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누가 꼼수를 부리고 있는가
  • 김형준 /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
  • 승인 2011.08.1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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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무상 급식 주민투표’를 공식적으로 발의했다. 정책 관련 주민투표는 사상 처음이다. 8월24일 투표에서 33.3% 이상이 투표하면 유효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투표함 자체를 열지 않고 자동 폐기된다. 서울시 주민투표에 반대하는 야 5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부자 아이, 가난한 아이 편 가르는 나쁜 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를 발족하고, 전면적인 투표 거부 운동에 돌입했다. 이들 세력은 주민투표를 반대하는 핵심 이유로 “주민투표 본래 취지에 맞지 않고 과정과 내용도 옳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다. 더구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투표를 자기 권력을 강화하고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다. 한마디로 오세훈 시장의 관제 투표와 꼼수 투표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주민투표는 본래 행정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인데 오시장은 오히려 서울시의회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아래로부터 국민 스스로 투표의 시기와 내용을 발의할 수 있는 ‘국민 주도적인 주민투표’는 좋은 것이지만, 위로부터 투표의 시기나 내용을 배타적으로 결정하는 ‘권력자 주도적 주민투표’는 나쁜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런 주장이 맞는 것일까?

관제 투표는 과거 군부 독재 시절 대통령 등 권력자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 사용된 적이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안 통과 때 국민투표가 활용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이번 주민투표는 주민 발의 형식을 빌려 제안된 만큼 과거 관제 투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더구나, 주민투표는 주민들의 행정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지방 정부가 추진하려는 민감한 정책에 대한 주민들의 선택을 통해 시정에 민의를 반영하기 위한 소중한 장치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 자체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복지 정책의 핵심인 ‘부자 무상 급식 반대’에 대한 서울 시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주민투표의 본질을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

그동안 진보 세력은, 주민투표는 참여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이들은 최근 “서울시 주민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일반 선거와는 달리 참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궁색하고 꼼수로 보일 수도 있다. 참여정부를 표방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상황의 유불리에 따라 참여하는 ‘선별적 참여’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보편적 참여’가 참여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심지어, ‘원칙 없는 승리’보다 ‘원칙 있는 패배’가 더 낫다고 역설했다. 따라서 진보 세력이 투표 내용보다 투표 보이콧 운동에 집중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허무는 것이다.

한편 오시장은 “주민투표에서 승리하면 총선·대선 국면에서 훨씬 유리한 지형을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 서울시 주민투표는 한나라당의 선거 전략적 차원의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이번 주민투표는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둘러 싼 대한민국의 미래 복지 체제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대한(critical) 선거이기 때문이다. 여야, 진보와 보수 모두 ‘민주주의는 깨어 있는 시민의 적극적인 참여로만 살아 움직이는 것’임을 인정한다면, 주민투표를 독려하고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해 시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당당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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