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팎으로 피 튀기는 국산 대작들
  •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
  • 승인 2011.08.03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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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개봉한 <고지전> <퀵> 초반 흥행 부진…출혈 경쟁 탓이라는 지적도 나와

 

▲ ⓒCJE&M 제공

 

지난 7월20일 개봉한 <고지전>은 개봉 일주일 만인 7월27일 100만 고지를 넘어섰다. 같은 날 개봉한 경쟁작 <퀵>은 80만 관객을 동원하며 <고지전>의 뒤를 이었다. 단순 수치로만 따지면 나쁘지 않은 흥행 성적들이다. 하지만 두 영화의 물량 공세를 들여다보면 조금은 실망스런 성과이다. <고지전>과 <퀵>은 제작비가 100억원 이상인 한국형 블록버스터이다. 관객이 3백50만~4백만명은 되어야 수지타산이 맞는 영화들이다. 충무로에서 100억원대 영화라면 개봉 첫 주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것은 예사이다.

두 영화의 초반 기대 밖 흥행 부진은 우선 대진표의 불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영화 여름 기대작인 두 편이 맞붙은 것도 모자라, 할리우드 대작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영화진흥위원회 집계 7월26일 기준 3백17만4천6백12명), <트랜스포머 3>(7백43만4천8백47명) 등과 치열한 흥행 대전을 벌여야 했다. 5월 개봉한 <써니>의 장기 흥행도 걸림돌이 되었다. 이래저래 개봉 환경이 최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단지 현실 탓만 할 수 있을까. 두 영화 자체에 패인은 없는 것일까. 많은 영화인은 외부 환경보다는 개봉 시기 등 전략적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고 분석한다. 두 대작의 맞대결부터가 무리였다는 것이다.

여름 시장은 2006년 <괴물>이 한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우면서 충무로의 최대 화두로 등장했다. 이후 휴가철과 맞물려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 여름 성수기를 겨냥한 블록버스터들이 해마다 개봉하는 새로운 조류가 만들어졌다. 2007년 <화려한 휴가>(6백88만3천3백39명)와 <디워>(7백86만9천9백96명)가 일주일 간격으로 개봉하며 흥행 쌍끌이를 일구었다.

2008년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여름 블록버스터의 맥을 이으며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되었다. 2009년 <해운대>(1천1백39만7천7백52명)와 <국가대표>(8백9만2천6백80명)가 일주일 간격으로 극장에 걸려 쌍끌이 흥행을 재현했다. 블록버스터들이 최대 시장을 겨냥하면서도 일정 부분 완충지대를 형성하며 서로 경쟁을 해온 셈이다. <고지전>과 <퀵>처럼 100억원대 영화 두 편이 맞불을 놓은 경우는 유례가 없다. 비공식적인 신사 협정이 깨진 것이다. 결국 출혈 경쟁으로 두 영화의 초반 흥행 부진은 예상된 셈이다.

<7광구> <최종병기 활>까지 ‘맞불’ 놓듯 개봉해

 

 

두 영화의 맞대결로 전쟁과도 같은 경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100억원대 영화 <7광구>가 8월4일 극장가를 찾고, 90억원가량을 들인 <최종병기 활>이 8월11일 개봉한다. 여름 흥행 전선에 나선 관계자들은 산 너머 산을 마주하는 입장이다. ‘크게 터뜨려 크게 먹는’ 블록버스터의 경제학이 무색해진 형국이다.

대작이 여름 시장에 몰린 이유는 충무로의 불황과 밀접하다. 수익성이 예측 불허인 중급 영화보다 대작으로 큰돈을 벌겠다는 한탕주의 사고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반기 흥행작이 <써니>와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위험한 상견례> 정도인 점도 영향을 미쳤다. 영화계 한 관계자는 “충무로 주요 투자배급사들이 흥행에 계속 실패해서 매출을 올리고 싶은 조바심이 커진 듯하다”라고 주장했다. 수지 악화에 따른 경영진 문책론을 피하기 위해 대작들을 앞당겨 개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퀵>과 <최종병기 활>은 당초 9월 추석 연휴 개봉을 저울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맞대결을 피하며 윈윈 전략을 모색할 것인가, 출혈 경쟁을 해서라도 위험천만한 독식을 노려야 할 것인가. 충무로 여름 블록버스터는 기로에 섰다.

 

 

 



<제7광구>는 <괴물>의 뒤를 잇는 괴수물 블록버스터로, 3D 영화이다. 1985년 제주도 남쪽 해상 석유탐사선에는 석유시추의 집념으로 똘똘 뭉칭 하지원과 동료들이 있다. 그녀는 현장 경험도 열의도 없는 팀장이 못마땅하다. 계속되는 실패로 철수명령이 내려지고, 안성기가 책임자로 투입된다. 이상한 사고가 이어지고 팀원들이 동요하는 가운데, 마침내 변종 괴생물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의 성패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1980년대 광고 화면 같은 장면과 살짝 지겹게 느껴지는 박철민의 입담이 버무려진 전반부는 나쁘다. 인물들의 성격이나 관계도 너무 뻔하고, 3D 효과를 보여주려는 듯 넣은 화면들은 CG 화면을 더 만화처럼 보이게 한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 좋아진다. 절해 고도의 폐쇄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장면 구성도 좋고, 입체적인 액션의 합은 3D와 상승 작용을 일으킨다. 전반부의 어색한 장면들도, 나름 복선이었음이 드러난다. 하지원의 단독 피날레도 호쾌하다. 괴수물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괴물의 묘사도 <에이리언>이나 <괴물>의 영향이 많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성공적이다.

석유 탐사의 집념에 대한 영화의 입장은 애매하다. 그토록 매달린 석유 탐사가 결국은 반생명적 파괴이자 괴물을 출현시킨 원인이라는 점을 보여주면서도, ‘산유국의 꿈’이라는 개발주의에 대해 확실한 선을 긋지 않는다. 안성기에 대한 비판 없이, 마지막 시추봉을 어루만지는 하지원의 손길과 마침내 불이 붙은 시추선을 보여주는 엔딩은 산업 역군의 희생을 딛고 꿈을 이루었다는 뉘앙스마저 풍긴다. 혼자 도망가는 팀장만 아니라면, 그가 괴물을 낳은 지도자라 할지라도 철저한 절연 없이 석유 탐사라는 반생명적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인가? MB만 아니면 신자유주의를 낳은 사람들과 함께 이 괴물을 잘 키워보겠다는 개혁주의자들이 생각나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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