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정체’ 벽에 갇힌 손학규 정면 돌파 승부수 있나
  • 김형구│세계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1.08.03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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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뜨면서 ‘불가론’까지 등장…최근 들어 ‘김대중 정신’ 잇달아 강조해 눈길

▲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지난 4월29일 국회 예결회의장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현재로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맞설 가장 유력한 야권의 차기 대권 주자 아닌가. 그런데 박 전 대표와 1 대 1 구도를 이룰 최후의 대표 주자가 손(학규)대표가 될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민주당 소장파 그룹으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대권 주자로서 손학규 대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이 의원은 지난해 10월3일 당 지도부를 새로 뽑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손대표의 경쟁 후보를 도왔다. 한때 민주당 내에서 그 속사정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이 의원은 민주당 대표에 출마한 손학규 후보의 ‘캠프’에서 자신에게 “도와달라”라는 요청을 해오면 ‘두 말 없이’ 손잡을 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당대회 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오는데도 정작 손학규 후보의 캠프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뜻하지 않게 손대표의 상대 진영 캠프에서 지원을 부탁해 와 그쪽 일을 돕게 되었다는 것이다. 공보 기능을 포함한 ‘손학규 진영’의 전력이 여타 후보 조직에 비해 가장 허술하다는 지적이 잇따를 때였다.

“캐릭터 모호” 정체성 논란도 계속

이 의원은 기자에게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라고 쓴소리를 했다. “언론에서 거론되는 손대표의 핵심 측근이라는 인사들을 나는 도대체 모르겠다”라는 것이다. 결국 손대표를 떠받치는 측근 그룹의 폐쇄성을 꼬집은 말이다. ‘손학규 사람들’의 수직적 네트워크 구조가 부른 단절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민주당 안팎에서 손학규 대표를 바라보는 시각이 대개 이와 비슷하다. “메시지가 모호하다” “캐릭터 파악이 잘 안 된다” 등이다. 어디 그뿐인가. 결정적인 고비 때마다 보인 ‘갈팡질팡 행보’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아킬레스건’이다. 민주당은 5월 초 한·EU(유럽연합) FTA(자유무역협정)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비준에 합의하는 듯했다가 돌연 비준 반대로 돌아서 논란을 자초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6월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의 KBS 수신료 인상안 처리를 어물쩍 눈감아주려다가 여론의 지탄이 빗발치자 ‘수신료 인상 반대’로 돌아서기도 했다.

정체성 논란도 손대표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족쇄’이다. 한나라당 출신인 손대표의 ‘전력’을 매섭게 문제 삼는 대표적 인사가 안희정 충남도지사이다. ‘노무현의 왼팔’이라는 그이다. 안지사는 최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손학규 가지론’을 거듭 역설했다. “‘가지’가 나무의 ‘줄기’가 되려고 했다가는 그 나무 자체가 넘어지고 만다”라는 것이다. 정통 야당의 ‘줄기’로 자라오지 않은 손대표를 겨냥한 말이다.

당내에서도 손대표의 어정쩡한 중도 성향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인사가 적지 않다. 라이벌인 정동영 최고위원이 선봉에 서 있는 격이다. 손대표와 정최고위원은 이미 여러 차례 아슬아슬한 상황을 빚어내기도 했다. 극심한 노사 분규로 홍역을 앓고 있는 한진중공업 사태를 놓고서도 둘은 ‘정면 충돌’ 직전까지 갔었다. 정최고위원이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한 당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하면서다. ‘희망버스 행사’에 부정적이었던 손대표를 우회적으로 압박하면서 치고 나온 것이다.

정최고위원과 가까운 같은 당 이종걸 의원도 희망버스 탑승을 채근했다. 지난 7월27일 ‘손학규 대표님께’라는 제목의 공개 서신을 통해서다. ‘민생 현장인 3차 희망버스에 동승하셔서 지지부진한 야권 연대의 불씨를 되살리고,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해달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손대표는 선뜻 희망버스에 오를 의사가 아직 없는 듯하다. 한 측근 보좌관은 “냉정하게 따져보자. 희망버스를 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러면 10번이라도 타겠지만, 그게 수권 정당을 지향하는 모습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당 안팎의 거듭된 흔들기 때문일까. ‘집토끼’(전통적 야당 지지층)와 ‘산토끼’(외연 확장의 대상층)를 동시에 껴안으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 때문일까. 손대표의 지지율은 다시 ‘정체’ 상태이다.

4·27 성남 분당 을 보궐 선거에서 승리한 직후 ‘마(魔)의 15%’ 벽을 돌파하며 ‘고공비행’했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이다. 한·EU FTA 비준안 처리 및 KBS 수신료 인상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노출된 혼선이 악재로 작용하며 최근에는 10%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다. 야권에서 ‘손학규 대세론’을 확산시키기에는 버거운 흐름이다.

손대표측 “문재인과 대결 구도 나쁘지 않다”

▲ 7월15일 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손학규 대표(맨 오른쪽, 그 옆은 정동영 최고위원)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손대표가 ‘주춤’하는 동안 그 틈을 파고든 이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한 언론사가 지난 7월17일 실시한 차기 대권 주자 지지도 설문조사에서 문이사장은 11.8%의 지지율로, 야권 주자 중 손대표(11.3%)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처럼 문이사장이 야권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면서 ‘손학규 대 문재인 구도’가 본격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손학규 대표측은 “나쁘지 않다”라는 반응이다. ‘손학규 독주’ 체제보다는 ‘건전한 긴장 관계’의 라이벌 구도를 통해 ‘야권 태풍’의 위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는 얘기이다. 손대표를 오랫동안 지근 거리에서 보좌한 한 핵심 측근은 기자에게 “선의의 경쟁이 활성화되면 야권 전체적인 관점에서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지 않겠느냐”라고 했다.

그렇다면 손학규 대표의 승부수는 무엇일까. 핵심 측근은 “결국 손학규의 키워드는 민생·진보·복지이다”라고 못 박았다. “이 세 가지 화두를 기반으로 내년 대선까지 달려가겠다”라는 다짐이다. 지난 7월13일 깃발을 올린 제2기 희망대장정 슬로건을 ‘동고동락 민생 실천’으로 잡은 데에도 ‘민생 제일주의’ 의지가 함축되어 있다. 4·27 분당 을 보궐 선거 승리로 9년 만에 금배지를 단 그가 고심 끝에 기획재정위원회를 소속 상임위로 택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라고 한다. 사회 양극화, 비정규직 증가, 고용 불안 등 사회 구조적 문제에 천착해야 한다는 의중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7월 당내에서 ‘보편적 복지 특별위원회’와 ‘경제 민주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킨 것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

손대표가 최근 ‘김대중 정신’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지난 7월26일 ‘2012년 대선 승리, DJ 정신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토론회에서 축사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말 선지자였던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이 1970년대 초반에 이야기한 ‘4대국 보장론’과 ‘대중경제론’을 지금 하느라 아옹다옹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손대표 자신이 강조하는 ‘원칙 있는 (대북) 포용 정책’과 김 전 대통령이 내세운 ‘햇볕 정책’이 일맥상통하는 취지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DJ 적통 자리매김’을 하겠다는 뜻이 읽힌다.

김 전 대통령이 ‘총애’해 마지않던 박선숙 의원이 민주당 전략홍보본부장에 중용되면서 손대표 진영의 핵으로 들어온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김대중 정부를 낳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박의원을 가까이 두게 된 손대표는 “꼼꼼한 일 처리, 프로 근성 등 박의원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라며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김대중 정신 계승’을 앞세워 호남을 껴안겠다는 원려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친노’가 아닌 ‘친DJ’ 길을 걷겠다는 노림수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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