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은 정녕 부활하고 있나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08.03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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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스타’ 로커들, 음악 예능 통해 다시 얼굴 알리면서 존재감 드러내
 
▲ ⓒKBS 제공

록은 부활하고 있는가. 사실 이 말에는 어폐가 있다. 록은 결코 죽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부활은 어떤 의미일까. 방송을 말하는 것이다. 그동안 방송은 여러 가지 이유로 록을 외면해왔다.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들국화가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그들의 세상을 만들었지만 방송에서 그들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치렁치렁한 장발에 머리를 흔들며 기타를 치고, 음악 자체에만 몰두하는 들국화의 연주는 그래서 한밤중에 몇 번 TV 화면을 탔을 뿐이었다. 그것도 클로즈샷 없이 롱샷으로 전체의 스케치만을 하는 카메라는 당대의 록에 대한 방송의 태도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1990년대 들어 기획사 중심의 아이돌 그룹들이 방송을 장악하면서 많은 싱어송라이터가 다운타운으로 내려갔다고 하지만, 이 시절 사실 더 어려운 위치에 있던 이들은 다름 아닌 밴드들이었다. 특히 록이나 헤비메탈을 하는 밴드들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자유를 부르짖고 기성 체체에 반항적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음악은 그래서 TV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MTV 등장을 상징하는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아이돌 같은 비주얼 기획형 가수들은 어딘지 거칠고 자유분방한 록 밴드들을 밀어낸 셈이다.

김태원, 연일 만원 사례 기록하는 콘서트 펼치는 등 밴드 부활 견인차 노릇

1980년대 우리 가슴을 뜨겁게 했던 로커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로 헤비메탈이 저들만 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 시나위의 임재범은 어느 순간, 말끔한 얼굴로 <이 밤이 지나면>을 부르며 한국의 마이클 볼튼이 되어 있었다. 4옥타브를 넘나들며 일본의 라우드니스를 겨냥했던 부활의 이승철은 솔로로 가요 차트 1위 가수가 되어 있었다. 시나위 2집에서 특유의 샤우팅 창법으로 주목받던 김종서 역시 록발라드 가수가 되었고, 심지어 백두산의 유현상은 <여자야>를 부르는 트로트 가수가 되었다. 시나위와 부활과 백두산을 각각 이끌던 3대 기타리스트인 신대철, 김태원, 김도균의 소식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모든 게 끝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이들은 다시 TV에 얼굴을 드러냈다. 그 진원지는 음악 프로그램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김태원은 ‘국민할매’로 예능의 블루칩이 되었고, 유현상과 김도균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들의 끼를 보여주었다. 예능이 음악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또 그 음악을 소재로 한 예능이 성공하기 시작하면서 로커들은 예능을 통해 속속 얼굴을 드러냈다. 음악 예능이 본격화되면서 임재범이 <나는 가수다>를 통해 다시 로커로서의 존재감을 알렸다. 김도균과 신대철은 <톱밴드>의 심사위원으로 자리하면서 밴드 부활의 선두에 다시 서게 되었다. 김태원은 연일 만원 사례를 기록하는 콘서트를 하면서, 밴드 이름에 걸맞은 부활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다. 여러모로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 삶의 깊이가 묻어난 이야기로 웃음과 감동을 주던 그들이 마침 음악 자체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이 많아진 시대를 만난 것은 운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록은 이제 방송에서도 훨씬 친숙한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톱밴드>처럼 본격적으로 록밴드들(물론 록밴드만은 아니다)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놀라운 것은 이 <톱밴드>라는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한 밴드들의 면면이다. 그들은 아마추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이미 준비된 프로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고교 밴드라고는 믿기지 않는 엑시즈의 신나는 속주와 보컬의 목소리만으로도 듣는 이를 매료시키는 리카밴드, 꽃미남 2인조이지만 개성적이면서도 파워 있는 음악을 들려주는 톡식, 마치 야수가 울부짖는 듯한 보컬과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어떤 소울이 전해지는 기타 연주가 압권인 게이트 플라워즈, 몽환적인 분위기의 POE, 파워가 느껴지는 브로큰 발렌타인, 록이 얼마나 유쾌한 것인가를 독특한 무대 매너로 보여주는 아이씨 사이다…. 실제로 인디밴드로서 이미 정상의 인기를 끌고 있는 게이트 플라워즈 같은 밴드가 <톱밴드>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등장한 것은 그동안 얼마나 록 밴드들이 방송 무대에 설 자리가 없었던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갑자기 등장한 만큼 그 놀라운 실력에 대한 찬탄이 이어졌다. “한국의 음반 제작자들이 왜 저런 천재들의 음반을 내지 않고 있었는지 의아하다”라는 김종진의 조금은 격앙된 말이나, “감히 평가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라는 그룹 딜라이트 DK의 발언, “한국에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남궁연의 상찬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브로큰 발렌타인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밴드 페스티벌인 ‘아시안 비트’에서 대상과 최우수 작곡상을 수상한 바 있고, 게이트 플라워즈는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신인상과 최우수 록 부문 2관왕을 했던 실력파이다.

록이 음악 자체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은 여전히 과제 

▲ ⓒKBS 제공

따라서 오디션에 이미 프로나 다름없는 인디밴드들의 참가가 용인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란이 잠깐 일었지만, 금세 수그러들었다. 이유는 이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는 김광필 EP의 한마디로 정리된다. 과연 지금까지 가요계가 이들을 프로로 대접한 적이 있느냐는 것. 방송이 외면한 그들을 다시 방송으로 끌어안는다는 그 취지가 모두를 공감하게 만들었다. 시나위나 백두산 그리고 부활 같은 록의 전설들이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그 이름을 다시 살리고 록으로 복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현재 록을 하는 이들을 향한 조명이 아닌가.  

록이 방송에 다시 부활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그것이 방송을 통해 어떤 효과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로커들은 자신들의 힘들고 거친 날것의 삶을 들고 예능 프로그램으로 들어와 힘겨운 서민들을 격려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기타 하나만 들면 우리의 감성을 툭툭 건드리는 음악을 언제 어디서든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은 로커들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록이 가진 흥겨움과 강렬함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편곡 트렌드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록이 부활하고 있는 이유는 최근 강해진, 음악에 대한 대중들의 갈증을 록만큼 풀어줄 수 있는 장르가 없기 때문이다. 영국을 팝의 본고장으로 만든 것은 결국 그 바탕에 록밴드들의 자유로운 음악 실험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록은 음악의 다양성을 끌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장르이다. 그런 점에서 록의 부활에는 좀 더 대중적인 저변을 넓혀갈 수 있는 바탕이 필요하다. 록밴드들이 음악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이것은 특정 장르에 굳어버린 음악 프로그램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무엇보다 록이 예능에 종속되어 있는 현재의 경향을 벗어나 음악 자체로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절실하다. 1980년대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그 록의 박동 소리를 우리는 과연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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