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일터·가족 잃고 남은 것은 빚뿐”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7.2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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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지구 협력업체들, 관광 중단 뒤 3년 흐르면서 ‘사실상 파산’ 위기에 몰려

▲ 금강산 재산권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7월13일 오전 군사분계선을 넘어 방북했던 민관합동협의단이 오후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로 돌아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3년이 지났다. 지난 2008년 7월 금강산 지구에서 한국인 관광객 박왕자씨가 피격되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후부터다. 관광 재개 문제를 두고 남북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북한 당국에서는 중단된 관광이 즉시 재개되기를 바라는 반면 한국 정부는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등을 선결 과제로 내걸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지난 7월13일 남북은 금강산관광지구 내 재산권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만났다. 북측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기 어려우면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에 따라 남측의 부동산 자산을 임대·양도·매각할 수 있다’라는 입장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에 서두현 통일부 사회문화교류과장을 단장으로 하는 민관합동협의단 10명이 방북해 북측과 재산 정리 문제를 협의했으나 별다른 진전은 보지 못했다. 현재 재산권 정리와 관련된 추가 협의는 7월 말로 미루어진 상황이다.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금강산지구 협력업체들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상당수는 ‘사실상 파산’에 가까운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로 인한 고통으로 사망에 이른 경우까지 발생했다. 장보현 창희식품 대표는 경영난으로 인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금강산에서 맥주 공장과 레스토랑 등을 운영하던 이종흥 금강산코퍼레이션 대표 또한 지난해 초 뇌혈관 손상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시사저널>의 취재 결과 업체들의 상황은 대부분 암담했다. 특히 금강산 관광에 투자한 영세업체들의 피해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한 평생 운영해오던 사업장의 문을 닫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지내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한때는 업체의 대표였지만 이제는 거리의 좌판상으로 전락한 이도 있었다. 지난 2007년부터 금강산지구에서 ‘허브타운’을 운영했던 김 아무개씨는 “이제 일을 접고 강화도에서 채소 장사를 하며 빚을 갚고 있다. 가족들과 헤어져 지낸 지도 오래되었다”라며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김씨는 원래 인천에서 허브용품 제조업체를 운영했었다. 직원 수가 11명으로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지만 회사를 부지런히 키워온 덕분에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김씨가 금강산지구에 입주한 것은 지난 2007년 7월 무렵이다. 금강산지구 입주 업체 가운데 거의 마지막으로 금강산에 들어간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일을 추진한 지 1년이 되지 않아 금강산 관광은 중단되고 말았다.

김씨는 초기에는 곧 관광이 재개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일이 터지고 6개월 정도는 직원들의 임금을 지급해주며 기다렸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빚을 내서 회사를 이끌 수는 없지 않나. 결국 직원들이 다 스스로 퇴사했다”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김씨는 “여기저기서 끌어모아 금강산지구에 투자한 돈이 2억원가량이다. 게다가 재고 상품도 2억원 정도 된다. 북측의 재고는 회수하지도 못했다. 회수했다고 해도 관광용품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되파는 것도 불가능하다”라고 전했다.

돈과 일터 그리고 가족마저 잃은 상황에서 그에게 남은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뿐이었다. 김씨는 “지금은 차라리 파산 신청을 해서 신용불량자가 되는 게 편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가 빚을 갚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이유는 ‘혹시라도 정부의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김씨는 “파산을 인정하고 폐업 신청을 해버리면 나중에 금강산지구와 관련되어 피해 보상을 받을 길이 닫혀버리고 말 것이다”라고 말했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된다면 김씨의 상황이 나아질 수 있을까. 김씨는 “(재개된다고 하더라도) 회복하기는 어렵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미 녹초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함께 좌판을 운영하는 동료가 있는데 그도 금강산지구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빚을 짊어지게 되었다. 아마 다른 몇몇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금강산지구기업협의회의 최요식 부회장은 “투자한 자금으로 인한 문제뿐만 아니라 건강상에 문제가 있거나 가족들과 헤어져 지내는 이들도 상당히 많다. 집안의 가장이 돈을 벌고 있지 못하는 상황인데 가정생활이 순탄할 리 있겠나”라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 차원의 대책은 없었던 것일까. 지난해 말 정부는 금강산지구 협력업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금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남북협력기금을 2%의 저리로 대출해주어 기업들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들의 어려운 상황을 감안해서 연리 2%의 저렴한 이자로 대출을 해주었다. 이에 따라 올해 1월에는 15개사가 2%의 저리로 약 47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정부 대책도 영세업체에게는 ‘그림의 떡’

▲ 지난 7월19일 동해안 최북단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동해선 육로에 적막감이 감돌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업체 관계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일부는 “과연 대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납득할 수 없는 대출 조건으로 업체들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정부가 ‘납득할 수 없는 대출 요건’을 통해 업체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켜 결국 이들의 힘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금기협의 전 부회장이었던 조국래 동국테크 대표는 “올해 정부는 ‘무담보 대출’ 조건을 내세웠다. 2010년 1차 대출을 진행할 때에는 ‘담보 대출’이어서 자금난에 시달리는 영세업체들은 아예 대출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의 ‘무담보 대출’에도 조건이 있었다. 업체 가운데 ‘북측에 부동산이 있는 경우’에 한해 대출을 시행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금강산지구에 기념품 등을 납입했던 대다수의 상품업체들은 대출 신청 대상에 포함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는 “과연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피해를 입은 영세업체들을 돕겠다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대출과 관련해 상품만 판매하는 일부 업체들이 불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초콜릿 업체가 있다고 치자. 어떻게 유효 기간이 있는 초콜렛을 담보로 대출을 해 줄 수가 있겠나. 정부 기금을 무조건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지금까지 현대아산 등 규모가 큰 기업을 제외한 금강산지구의 협력업체들은 ‘금강산지구기업협의회’를 꾸려 공동으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 모임에 소속된 업체들은 크게 호텔이나 부동산업, 식당 등 요식업, 기념상품 등을 만드는 상품 관련업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상품 관련업이 17~18개사로 가장 수가 많다. 이 모임에 속한 한 업체의 대표는 “상품 업체 수는 많아도 사업의 규모가 영세해서 제소리도 못 내고 있다”라고 전했다.  상품 업체들은 따로 새로운 모임을 꾸리려 하고 있다. 이들 업체 관계자들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앞두고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볼 생각이다”라고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금강산 관광의 재개 여부는 관광객 피격 사건 이외에도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남북의 입장 차이로 여전히 기로에 서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업체 대표는 “현 정부에서는 남북 관계가 개선될지에 대해서 기대하기 어렵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피해가 커진다고 해도 보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는 오히려 ‘미흡한 행정상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할 의무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죽음에 이른 이까지 있는데 또 얼마나 죽어나가야 심각성을 알 것인가”라며 답답한 심정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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