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 멈추고 ‘상생의 배’ 뜰 날은?
  • 부산 영도·김세희 기자 (luxmea@sisarpess.com)
  • 승인 2011.07.2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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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19일 오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자들이 85호 크레인에서 고공 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과 동료들을 응원하며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2009년 말부터 시작된 한진중공업 노사 갈등은 2010년 12월을 기점으로 폭발했다. 해고자들은 거리로 내몰렸고 그들을 돕기 위해 한 여인이 크레인 위에 올랐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가 원만한 해결을 촉구하며 사태는 노동계를 넘어 사회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그들은 다시 배를 만들 수 있을까. 8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사측과 해고자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돌아와요 조선소에, 그리운 내 형제여.” 지난 7월19일 저녁 7시30분. 어둑해진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맞은편 인도에서는 익숙한 듯 낯선 노래가 울려퍼졌다. 바람이 거세게 불던 영도에는 이윽고 빗방울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3열 종대로 나란히 앉아 노래를 따라 부르던 이들이 입고 있는 푸른 작업복은 그들이 ‘한진중공업 노동자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노동자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정리해고 철회하라.” 매일 같은 시각에 열리는 야간 집회는 한 시간여 가까이 이어졌다. 거센 바람도, 떨어지는 빗방울도 개의치 않았다. 그날의 집회가 막바지에 접어들 때쯤 70~8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한곳을 향해 소리쳤다. 그 소리가 전달되었을까? 맞은편 35m 상공에서 작은 불빛이 원을 그리며 반짝였다. 크레인 농성 1백95일차에 접어든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화답이었다.

선박 6척 신규 수주…사태 해결 도움 못 돼

최근 한두 달 사이 한진중공업 사태는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희망버스’가 기폭제가 되었다. 1천여 명으로 시작된 희망버스는 2차로 접어들며 1만여 명으로 규모가 대폭 확대되었다. 해고자들의 복직 투쟁이 알려졌고, 크레인 위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을 보기 위해 평일에도 영도 한진중공업 현장을 찾는 인파가 줄을 이었다. 그러다 지난 6월27일 채길용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노사협의이행합의서에 서명한 사실이 공개되었다. 이에 응답하듯 지난 7월6일 사측은 선박 6척 수주라는 ‘3년만의 쾌거’를 발표했다.

노사 관계가 원만하게 조정되고 경영은 정상화를 향해 나아가는 듯이 보였다.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수주는 지난 6월27일 극적으로 노사 합의를 이끌어낸 이후 첫 신규 수주로 회사 정상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다”라며 기대감을 밝혔다. 그러나 류장현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교선부장은 “노사협의이행합의서에는 ‘정리해고된 사람 중에 투쟁하지 않으면 희망퇴직금은 준다, 손해배상은 최소화한다’는 내용들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회사를 떠나라는 것이고, 손해배상을 무효화한다는 것도 아니지 않나.

우리가 보기에는 내용이 하나도 없고, 채길용 지회장이 조합원들의 동의 없이 서명을 해버린 것에 불과하다”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최근 몇 년간의 선박 수주 공백에 대해서도 “2008년 들어서 조선업이 갑자기 위기를 맞은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물량이 줄어들었을 뿐이다. 조선업의 경기라는 것이 주기가 크다. 2009년까지는 한진중공업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도 수주에서 어려움을 겪었다”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주요 쟁점은 정리해고였다. 사측이 희망퇴직을 권고하면서 마찰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졸지에 ‘해고자’가 된 노동자들은 회사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노사협의이행합의서에는 복직을 언급한 조항이 없었다. 본질을 피해갔으니 투쟁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런데 사측의 희망퇴직 권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2년여 전인 지난 2009년 12월11일 사측은 조선부문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권고했다. 이로 인해 3백49명이 회사를 떠났다. 해를 넘겨 2010년 2월에도 60명이 추가로 희망퇴직을 통해 한진중공업을 떠나갔다. 노조는 반발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미 2009년 하청 노동자들에게 주기로 했던 성과급 20억원, 사무 관리직의 강제 서명을 통한 성과급 반납 14억원 등만 해도 목표 달성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라고 말했다. 

2009년 12월17일을 기점으로 노조는 부분파업과 총파업을 병행한 투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 달여 후인 2010년 2월26일, 노사 간 교섭 끝에 합의안이 도출되었다. ‘회사는 2009년 12월18일부터 시작한 인위적인 구조조정(일방적 정리해고)을 2010년 2월26일부로 중단한다.’ 4백명이 넘는 동료들이 떠나간 후 얻은 반쪽짜리 승리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10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12월20일 한진중공업 사측은 ‘조선 부문 직원 희망퇴직 시행 안내’가 적힌 문서를 배포했다. ‘조선 부문 비상 경영 상황하에서 회사는 경영 위기 극복과 직원들의 고용 유지를 위하여 지속적인 자구 노력에 최선을 다하였으나 경영 상황은 더욱 악화 일로에 있어 불가피하게 아래와 같이 희망퇴직제를 시행하오니 퇴직을 희망하는 직원은 신청서류를 작성하여 인사1팀으로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생산직 4백명 감축을 목표로 한 사측의 희망퇴직 권고 시한은 닷새였다. 이후에는 해고 예고 통보와 해고라는 절차가 예정되어 있었다. 사측은 업무량 고갈, 수주 경쟁력 저하, 매출액의 현저한 감소, 경영 실적 악화를 이유로 제시했다. 특히 지난 2010년에 기록한 적자와 2~3년 남짓 이어진 수주 공백 상태를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 한진중공업의 경영 상태가 정리해고를 정당화할 만큼 위기 상황인지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다. 법원의 판례는, 기업이 해당 시점에 실제 그럴 만한 사유가 있는지 보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한진중공업에 적용해보면 2010년 말에 회사가 노동자 4백명을 정리해고할 만한 사유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된다.

정리해고 정당성에 관한 쟁점들

한진중공업은 지난 2월8일 공시를 통해 2010년 당기순손실 5백17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조선 사업 부문 물량이 감소하면서 매출이 떨어졌고, 서울 신문로 베르시움 사업과 관련한 소송 패소로 일회성 비용이 발생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런데 지난 3월 공시된 한진중공업 감사보고서와 사업보고서를 보면 2010년 한진중공업은 조선 부문에서 1천4백9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을 알 수 있다. 제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7% 수준임을 감안할 때 그 두 배에 가까운 영업이익률(13.7%)을 기록한 것이다. 주요 조선소와 비교했을 때도 한진중공업의 우수한 영업이익률을 확인할 수 있다(<표 1, 2> 참고). 반면 건설 부문에서는 11억원, 단 0.1%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송덕용 공인회계사는 “회사가 발표한 2010년 적자는 건설 부문의 소송 비용이 결정적이었다. 이 영업외 비용이 포함되면서 회사에서는 ‘어쨌든 손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 그 소송과 전혀 무관한 파트인 조선 쪽에 리스크와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조선 부문에서 손실이 나고 수주가 안 되어서 경영 실적이 악화되었다고 하면 말이 되는데, 왜 건설에서 생긴 손실을 조선에서 감당해야 하나.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2002년 서울 신문로 베르시움 오피스텔 시공업체로 참여했다가 분양 실패와 시행사 대표의 횡령 혐의까지 발생하면서 공사가 수년째 중단되는 파행을 겪었다. 한진중공업은 공사비 3백20억원을 받지 못했고, 삼성생명 역시 이자 지급을 받지 못해 손실을 입었다. 이에 대해 지난 1월13일 삼성생명에게 7백23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이 금액은 2010년 적자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또 한 가지는 자회사의 손실액이다. 송덕용 회계사는 “수빅 조선소를 운영하는 한진중공업 필리핀 법인의 경우 지난해 당기순손실 3백84억원을 기록했다. 100% 자회사이기 때문에 기업 기준상 반영이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영도조선소의 손실로 보기는 힘들다”라고 말했다.

임금 문제에서도 양측의 대립은 날이 서 있다. 사측은 정리해고의 근거로 “노동자의 임금이 높아 수주 경쟁력이 떨어진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조는 “다른 조선업체들과 비교했을 때도 우리는 낮은 수준이었다”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경영되었던 2008년의 임금 수준을 놓고 다른 조선업체와 비교해보았을 때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7대 조선소 평균 임금의 70%에 불과하다(<표 3, 4> 참조). 이마저도 해가 거듭될수록 차이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2010년 상반기 기준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1인당 월평균 임금(건설 부문 포함)은 3백78만원으로 삼성중공업의 6백17만원, 대우조선해양의 5백88만원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사내이사의 연봉도 도마 위에 올랐다. 조남호 회장(대표이사), 이재용 사장(조선 부문 대표이사), 조원국 상무(조선영업본부장·조남호 회장의 아들), 송화영 사장(대표이사·건설 부문)으로 이루어진 4명의 사내이사 평균 연봉은 2010년 기준 3억원에 달했다. 2009년 2억2천여 만원에서 8천여 만원이 인상된 금액이었다. 서수한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수석부지부장은 “회사가 어려워 4백명을 정리해고하겠다고 통보해놓고 1백74억원 주식 배당에 이어 모회사는 52억원의 현금 배당을 실시하더니 이제 회사 임원들의 급여마저 인상했다”라고 말했다. 

필리핀 수빅 조선소와 맞물리면서 노동자들은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리해고를 통해 영도조선소를 축소해서 결국 수빅으로 넘어가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도 이런 불안함에서 기인한다. 이 불안함의 결과를 예견해서였을까? 사실 한진중공업 노조는 지금과 같은 일에 대비해 지난 2007년 3월 해외 공장 관련 특별 단체교섭 합의를 맺은 바 있다. ‘회사는 현 수준의 적정 인력을 유지하며 경영상의 이유로 국내 공장의 축소 및 폐쇄 등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 특히 해외 공장 운영으로 인해 국내 공장 조합원의 고용 불안이 발생치 않도록 한다’라는 것이 합의서의 골자였다.

정치권도 나섰지만 해결의 실마리 안 보여

▲ 지난 7월19일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과 해고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류장현 금속노조 교선부장은 “당시 회사는 수빅에서 완성된 배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블록만 만들어서 한국에 가져와 완성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조선소 노동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래서 노사 합의를 맺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노사 합의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당장 2009년부터 구조조정은 서서히 시작되었다. 류부장은 “당시 노사 합의 얘기를 하면 회사에서는 ‘그건 그때고, 지금은 어려워서 이렇게 되었다’라는 말뿐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최근에는 한진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정치권까지 가세해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부산 영도가 지역구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사태 해결의 열쇠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쥐고 있다. 노사 협상장이든 청문회장이든 당당히 나타나야 한다”라고 말하며 대화와 타협을 촉구했다. 민주당 등 야당들도 적극 개입하는 흐름이다. 부산에서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기선 잡기 싸움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노사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라며 정치인, 시민단체를 비롯한 제3자의 개입을 차단하고 있다. 서울과 부산 곳곳에서 1인 시위와 단식 농성, 문화제 등을 통해 문을 두드리는 이들과 아직까지 굳게 문을 걸어 잠근 회사, 오는 7월30일 3차 희망버스 도착이 예고되어 있는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정문은 여전히 차벽에 가려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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