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헤매는 사극, 어디로 가고 있나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08.16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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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제공
왜 또 <광개토태왕>일까. 이미 담덕을 소재로 한 <태왕사신기>를 MBC에서 방영한 바 있고, 또 <주몽>과 <대조영> 그리고 <연개소문>을 잇는 고구려 사극 역시 이미 한 트렌드를 지난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KBS 사극은 왜 굳이 <광개토태왕>으로 다시 돌아온 것일까. 여기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때 주말 사극의 지존이었던 KBS 사극은 <명가> 같은 작품으로 고꾸라지기 시작하더니 <근초고왕>에서 무너져버렸다. 주말 KBS 사극에 고정 시청층이 있다는 이점을 생각해보면 이런 결과는 제작진의 안이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다시 들고 온 것이 <광개토태왕>이다. 되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광개토태왕>은 <근초고왕>의 부진을 털어버리고 시청률 20%에 육박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KBS 사극 부활의 신호탄일까.

 

 

▲ ⓒKBS 제공

 

절대 그렇지 않다. 이것은 진화가 아닌 퇴행이다. 사극의 특성상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사라졌고, 그저 되는 코드를 적당한 소재에 버무린 듯한 인상이 짙다. 새로운 패러다임이나 트렌드를 보여주기보다는 그래도 존재하는 고정층을 위한 사극. 늘 보아왔던 스토리에, 늘 비슷한 전투 장면들이 반복된다. 방송가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로 사극의 스토리는 <글래디에이터>와 <삼국지 적벽대전>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역시 아무리 담덕이라고 해도 이를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일국의 왕자가 졸지에 노예가 되어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아무리 상상력의 틈입을 허락하는 작금의 사극이라고 해도 너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설정이 아닐까. <대조영> <해신> 등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던 그 <글래디에이터> 시퀀스. 게다가 연출에서도 과거나 지금이나 전투 장면에서는 카메라 앞에 도열해 열변을 토하는 장수를 보여줄 뿐이다. <광개토태왕>이 시청률 20%에는 도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30~40%의 시청률은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제 KBS 주말 사극은 거기 그 시간대에 있기 때문에 보게 되는 일일극처럼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MBC 사극은 어떨까. 이병훈 감독이 일가를 이룬 MBC 사극은 지금껏 확실한 MBC만의 색깔을 그려냈다. <허준> <상도>를 거쳐 <대장금>에 이르러 폭발하고, 이후 <주몽>과 <선덕여왕>에서 정점을 찍은 MBC 사극은 이른바 인물 중심의 퓨전 사극으로 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산>과 <동이>를 거치면서 MBC 사극은 그 상상력의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비슷비슷한 소재와 미션이 반복되면서 MBC 사극 특유의 힘을 느끼기가 어려워졌다. 새로 시작한 <계백>은 소재를 백제로 옮겼지만, 그 스토리를 보면 기존 MBC 사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 그림자는 다름 아닌 <주몽>과 <선덕여왕>이다. 계백의 탄생 스토리를 만들어주는 무진(차인표)은 <주몽>의 해모수(허준호)와 다르지 않고, 왕을 쥐락펴락하는 사택비(오연수)는 <선덕여왕>의 미실(고현정)과 비교된다. 궁 밖에서 차츰 성장할 계백과 궁 안에서 때를 기다리는 의자왕의 예약된 만남은 <선덕여왕>의 덕만과 유신 이야기의 변형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시청률은 간신히 10%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퓨전 사극의 특징상 뭔가 획기적인 스토리와 전개를 기대하게 하는 데 반해 작품은 과거의 것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퓨전 사극이라 해도 역사의 틀에서 다뤄야

 

▲ ⓒMBC 제공

 

이런 사정은 SBS 사극도 마찬가지다. 물론 현재 <무사 백동수>는 여타의 사극들보다 주목되는 것이 사실이다. 아예 역사서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무협영화의 장르적 요소를 대폭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짚어가기보다는 그 속의 인물군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드라마적인 재미를 만들어냈다. 엄밀히 말하면 사극 안에서 길을 찾은 것이 아니라 사극 바깥에서 길을 찾은 셈이다. 사도세자가 뒤주를 탈주하는 설정 같은 것은 역사적 사실로 보면 엄청난 파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파격에도 이 사극 역시 15% 시청률의 언저리에 머무르고 있다. 즉, <무사 백동수>는 작금의 사극이 처한 위태로운 상황을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제 역사 바깥으로 뛰쳐나온 사극이 상상력의 끝단에서 더 이상 사극이라 부르기 어려운 어떤 지점까지 나가고 있음에도 예전 같은 전성기를 맞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사극이 역사를 애써 벗어버리려고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극은 아무리 상상력이 필요하다 해도 역시 역사의 틀을 벗어났을 때 힘을 잃어버린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 갖는 힘이 사라져버리고 허구의 늪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도대체 사극은 왜 이렇게까지 멀리 오게 된 것일까.

사극은 퓨전 사극으로 전환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 퓨전 사극의 매력은 역사를 다시 보는 재미가 아니라, 역사에 숨겨진 것들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상상력을 보는 재미에 있다. 따라서 그 상상력의 최대치를 보고 나면 그 눈높이도 계속 높아져 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선덕여왕>과 <추노>는 그 최대치의 상상력을 보여준 사극일 것이다. 이 작품들이 세워놓은 사극에 대한 기대감은 좀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상상력의 최대치로 나가게 되면 사극은 그 틀을 벗어나 그저 하나의 장르 드라마가 되어버린다. <성균관 스캔들> 같은 청춘 멜로 사극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사극이라기보다는 현대극의 한복 코스튬플레이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지상파 방송 3사가 들고 나온 사극을 보면 뭔가 야심찬 기획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포기하고 접어버린 느낌이 적지 않다. 그만큼 사극이 전처럼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그래서 과거의 사극을 넘어서는 것이) 어렵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과거로 회귀하면서 고정 시청층을 노리거나(<광개토태왕>), 어디선가 보아왔던 스토리와 캐릭터를 재구성하거나(<계백>), 아니면 아예 사극 바깥으로 나가거나(<무사 백동수>)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사극은 우리의 높아진 기대치를 맞추지 못한다. 언제쯤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매력적인 사극을 접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다시 역사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역사에만 천착하던 그 지점에서 상상력을 동원해 새로운 사극의 포문을 열었듯이, 이제 상상력의 끝단에서 우리는 다시 역사를 뒤적여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3사3색’ 저마다 다른 색깔의 승부수

KBS 사극은 왕조 중심에 전쟁 사극이 주특기이다. 굵직굵직한 사건이 정치와 국가 간의 전쟁을 통해 그려지는데, 최근 들어 퓨전 사극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 주인공의 에피소드는 좀 더 장르적인 스토리로 바뀌고 있다. <용의 눈물> <불멸의 이순신> <태조 왕건> <대조영> 등이 주말 사극을 이끌어왔으나 최근 들어 그 방향성을 잃고 헤매고 있다. MBC 사극은 개인 인물 중심의 퓨전 사극이 주특기. <허준> <상도>에 이어 <대장금> <주몽> <선덕여왕>을 통해 하나의 세련된 스타일을 완성했지만, 최근 들어 <이산>과 <동이>를 거치며 비슷비슷한 스토리로 인해 그 힘이 빠지고 있다. SBS 사극은 KBS와 MBC의 틈새를 잇는 사극을 주로 선보여왔는데, 소재적으로 보아도 <여인천하>와 <왕의 남자>처럼 역사 속 인물의 ‘기록되지 않은’ 역사 바깥의 이야기로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처럼 지나치게 역사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이야기가 사극이 갖는 힘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서로 경쟁하면서 저마다의 색깔을 만들어온 방송 3사의 사극들은 앞으로 어떤 진화의 과정을 겪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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