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에 눌려 빛 바래는 슈퍼파워
  • 한면택│워싱턴 통신원 ()
  • 승인 2011.08.03 01:1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 국가 부채 14조5천억 달러 중 외채만 4조 달러 넘어…대외 협상에서 갈수록 불리한 입장

미국이 빚더미에 눌려 신음하고 있다. 워싱턴 정치권이 미국 사상 초유의 국가 디폴트(채무 상환 불이행)까지 볼모로 잡고 벼랑 끝 대치를 벌일 만큼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14조5천4백억 달러를 넘어섰다. 미국의 한 해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엄청난 숫자이다. 미국의 GDP는 현재 14조8천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3억명의 미국민이 1인당 4만6천7백 달러의 빚더미에 눌려 있는 셈이다. 세금을 내는 납세자만 따지면 1인당 무려 13만 달러의 나라 빚을 떠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국가 부채 가운데 거의 절반은 중국 등 외국에 지고 있는 빚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지구촌 슈퍼파워로서의 위상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논쟁이 한창이다.

미국 부채의 53.5%인 6천4백40억 달러는 미국인들과 미국 내 기관들이 보유한 국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46.5%인 4조4천8백91억 달러는 외국에 진 부채이다. 특히 지구촌 슈퍼파워 자리를 놓고 겨루는 중국에게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미국 내 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중국에 1조 달러 이상 빚져

중국은 4월 말 현재 무려 1조1천5백25억 달러어치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어 미국에게는 제1의 채권국이다. 중국의 채권보유율은 미국 전체의 국가 부채 가운데 11.9%나 차지하고 있고, 외국 채권액만 계산하면 25.7%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외국 국가들에게 지고 있는 부채의 4분의 1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내 일각에서는 중국이 자기네가 보유하고 있는 미국채만 가지고 흔들면 미국 경제, 나아가 미국이 요동칠 상황으로 변했다면서 지구촌 경쟁에서 밀리는 것은 물론, 머지않아 슈퍼파워 자리를 내주게 될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중국 다음으로 미국에 돈을 많이 빌려준 나라는 일본이다. 9천69억 달러로 미국의 외국 부채 가운데 20.5%, 미국 전체 부채에서는 9.4%를 차지하고 있다. 세 번째 채권국은 영국으로 3천3백30억 달러의 미국채를 갖고 있다. 외국 부채 중 7.4%, 전체 부채에서는 3.4%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미국이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일본과 영국이 그나마 최고의 맹방들이라는 점에서 미국은 다소 안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지난 7월26일 미국 뉴욕의 한 건물 벽에 설치된 국가 부채 알림 전광판 아래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EPA 연합

미국은 그러나 OPEC(석유수출국기구)에 2천2백15억 달러, 브라질에 2천69억 달러, 타이완에 1천5백45억 달러, 카리브해 국가들의 은행연합에 1천3백81억 달러씩 빚을 지고 있다. 더욱이 옛 라이벌 러시아에도 1천2백24억 달러의 부채가 있고, 스위스에는 1천1백24억 달러가 걸려 있는 등 지구촌 곳곳에 빚을 지고 있다.    

미국의 최대 채권국인 중국은 최근 미국의 국가 디폴트 가능성에 강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이 과연 앞으로 어떤 행동을 보일지에 미국의 시선이 쏠려 있다.

1조 달러 이상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을 비롯한 채권 국가들은 만약 미국이 국가 디폴트에 빠질 경우 두 가지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첫째, 우선 미국 국채에 대한 이자율을 대폭 올릴 것을 요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적으로 국가 디폴트가 되면 0.55포인트의 이자율을 올려 적어도 10년간은 지급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럴 경우 미국은 이자만 해도 1조 달러 이상 더 늘어난다고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추산해놓고 있다.

미국의 국가 부채 채권국 현황(4월 말 현재. 미국 재무부) 

구분

채권 액수

외국
부채 중
비율

전체
부채에서의 비율

총계

14조1331억 달러

-

100%

미국인 보유

9조6440억 달러

-

53.50%

외국 보유

4조4891억 달러

100%

46.50%

중국 보유

1조1525억 달러

25.70%

11.90%

일본 보유

9069억 달러

20.20%

9.40%

영국 보유

3330억 달러

7.40%

3.40%

OPEC
(석유수출국)

2215억 달러

4.90%

2.30%

브라질

2069억 달러

4.60%

2.10%

대만

1545억 달러

3.40%

1.60%

카리브해
은행연합 

1381억 달러

3.10%

1.40%

러시아

1224억 달러

2.70%

1.30%

스위스

1124억 달러

2.50%

1.20%


둘째, 당장 한꺼번에 빠져나가지는 않겠지만 미국채에 대한 외국의 투자가 서서히 줄어들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의 주택 시장이 붕괴되자 주택 모기지의 60% 이상을 관할해온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주택 담보 증권을 보유했던 외국 투자자들 가운데 40%나 빠져나간 것이 좋은 사례이다.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의 경우 아무리 디폴트나 위기에 빠지더라도 그보다는 상황이 나을 것이지만 중국 등의 외국 투자자금 유입은 대폭 감소할 것이라고 미국측은 우려하고 있다.

미국이 국가 디폴트에 빠지면 물론이고,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더라도 이미 슈퍼파워로서의 위상은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되고 있다. 이번 국가 디폴트 위기를 계기로 미국은 ‘쇠퇴하는 슈퍼파워’임을 전세계에 보여주고 있다고 미국 외교협회는 경고했다.

안보 예산 대폭 삭감 불가피

▲ 지난 7월25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중국 센젠 시에서 다이빙궈 중국 국무위원을 만나고 있다. ⓒAP연합

첫째, 미국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국방비를 비롯한 안보 예산을 대폭 삭감할 수밖에 없게 되어 미국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하는 슈퍼파워가 쇠퇴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 정치권에서는 엄청난 적자를 감축하기 위해 감축 목표의 4분의 3은 예산 삭감으로, 4분의 1은 세수 확대로 충당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획기적인 예산 삭감에는 국방비의 보기 드문 삭감이 포함될 것이 분명하다. 현재 워싱턴 정치권에서는 국방비를 포함해 국가 안보 예산을 향후 10년 동안 최소 4천억 달러, 최대 8천억 달러 삭감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국방비 삭감은 적어도 해외 분쟁 지역 파병을 축소하고 나아가 미국 육군 병력 전체 수준을 줄이는 사태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미국 해군 함대와 미국 공군 비행기의 운용을 줄일 수밖에 없고 첨단 무기와 장비 구입을 축소하거나 지연시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한반도를 포함한 미국의 억지력·방어력·분쟁 대응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미국 외교협회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둘째, 미국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군사와 외교, 통상 등에서 대외 협상력이 약해질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북한, 이란 등과의 비핵화 협상, 군축 협상, 나아가 무역 협상에 이르기까지 협상력 약화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과 의회 간 타협 정치의 실종으로 아무것도 승인하지 못하는 무력함을 보여줌으로써 대외 협상력도 약해진다는 분석이다.

셋째, 미국은 경제 모델, 정치 모델, 외교력 등 소프트웨어를 상실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리먼브러더스 폐쇄로 시작된 미국의 금융 위기는 이미 미국식 자유 경제 모델에 강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번에는 미국식 정치가 세계적인 모델인가에 대해 의문을 사기 시작했다. 미국이 경제와 정치에서 모델 지위를 상실한다면 이를 전세계에 전파해온 미국의 외교력 또한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넷째, 미국의 쇠퇴는 결국 중국 등에게 대안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슈퍼파워 자리를 내주거나 적어도 파워를 반분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은 지금 빚더미에서 탈출할 것인가. 아니면 빚더미에 눌려 슈퍼파워 자리를 내줄 것인가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