거친 백승호는, 2010년 수원 삼성의 유소년 팀인 매탄중에 입학해 국내 학적을 확보한 뒤 곧바로 스페인으로 떠났다. 이후 1년 만에 팀이 체류와 생활에 드는 모든 비용과 행정을 책임지는 유소년 계약에 골인한 것이다. 현재 14세인 백승호는 바르셀로나 유스팀과 5년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유스팀에서 착실히 성장할 경우 프로 계약을 맺을 수 있는 18세 이후까지 백승호를 확보해두겠다는 바르셀로나의 포석이다.

테니스 선수 출신인 부친 백일영 연세대 체육학과 교수의 영향 아래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한 백승호는, 대동초등학교 재학 시절 국내 각종 대회의 득점상을 휩쓸었다. 신영록(제주), 김동섭(광주), 김영욱(전남) 등 특급 유망주를 길러냈던 대동초등학교의 강경수 감독은 “백승호는 지금까지 보았던 선수 중 최고이다. 모든 재능이 탁월하다”라고 평가했다.

백승호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많은 축구 영재가 스페인 무대로 나가고 있다. 현재 만 16세인 김우홍과 김영규가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을 거쳐 알메리아와 유스팀과 정식 계약을 맺었다. 이들 역시 5년 장기 계약이다. 아직 정식 계약을 맺지 않았지만 백승호의 초등학교 1년 후배인 이승우 역시 바르셀로나 소속이다. 대한축구협회 초등 리그와 각종 토너먼트 대회 득점상을 휩쓸며 백승호의 닮은꼴로 통했던 이승우는 지난해 남아공에서 열린 다농 네이션스컵에서 득점상을 차지한 후 현지에 와 있던 바르셀로나 스카우트 관계자의 러브콜을 받고 지난 2월 스페인으로 건너갔다.

최근에는 만 10세에 불과한 이강인이 스페인의 또 다른 명문 발렌시아의 유스팀 테스트를 통과하며 입단했다. 이강인은 과거 KBS에서 유소년 축구 선수 성장을 다룬 방송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의 3기 출신으로 유명하다. 올여름 스페인으로 건너가는 이강인은 발렌시아 유스팀 소속으로 또래 선수들과 경쟁하게 된다.

▲ 스페인의 산 주스토에 있는 바로셀로나 유소년 팀 전용 경기장에서 유소년 선수들이 경기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유소년 계약은 ‘가능성’ 엿보았다는 의미…환상은 금물

축구의 엘도라도라 할 수 있는 스페인에서 한국 유망주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흥미롭고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스페인 축구에 대한 환상으로 인해 이면에 있는 명백한 현실이 가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유소년 계약에는 현재의 지원과 보조 외에는 어떤 미래도 보장된 것이 없다. 바르셀로나와 같은 팀에는 각 연령별로 수십 명의 선수가 있지만, 그중 마지막에 프로계약을 맺을 수 있는 선수는 한두 명에 불과하다. 2002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유망주 사관학교로 유명한 웨스트햄 유소년팀에서 뛰었던 이산의 경우가 그렇다. 중동중학교를 졸업하고 잉글랜드로 건너가 웨스트햄에 입단했지만 프로 계약에 실패한 그는, 이후 1년간 하부 리그의 셰필드 유나이티드에서 뛴 뒤 2007년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하지만 K리그에서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채 프로 경력을 마감했다. 유소년 계약은 말 그대로 ‘가능성’에 국한된 의미일 뿐이다. 백승호를 비롯한 선수들이 유소년 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그들이 바르셀로나의 선수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미 한국 축구에는 남미 유학과 잉글랜드 유학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1990년대 말부터 국내 유망주들은 중·고등학교를 휴학하거나 자퇴하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로 건너갔다. 그러나 현재 K리그에서 정상급 선수로 활약 중인 경우는 월드컵 국가대표 출신인 이호(울산) 선수가 유일하다. 이호 선수는 “브라질의 수준 높은 축구를 배운 것이 도움은 되었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환경도, 언어도 낯선 곳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라고 회상했다.

최근 전남에서 잉글랜드의 선덜랜드로 이적하며 최연소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된 지동원은 17세 시절 대한축구협회의 도움으로 레딩에서 유학을 한 바 있다. 당시 지동원은 함께 유학했던 남태희, 김원식이 프랑스 무대로 진출한 것과 달리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2년 뒤 K리그에 데뷔한 지동원은 1년6개월 동안 빠른 성장을 보이며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 자리를 접수했다. 그런 뒤 자신에게 쓴맛을 안겨준 프리미어리그에 성인 프로 선수로 당당히 도전하게 되었다. 지동원은 “유럽의 육성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수준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린 선수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축구 외에 너무 많다. 오히려 K리그 시스템에서 안정적으로 자라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선수 혹은 부모의 의지로 해외 진출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어린 나이에 유럽 무대로 곧장 향하는 경우는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현재에도 스페인에는 정식 계약을 맺지 못한 채 자비로 유스팀에 도전하는 한국의 축구 유망주가 많다. 이들의 스페인 축구에 대한 동경심을 이용해 숙박과 학업을 지원하는 학원도 속속 등장하고 있어 향후 사회적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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