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덫’에 단단히 걸린 언론 제국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7.26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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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루퍼트 머독, 영국 내각과 유착 등 문제 삼는 여론 뭇매에 추락 위기

▲ 지난 7월10일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영국 런던의 자택을 나서며 자신이 1면에 등장한 신문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상 사람들은 호주 출신의 언론인 루퍼트 머독을 ‘언론 황제’라고 부른다. 그냥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뉴스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은  미국, 영국, 아시아에 유력 신문사와 TV 방송, 영화사를 소유하고 있고 2011년 현재 그의 미디어 그룹 총 자산은 67억 달러에 달한다. 세계 인구의 4분의 3이 그가 만드는 뉴스 상품의 소비자이다. <타임>이 선정한 세계의 100대 인물에 세 번이나 올랐고 <포브스>가 2010년에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순위에서는 13위, 세계 부자 리스트에서는 1백17위에 올랐다.

호주 지방 신문 경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35년 전 미국의 뉴욕포스트를 인수하면서 세계 무대에 발을 디뎠다. 그때만 해도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미국에서 폭스뉴스를 창설하자 사람들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모기업 다우존스를 50억 달러에 인수했을 때는 어느새 언론 황제를 넘어 언론계의 이단아 혹은 괴물로 비치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홍콩 스타TV를 10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거기서 일하던 중국 여인 웬디를 세 번째 아내로 맞이했다. 사업을 위해 정략결혼을 한 셈이다.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공산당의 일당 독재를 찬양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한 언론인이 아니다. 언론과 인터넷은 물론이고 정계, 재계, 연예계로 손길을 뻗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미디어계의 히틀러라는 혹평을 받을 정도로 무자비하고 단호했다. 경쟁사를 기어코 무너뜨리고, 회사가 비틀거리면 즉각 인수했다. 활자 신문을 전자 신문으로 바꾸면서 6천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이 그의 욕망을 무한정 받아주지는 않았다. 2006년 그가 런던에서 발행하는 타블로이드 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가 왕실과 정치인들의 전화를 도청하는 불법 행위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머독은 이를 일축했다. 말단 기자 한 명이 취재 욕심 때문에 저지른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려는 정부의 방침에도 반발했다. 이를 조사하면 명사들의 사생활이 노출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도청 스캔들을 부인으로 일관하는 머독의 오만에 영국 독자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도청 대상이 수천 명에 달하고 심지어 억울하게 죽은 열세 살짜리 소녀의 전화까지 도청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머독 왕국의 도청 의혹은 2011년 여름을 강타한 태풍으로 변했다. 이 사건에 영국 경찰도 연루되어 경찰청장이 사임하고 도청을 폭로한 기자는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 모든 불행이 캐머런 내각과 머독의 유착 때문에 생겼다는 여론이 거세졌다. 머독은 문제의 타블로이드를 폐간했으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머독의 이중성에 독자들 환멸 느껴

▲ 루퍼트 머독의 가면을 쓴 시위 참가자가 영국 총리(오른쪽)와 문화장관(왼쪽)의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초점은 머독이 이 스캔들을 알고 있었는지, 알았다면 그 시점이 언제인지에 집중되어 있다. 영국 경찰과 의회는 이 점을 집중적으로 파헤칠 태세이다. 머독은 ‘치밀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경영진들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치밀한 사람이 왜 도청 비리는 몰랐을까 하는 것이 사건의 핵심이다. 이즈음에 사건에 불을 지른 것은 지난해 9월1일 발행된 뉴욕타임스 매거진의 기사였다. 당시 뉴스 오브 더 월드의 편집국장이었던 앤디 쿨슨이 도청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보도에 머독 그룹은, 사실을 인정하기는커녕 뉴욕타임스를 공격하면서 머독의 대표적 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과의 경쟁을 의식한 음해라고 반박했다.

뉴욕타임스와의 갈등은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머독이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을 찬양하는 발언을 하자 뉴욕타임스의 자매지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2회의 시리즈 기사를 통해 머독의 중국 진출 방식을 꼬집었다. 머독측은 성명을 통해 “뉴욕 타임스가 자사 이익을 위해 선의의 경쟁자를 모함하는 오만을 일삼고 있다”라고 응수했다. 미국의 두 거대 언론이 중국을 놓고 육탄전을 벌이는 모습을 중국 지도자들은 흥미롭게 구경했다. 

머독은 올해 80세이다. 세 번의 결혼을 통해 여섯 명의 자녀도 두었다. 두 번은 신문기자와 한 번은 스튜어디스와 결혼했다. 세 번의 결혼이 모두 미디어 경영과 관련이 있다. 그는 그만큼 미디어에 미쳤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독자들은 뉴욕타임스의 정론보다는 타블로이드판 가십 기사에 더 흥미를 갖게 되었다. 머독이 이 흐름을 놓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착안한 수법이 명사들을 도청하는 것이다. 특히 섹스에 관한 도청은 판매 부수를 늘리는 묘약이었다. 이 덕분에 뉴스 오브 더 월드는 한때 3백50만부가 팔렸다. 그러나 그것이 독이 될 줄은 몰랐다. 물론 머독이 독자들의 취향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그에게 책임이 있다면 그런 시류에 편승해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언론 본연의 책무를 포기한 점이다. 그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확대한 흔적은 수없이 많다.  

2003년 그의 왕국은 위기에 빠졌다. 폭스뉴스의 시청률이 급상승하자 미국 의회는 35% 상한을 설정할 움직임을 보였다. 전방위 로비가 시작되었다. 백악관도 그의 편을 들었다. 그해 말 의회는 오히려 시청률 제한 상한을 39%로 높였다. 의회, 행정부, 재계가 모두 그의 수완에 굴복한 결과였다. 35%를 고집하던 공화당의 트렌트 로트 상원의원도 결국 후퇴했다. 알고 보니 머독은 로트와 사업상 유대를 구축하고 그를 동업자로 만들었다. 호주와 런던에서 언론 사업을 시작한 그는 미국으로 무대를 옮긴 지 12년 만에 경쟁자들을 거의 제압했다. 머독 특유의 사업 수완이 이때도 동원되었다. 공화당과 민주당에 모두 정치 자금을 대고 부시와 클린턴에게도 접근했다.

그는 정치 기상에 재빨리 적응했다. 2006년에는 정치 헌금 4백70만 달러를 쾌척했다. 영국에서 반(反)노동당 노선을 견지하던 그는 1997년 블레어 총리 시대가 시야에 들어오자 어느새 다우닝가 10번지의 진객으로 변신했다. 머독은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포함해 핵심 정치국원들과 오찬을 나눌 정도로 가까웠다. 그는 중국 지도층이 가장 좋아하는 서방 언론 사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머독의 뉴스그룹은 중국 시청자들에게 가장 많은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머독은 중국 시장에 15년간 공을 들였다.

그가 노리는 것은 연 5백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 광고 시장이다. 머독은 자신이 소유한 출판사에서 덩샤오핑 전기를 출판했다. 덩의 딸이 저술한 이 책의 판촉을 위해 뉴욕에서 출판기념회도 주선했다. 장애자인 덩의 아들과 접촉했다. 그가 만든 장애인 곡예단에 특별기를 제공해 해외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 덕분에 스타TV는 결국 BBC를 제치고 중국에 전파를 송출하는 데 성공했다. 머독은 톈안먼 사건 때 탱크 앞을 가로막은 청년의 모습을 방영한 BBC의 처사를 멍청한 짓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루퍼트 머독의 도청 스캔들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단단히 걸려들었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칼럼니스트 피터 오본은 캐머런이 시궁창에 빠졌다고 꼬집었다. 머독의 도청 사건으로 왜 영국 총리가 흔들리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캐머런이 머독의 욕망을 배출시키는 ‘하수구(sewer)’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뉴욕타임스는 캐머런이 머독과의 인간적 대결에서 “패배했다”라고 논평했다.

가장 큰 실수는 도청 사건으로 폐간된 머독의 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의 전 편집국장 앤디 쿨슨을 다우닝가의 홍보국장으로 임용한 일이다. 이 인사는 상식에 맞지 않는 오기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중 목적을 계산한 것이라는 얘기이다. 캐머런의 속셈은 쿨슨이 이튼 출신의 명사가 아닌 보통 사람인만큼 그런 평범한 인물을 중용함으로써 친서민 인상을 심어주고 나아가서는 영국 인쇄 매체의 37%를 소유한 머독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 루퍼트 머독의 미디어 제국 ‘뉴스코퍼레이션’

연루된 캐머런 영국 총리, 정치적 고비 맞아

캐머런과 머독의 이상한 유대는 이것만이 아니다. 캐머런은 취임 첫해에 머독이 회장으로 있는 뉴스코퍼레이션(뉴스 코프) 인사들과 스물여섯 차례의 석연찮은 회동을 했다. 머독측의 인사들 중에는 도청 사건으로 체포된 레베카 브룩스도 끼어 있다. 교활하고 권력 지향적이며 비도덕적인 인물로 알려진 브룩스는 하필이면 캐머런 총리의 선거구인 옥스퍼드샤이어 인근에 거주하고 있다. 이것이 우연일 수도 있으나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롭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또한 머독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한 PR 전문가 매튜 프로이드도 캐머런 총리의 저택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이 문제의 인사들이 거주하는 캐밀롯 구역은 고대 아서 왕의 궁전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특수 주거지로 보통 사람들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캐머런이 정상적인 판단력이 있는 인물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캐머런 연립 정부는 뉴스코프가 스카이 방송 지분 61%를 인수하려 할 때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으나 흑막은 그대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캐머런이 브룩스, 머독 그리고 머독의 아들 제임스의 농간에 말려들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전후 관계를 미루어 보면 머독측 인사들보다 캐머런이 더 이상하다는 인상을 준다. 

하수구에 빠진 것은 캐머런 말고도 또 있다. 시시콜콜한 신변잡기들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면서 독자들의 관음증을 충족시키는 타블로이드의 기사를 용인한 영국적 문화 또한 머독의 먹이가 된 꼴이다. 결국 독자들의 구미에 맞으면 무슨 수를 쓰든 기사를 발굴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머독이 이런 문화를 만드는 데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대해서는 토론의 여지가 있다. 어쨌든 이런 풍토가 결국 범죄를 낳았다는 점, 그리고 머독이 이 과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사건을 둘러싸고 경찰과 의회가 서로 묵계를 한 정황도 엿보인다. 같은 상황이 일어나도 서구 사회가 이를 묵인할까 하는 가정을 해본다. 명사들의 신변사에 대한 집착, 특히 섹스 편력에 대한 호기심, 뉴스와 연예 기사 간의 애매한 경계선, 정치적 신의와 돈에 대한 유혹 등이 판을 친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머독이 없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으리라는 순진한 기대가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영국 그리고 그 문화에 대한 머독의 인식 세계는 어제오늘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는 청년 시절 아버지로부터 적잖은 부를 물려받은 후 영국으로 유학했다. 우스터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 정치, 경제를 전공했다. 당시에는 노동당에 심취했으나 나중에 신문사를 경영하면서는 노동당과 보수당을 넘나들며 정계에 인맥을 쌓았다. 영국 시장에 진출한 것은 뉴스 오브 더 월드를 인수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어 더선, 선데이타임스, 더타임스를 사들였다. 사실상 영국 언론 전체를 독식한 셈이다. 마가렛 대처 전 총리, 고든 브라운 전 총리와도 인간적인 인연을 맺었다. 이런 과거를 보면 머독이 캐머런과 가까웠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불법 도청 사건만 터지지 않았다면 말이다.

머독 얘기는 이 시대의 한 단면을 상징한다. 이 비극은 비단 뉴스코프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미국 의원들이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한 예산 적자를 놓고 국익보다는 당리당략에 매달리는 모습도 영국 정치의 모양과 비슷하다. 공화당이나 민주당 할 것 없이 마음은 모두 내년 선거에 가 있다. 특히 오바마의 발목을 잡는 공화당 의원들의 아집은 캐머런보다 나을 것이 없다.

머독은 ‘결점이 많은 천재’이다. 그의 천재성보다 결점이 그를 압도한 것은 그의 개인적 비극이자 인과응보이다. 그는 오늘의 뉴스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보다 잘 간파하고 그 식욕을 유감없이 채워주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그는 많은 사람을 이용했다. 캐머런도 그중 한 사람이다.

정치와 언론의 유착은 영국과 미국은 물론 모든 나라에서 일어난다. 돈으로 정치를 사고 상황을 비틀고 특권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정치는 사라진다. 머독의 폭스뉴스는 특히 미국에서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 정치색 짙은 논평이나 해설을 수시로 내보낸다.

머독과 캐머런의 더러운 댄스는 영국 사회의 치부를 드러낸 드라마이다. 또한 서구 사회 전체의 문제점을 폭로한 사건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권토중래할 수 있을까? 캐머런은 아직 젊은 정치인이다. 그래서 재기 가능성은 80세인 노령의 머독보다 큰 편이다. 하지만 나이를 떠나 생각해보면 산전수전 다 겪은 머독이 살아남을 전망에 주목하는 사람도 많다. 7월18일 열린 의회 청문회에 나온 머독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말했으나 이에 관련된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노동당은 펄펄 뛰고 있다. 아프리카를 방문 중이던 캐머런은 일정을 단축하고 급거 귀국길에 올랐다. 

머독 소유 언론과 반머독 언론의 대결로 비화

머독은 미국 시민권자이면서 영국을 더 사랑했다. 그의 야심은 영국 시장을 무대로 언론 왕국을 키워 필생의 경쟁사인 뉴욕타임스와 CNN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이 사건에 유독 독설을 내뿜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머독이 소유한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설을 통해 머독을 두둔하고 일부 미국 언론의 무차별적 머독 비판을 반박했다.

사건은 어느새 머독 소유의 언론과 반(反) 머독 언론의 대결로 비화되었다. 이러다가는 미국과 영국 간 동맹 관계에까지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다. 유럽 경제는 비틀거리고 중동 민주화는 교착되고, 미국마저 부도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이 전례 없는 글로벌 위기에서 머독은 연일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독점한다.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서의 역량을 십분 보여준다. 어쩌면 머독의 거대한 왕국에서 하수구 역을 맡은 캐머런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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