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한국, 누가 움직이는가 - 대권 주자] ‘최강’ 박근혜 앞길 탄탄대로만 아니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1.08.0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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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가능성’은 압도적 1위이지만 ‘대통령 적합도’는 20%대에 그쳐
▲ 박근혜 국회의원 ⓒ 일러스트 찬희

“우리는! 친근해!!”

요즘 여당 인사들이 갖는 술자리에서 자주 등장하는 구호이다. 언뜻 서로의 친분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호를 여러 차례 되풀이하다 보면 그 속뜻을 짐작할 수 있다. ‘친근해’라는 단어는 실상 ‘친(親)근혜’를 뜻한다. 유력한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가까운 사이이거나 혹은 그렇게 되려는 바람이 술자리 건배 구호에 담겨 있는 것이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권력 추가 ‘미래 권력’인 박근혜 전 대표 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있다. 원내대표에 이어 당 대표 선거에서도 ‘박근혜의 힘’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기존의 ‘친박’ 진영은 결속력을 다져가고 있고, ‘중도’ 성향이거나 ‘친이’ 성향이던 인사들이 ‘월박(越朴)’하는 현상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친박 진영의 한 핵심 의원은 “지금 자꾸 월박 이야기를 하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한나라당이 똘똘 뭉쳐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친박과 친이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당내 계파와 무관하게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결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기에는 ‘결국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강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박 전 대표는 여야 대권 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국민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다른 주자들과의 격차가 여전히 상당하다.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이다. 현 정권 출범 이후 여태껏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독주 체제를 유지해왔다. 현재로서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야권 대권 주자들의 ‘당선 가능성’은 모두 한 자릿수에 머물러

이것은 여론 주도층인 전문가 조사에서도 똑같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사저널>이 각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1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에서도 ‘차기 대선에서 누가 당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과반이 넘는 51%가 박근혜 전 대표를 첫손에 꼽았다. 역대 ‘대권 잠재력’ 부문 조사에서 2008년 42.2%, 2009년 45.8%, 2010년 45% 등 40%대 초·중반을 꾸준히 유지했던 지목률이 대선 1년 전에 실시한 올해 ‘당선 가능성’ 조사에서 50%대에 진입한 것이다. 


반면 내년 대선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큰 야권의 대권 주자들의 경우 모두 ‘한 자릿수’를 벗어나지 못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9.9%로 2위에 올랐고,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3.1%로 3위를 차지했다. 예년에 비해 손대표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문이사장이 새롭게 등장했지만 아직 박 전 대표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여권 내 경쟁자인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1.2%, 오세훈 서울시장은 0.6%로 각각 4, 5위에 올랐다. 비록 5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지만 당선 가능성을 말하기에는 그 수치가 미미하다. 그 밖에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0.4%),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0.3%),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이상 0.2%) 순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만 놓고 본다면, ‘박근혜 대세론’은 점차 자리를 굳혀나가는 듯이 보인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는 “대세론은 단순한 지지율 차이가 아니라 후보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경우 지지자의 충성도가 높고, 중간층으로 향한 확산성이 강하다. 이 두 가지를 겸비하기가 쉽지 않은데, 박 전 대표는 두 가지를 모두 갖춘 후보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선거는 상대적인데 현재 거론되는 다른 후보들 중에는 이러한 후보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근혜 전 대표가 25~30% 정도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지만,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15~20% 정도의 지지율이 더 보태져야 하는데, 대세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쪽에서는 박 전 대표가 지지층을 확산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7월19일 2011 대구세계육상대회 경기장인 대구스타디움에서 경기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 측면에서 <시사저널>이 ‘당선 가능성’과 함께 물어 본 ‘차기 대통령감 적합도’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차기 대통령감으로 누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전문가 응답자 가운데 24.9%만이 박 전 대표를 선택했다. 1위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지목률에서 ‘당선 가능성’에 비해 반 토막이 난 셈이다. 야권의 대권 주자들을 압도하는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다. 13.3%로 2위에 오른 손학규 대표와 7.7%로 3위를 차지한 문재인 이사장의 지목률을 합하면 1위인 박 전 대표와의 차이는 불과 3.9%포인트로 좁혀진다.

▲ 손학규 민주당 대표 ⓒ시사저널 우태윤

일부 전문가 그룹에서는 손대표가 박 전 대표에 앞선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교수 그룹이 대표적이다. 손대표(24%)에 대한 지목률이 박 전 대표(19%)보다 5%포인트 높다. 정치인과 언론인 그룹에서는 박 전 대표가 각각 24%와 22%로 1위를 지켰지만, 손대표도 20%와 18%를 얻어 박 전 대표를 턱밑까지 추격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선 가능성에서는 현재 이렇다 할 대항마가 없기 때문에 박 전 대표에게 쏠림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감 적합도에서 상대적으로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은 언제든지 현재의 대권 구도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는 후보가 박 전 대표로 확정되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야권 지지층에서는 아직 확정적인 후보가 나타나지 않아 불안해하는 분위기가 짙다. 이러한 상황이 조금씩 바뀌게 되면 새로운 바람이 불 여지가 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세론’과 ‘이회창 대세론’이 나오던 지난 5년 전과 10년 전에는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17대 대선이 있기 1년 전인 2006년 <시사저널> 전문가 조사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당선 가능성’(54.5%)은 물론 ‘대통령감 적합도’(30.2%)에서도 고건 전 총리(12.1%)와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11.2%) 등 경쟁자들을 크게 앞질렀다. 16대 대선 한 해 전인 2001년에는 ‘당선 가능성’과 함께 ‘대선 주자 선호도’를 조사했다. 당시 유력 대권 주자로서 대세론을 펼쳤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당선 가능성’에서 노무현 당시 민주당 상임고문보다 네 배가량 높게 나왔지만, ‘대선 주자 선호도’에서는 23.1%를 얻어 17.8%를 획득한 노상임고문에 불과 5.3%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3·4위도 민주당 대권 주자였던 이인제(13.6%)·김근태(11.6%) 최고위원이었다.

문재인 이사장, ‘당선 가능성’ ‘대통령감 적합도’에서 모두 3위

▲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사저널 임준선

후보자의 자질이 다르고 유권자의 의식과 정치 환경이 변한 만큼 그때와 지금 상황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앞선 두 조사 결과는 당선 가능성이 다른 주자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하더라도, 대통령감 적합도나 선호도에서 크게 앞서나가지 않으면 대세론이 자칫 힘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명박 전 시장은 대세론을 이어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회창 총재는 대세론이 한풀 꺾이면서 본선에서 결국 고배를 마셨다.

이번 조사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친노’ 진영의 대표 주자 격인 문재인 이사장의 약진이다. 문이사장은 ‘당선 가능성’(3.1%)과 ‘대통령감 적합도’(7.7%)에서 모두 손학규 대표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반면 그동안 친노 대표 주자로 자리매김했던 유시민 대표는 ‘당선 가능성’(0.4%)과 ‘대통령감 적합도’(1.5%)에서 모두 6위에 그쳤다. 유대표는 ‘대권 잠재력’ 조사에서 2009년(4.8%)·2010년(5.2%) 두 해 연속 2위에 오른 바 있다. 문이사장이 일반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대권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문이사장은 침체해 있는 야권 내에 활력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현실적으로도 대중적 지지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어 만만치 않은 힘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약화된 민주당 안팎의 친노 세력을 결집시킨다면 상당한 파괴력을 가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하지만 민주당의 전체적인 흐름이 과거 ‘노무현 돌풍’ 때처럼 전면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런 만큼 당내 기반이 취약한 문이사장이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라고 다소 신중한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 (왼쪽)김문수 경기도지사, (오른쪽)오세훈 서울시장 (왼쪽)ⓒ 시사저널 이종현, (오른쪽)ⓒ 시사저널 이종현
최근 여권 내에서도 ‘박근혜 대세론’을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주로 ‘친이계’ 인사들이 언론을 통해 대세론을 경계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친이계 중진인 이윤성 의원은 “아직 본선까지는 시간이 많고, 어떤 변수가 작용할지 모른다. ‘박근혜 대세론’을 이야기하기에는 이르다”라고 밝혔다. 대권 주자 중 한 명인 정몽준 전 대표는 “박 전 대표가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지만 이대로 가면 본선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작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동관 대통령 언론특보의 ‘박근혜 대세론은 독약’ 발언은 친박계의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친이계 인사들의 이같은 발언은 박 전 대표가 이미 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듯한 당내 분위기를 경계한 것으로 보여진다. 친박계가 중도·소장파와 손을 잡고 당권마저 장악하면서 친이계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대권 전략을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전혀 호의적이지 못하다.

무엇보다 박 전 대표를 상대할 만한 대항마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때 정몽준 전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친이계 대표 주자 자리를 노렸지만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머무르면서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정운찬 전 총리가 새로운 가능성으로 떠올랐지만, 이렇다 할 정치적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를 총리로 지명하면서 ‘40대 총리론’을 내세웠지만 청문회도 통과하지 못한 채 낙마하고 말았다. 김 전 지사가 지난 4·27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지만, 대권 주자로 재기할 가능성은 극히 작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결국 친이계에서 내세울 수 있는 대권 주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오세훈 서울시장 이외에 현재로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지지율 역시 박 전 대표를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낮다. 이번 전문가 조사에서 김지사는 ‘당선 가능성’에서 1.2%, ‘대통령감 적합도’에서 2.7%를 각각 얻었다. 오시장은 더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당선 가능성’에서 0.6%, ‘대통령감 적합도’에서 2.1%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 비록 순위로는 여권 후보들 가운데 박 전 대표에 이어 2위와 3위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1위인 박 전 대표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차이가 크다.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여론 주도층인 전문가들까지도 김지사와 오시장의 대권 가능성을 낮게 평가하고 있는 셈이다. 친이계의 고민은 갈수록 그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지난해 ‘대권 잠재력’ 조사에서 김지사는 4.4%였다. 오세훈 시장도 3.6%였다.

김지사와 오시장은 내년 대권 도전 가능성을 열어둔 채 정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김지사는 지난 7월 중순께 정몽준 전 대표와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한 논의가 오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오시장은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온 ‘무상 급식 주민투표’를 통해 지지층 확보를 꾀하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은 8월24일에 치러질 주민투표를 중앙당 차원에서 지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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