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박이 회의록’, 하늘에서 떨어졌나
  • 채은하│프레시안 기자 ()
  • 승인 2011.07.1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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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도청’ 논란의 5대 핵심 의혹 집중 분석 / KBS, 해명 내놓을 때마다 의혹만 더 키워

▲ 지난 7월13일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의장 해외 순방 공식 수행 일정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도청 논란’과 관련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도청’ 논란이 장기화되고 있다. KBS 내에서는 양대 노조 모두 김인규 KBS 사장 등 경영진을 향해 “의혹을 빨리 해소하라”라고 촉구하고 있지만, KBS가 해명을 내놓을 때마다 오히려 의혹만 더 커져가고 있다. 과연 이 논란은 어디까지 치닫게 될까. 경찰 수사를 바라보는 정치권과 언론계 주변에서는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언젠가는 결국 밝혀질 것이다”라는 상반된 전망도 나온다. 이 사건이 안고 있는 다섯 가지 핵심 의혹을 집중 분석해보았다.

의혹 1│KBS 기자의 잃어버린 휴대전화?

이번 도청 논란의 중심에는 KBS 정치부 3년차인 장 아무개 기자가 있다. 영등포경찰서는 곧 장기자를 소환해 조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6월23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당시 그가 ‘스마트폰을 회의실에 놓고 갔다’라며 회의가 끝난 후 폰을 가져갔다는 민주당 관계자의 증언이 나오면서 경찰이 그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등 의혹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도청 의혹이 불거진 지 7일 만인 29일 그는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교체한 것으로 드러났다. KBS는 “국회팀 기자들이 6월 말이나 7월 초에 회식을 했는데 그때 분실한 것으로 안다”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증거 인멸’을 위해 고의로 교체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현재 그는, 소속은 정치부에 그대로 둔 채로 사실상 사회부 취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S는 7월11일 ‘KBS 정치부’ 명의로 낸 입장문에서 “특정 기자를 도청 당사자로 지목하는 정치권과 일부 언론의 추측성 보도에 법적 대응할 것이다”라고 밝혔으나, 모든 정황이 그에게 불리한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장기자가 쓰던 휴대전화나 노트북이 발견되지 않는 한 뚜렷한 ‘물증’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경찰에 “장기자가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휴대전화의 위치를 추적해달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의혹 2│‘막내 기자’ 한 명의 단독 행동일까?

설령 장 아무개 기자가 도청 당사자로 밝혀진다고 해도 그의 ‘단독 행동’이냐에는 의문이 남는다. 3년차 방송 기자가 정치부에 가는 것 자체도 이례적이지만, 막내 기자인 그가 회사(KBS)에서 절체절명의 사안으로 걸고 있는 수신료 취재에서 혼자 도청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도청 의혹은 수신료 인상안 처리 과정에서 KBS 기자들이 여야 의원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와 압박을 하고 있다는 비난 속에 제기되었다. 더군다나 장기자의 선배인 전 아무개 기자는 이번 수신료 인상안 처리 국면에서 ‘광범위한’ 활동을 펼쳤음이 나타나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듯 KBS 정치부는 “도청을 했다, 안 했다”가 아니라 “정치부의 어느 누구도 특정 기자에게 이른바 도청을 지시하거나 도청을 지시받은 바 없음을 분명히 한다”라는 애매모호한 설명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은 “일선 취재기자가 공을 세우려 자의적인 단독 행동을 했다고 빠져나갈 예비 수순인가. KBS 윗선까지 수사가 확대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그 이야기를 꺼내놓는가”라고 따졌다. 이른바 ‘꼬리 자르기’의 여지를 열어놓았다는 것이다.

KBS 내부에서도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KBS의 한 기자는 “만약 KBS에서 도청을 했음이 사실로 밝혀지고, 이에 KBS가 해당 기자만 경질하는 식의 ‘꼬리 자르기’를 한다면 KBS 기자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KBS는 도청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하면서도 장기자의 집에 압수수색이 진행된 직후 보도 라인의 최종 책임자인 임창건 보도국장을 KBS대전 총국장으로 발령 냈다. 이에 대전충남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측근 감싸기 인사이다”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의혹 3│KBS가 주장하는 ‘제3자’의 도움?

KBS 정치부는 “회의 내용을 파악하는 데 제3자의 도움이 있었다는 점을 부득불 확인한다”라고 밝혔다. 도청 의혹이 제기된 지 20일여 만에 나온 이 해명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 논란에 대처하는 KBS의 향후 태도를 분명히 규정했다. ‘누구로부터 회의 내용을 얻었느냐’는 추궁에 ‘취재원 보호’를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KBS는 지난 7월12일 <뉴스광장>에서 이례적으로 뉴스 해설을 통해 도청 의혹에 대해 “취재원 보호는 언론인에게 목숨과도 같다”라며 ‘언론 자유’로까지 논란을 확대시켰다. 

“제3자의 도움이 있었다”라는 말은 민주당 내에 최고위원회의의 내용을 유출한 KBS의 조력자가 있다는 의미이다. 민주당은 이 발언에 대해 허위 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이라며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을 민·형사 고소·고발하겠다고 밝혔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KBS와 한선교 의원 모두 경찰 조사에서 보안을 전제로 정보원을 밝힐 수도 있으나, 만약 그렇게 되면 논란의 불똥이 민주당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취재원 보호’를 위해서든, 다른 이유로든 KBS나 한나라당이 그 정보원을 공개할 가능성은 극히 작아 보인다. 

▲ 지난 7월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불법도청특위에서 천정배 위원장(오른쪽 두 번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의혹 4│KBS는 한나라당에 ‘회의록’ 주었나?

이번 도청 의혹을 둘러싼 쟁점 중에서 KBS가 간접적으로라도 언급하지 않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과연 KBS가 한나라당에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의 녹취록을 제공했느냐는 문제이다. KBS 정치부는 “KBS는 이러한 노력들을 종합해서 회의 내용을 파악했다”라고만 밝혔다. ‘도청은 하지 않았으나 KBS도 회의록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러나 KBS 정치부는 이 회의록을 한나라당에 제공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만약 KBS가 한나라당에 수신료 인상 로비 차원에서 민주당의 비공개 회의 내용을 제공했다면 이 역시 취재 내용을 사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KBS의 신뢰성과 공정성이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녹취록을 읽어 도청 의혹을 촉발시킨 한선교 의원 역시 면책특권을 주장하면서 “누구에게 받았는지 공개할 수 없다”라고 방어했다. 도청 의혹이 제기된 직후 박희태 국회의장의 해외 순방을 공식 수행하는 데에 나서 11박12일간 출국했던 한의원은 7월13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한의원은 귀국 직후 “설령 도청이라고 하더라도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때문에 나는 (조사 대상에) 해당이 안 된다. 경찰에 나갈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한선교 의원이 취득한 녹취록이 불법 도청물이 아니라면 경찰에 나가 불필요한 논란을 조기에 끝내는 것이 낫다. 한의원의 주장에는 ‘제 발 저려 하는’ 대목이 있다”라고 꼬집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영등포경찰서의 대응이다. 한선교 의원에게 7월15일까지 경찰에 출석하라고 통보한 영등포경찰서는 한의원이 계속해서 출석 요구에 불응할 경우 강제 수사, 강제 구인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이번 사건 수사에 의지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언론계에서는 레임덕의 방증이자 ‘수사권 독립’을 두고 경찰이 이미지 확립을 위한 기회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사건이 ‘영구 미제’로 흐를 것인지, 아니면 모종의 진실이 밝혀질 것인지의 변수는 영등포경찰서의 수사에 달려 있다.

의혹 5│KBS는 왜 자체 조사를 하지 않나?

또 한 가지 의문점은 KBS가 이번 의혹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만약 자사 기자에게 뇌물 수수 등의 비리 의혹이 제기되었다면 경찰 조사에 맡기기에 앞서 자체 조사를 통해 사태를 규명하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다. 그러나 KBS는 계속 “경찰 조사를 지켜보겠다”라는 태도만 취하고 있다. 물론 ‘수신료 인상’이라는 사안의 특수성상 설령 KBS가 자체 조사를 하더라도 ‘범인’을 공개하지 않는 한 의혹은 점점 커질 가능성이 크다. 김인규 사장 역시 사건 초기에는 “벽치기는 일반적인 취재 기법이다”라는 등의 발언으로 논란을 키우다, 지난 7월12일 3일간 일본 출장을 떠났다. KBS가 ‘KBS’가 아닌 ‘KBS 정치부’의 명의로 입장을 밝힌 것처럼 이번 사태 수습에서 경영진은 최대한 물러나 있으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KBS 입장에서 보면, 이 문제가 ‘수신료 인상’이라는 목적이 존재하는 한 ‘버티기’만으로는 결코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현재 수신료 인상안은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되어 있다. 이번 도청 파문으로 인해 오는 8월 임시국회에서 수신료 인상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희박해진 상태이다. 이번 도청 파문이 ‘의혹’ 수준에서 종결된다 해도 수신료 인상안 처리가 화두로 오를 때마다 다시 불거질 수밖에 없고, 이미 여론에는 ‘KBS가 도청을 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도 하다. 한 KBS 기자는 “오는 8월 국회는커녕 내년에도 수신료 인상안이 처리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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