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한국, 누가 움직이는가 - 원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원로 현존 인물 중에는 “없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8.0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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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가 “인물 부재” 응답…김영삼 전 대통령은 4.2%

▲ 김영삼 전 대통령 ⓒ연합뉴스

▲ 조순 전 부총리 ⓒ시사저널 우태윤

“우리 사회에 진정한 원로가 없다”라는 말은 사실 어제오늘 제기된 고민이 아니다. 리더십과 소통의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오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 양상은 갈수록  첨예화되고 있다. 여기서 중심을 잡아주어야 할 원로들은 오히려 특정 이념과 정파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진정한 통합의 역할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김수환 전 추기경이 지난 2009년 2월 선종한 이후 사실상 그를 대신할 만한 원로는 사라진 셈이다.

▲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사저널 이종현

이런 고민 속에 <시사저널>은 올해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마지막 문항에 ‘현존 인물 중 우리 사회의 진정한 원로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덧붙였다. 전문가들의 예리한 시각을 통해서 숨어 있는, 나서지 않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원로’를 찾기 위한 갈구였다. 굳이 문항에 ‘현존 인물’을 첨가한 것은 자칫 또 김 전 추기경처럼 타계한 인물들로 순위권이 채워질 것을 염려해서였다. 실제 최근 조사에서 나타난 하나의 뚜렷한 경향은 ‘고인(故人)들의 영향력 증대’였다. 올해만 해도 메인 조사인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인’에 고인이 세 명이나 포함되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10인’에서는 무려 다섯 명이나 고인이 자리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사저널>의 염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굳이 ‘현존 인물’을 못 박은 것이 오히려 설문에 응한 전문가들에게는 ‘냉소’로 표출되어진 셈이었다. 1천명의 전문가 중 ‘현존 인물 중 진정한 원로는 없다’라고 답한 이가 3백2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이름이 지목된 인사 중에서 가장 많은 지목을 받은 이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지목률은 4.2%에 불과했다. ‘없음’에 비해 약 8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의 사회상을 정확하게 반영한 결과”

▲ 정진석 추기경 ⓒ시사저널자료

<시사저널> 편집국은 이번 조사 결과를 놓고 고민 끝에 ‘현존 인물 중 진정한 원로’ 1위는 ‘없음’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지목률은 32.7%이다. ‘없다’라고 답한 것도 분명히 차별화된 하나의 의견 표출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연합뉴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당초 <시사저널>에서 ‘현존하는 인물 중 진정한 원로’를 묻는 질문을 한다고 했을 때 나 역시도 그런 답을 기대했는데, 막상 ‘없음’이 30%대 이상으로 가장 높게 나왔다고 하니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없는 원로를 억지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없음’이 1위로 나온 것 또한 분명히 의미 있는 하나의 결과이고, 이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가 필요하다. 이번 <시사저널>의 조사 결과가 현재 우리 사회상을 가장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평가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김수환 전 추기경을 통해서 우리는 진정한 원로의 방향성을 설정할 수 있다. 군사 정권에서도 김 전 추기경이 갖는 존재의 상징성은 막강했다. 국민이 기대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존재, 정부로서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그것이다. 심지어는 정부도 김 전 추기경의 반대를 명분으로 해서 정책을 바꿀 수 있는 동기 부여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원로의 존재는 어느 한 쪽의 손을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데에 있다”라고 평가했다.

▲ 이만섭 전 국회의장 ⓒ시사저널 이종현

2위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었다. 고인이 된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진보 진영의 존경받는 원로로 자리매김한다면, 보수 진영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지목한 전문가가 1천명 중 42명에 그쳤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김 전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통합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느냐 하는 데서 많은 전문가가 의문을 표출한 셈이다.

▲ 이어령 문학평론 ⓒ연합뉴스

3위는 정진석 추기경이 차지했다. 3.8%의 지목률이었다. 정추기경은 지난 2009년 본지 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1위에 올랐다. 선종한 김 전 추기경을 대신할 원로로 자리매김하는 듯했다. 하지만 역시 정추기경 또한 아쉽게도 그 이상의 역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조사에서는 타계한 김 전 추기경이 다시 ‘종교인 1위’ 자리를 되차지하고 있다.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시사저널 이종현

4위에 오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3.3%)의 향후 역할에 대해 주목하는 시선이 많다.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가 갖는 권위는 물론, 지난 5년간 첫 임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수행했다는 평가도 힘을 보탰다. 지난 6월 연임에도 성공했다.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국내 여론조사에서 계속 대권 주자로 포함되었고, 실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이어 한때 2위에 오르는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총장은 “정치에 전혀 뜻이 없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반총장의 힘은 보수와 진보 진영을 넘나드는 그의 영향력에 있다.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시사저널자료

여기에 부합하는 또 한 명의 원로가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다. 정치권의 원로로 가장 매섭게 현 정치권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인물로 통한다. 2.5%의 지목률로 5위에 올랐다. 이 전 의장 역시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에서 모두 국회의장을 지내는 등 보수와 진보 진영을 넘나드는 정계 선배로 여야 모든 후배에게 대접받고 있다. 그래서 그는 현 정치권의 문제에 대해, 심지어는 대통령에게까지 ‘쓴소리’를 아낌없이 쏟아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로 통한다.

전문가들이 꼽은 원로에는 비교적 문화계 인사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6위·2.3%)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8위·1.9%),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14위·1.1%), 고은 시인, 이외수 소설가(이상 공동 15위·1.0%), 연기자 이순재씨(공동 18위·0.8%) 등이다. 전직 총리급 인사들도 상당수 포진하고 있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공동 9위·1.6%), 고건 전 총리(13위·1.3%), 이회창 전 총리(17위·0.9%), 김종필·이홍구 전 총리(공동 18위·0.8%) 등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1위(1.5%)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12위(1.4%)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2.3%의 지목률로 공동 6위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진보 진영의 대표적 원로로 통하는 그는 지난 1987년 대선에 출마한 적도 있다. 지금도 진보 진영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지난 8월2일 덕수궁 앞의 ‘희망단식’ 농성장을 격려 방문했다가 보수 우익 단체 회원들에게 테러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좌우 이념을 떠나 우리 사회의 원로에 대한 사회적 대우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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