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내가 출연한 작품이 내 인생이더라”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1.08.1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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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7광구> ‘원톱’ 주인공 하지원

▲ 100억원대의 큰 영화, 멜로도 아니고, 블록버스터 장르의 여전사 캐릭터라는 것이 한국 영화에 없었다. 제작자도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도전이었다. ⓒ시사저널 임준선

영화 <7광구>는 한국 영화사에 여러 이정표를 세웠다.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3D 영역을 우리 기술로 개척했고, 판타지 액션이라는 장르도, 100억원대가 넘는 블록버스터라는 점도, 주인공을 원톱 여배우로 했다는 점도 기록에 남을 것이다.

<7광구>의 원톱은 배우 하지원이다. 1998년 영화 <진실게임>으로 데뷔한 하지원은 그동안 18편의 영화와 8편의 TV 드라마를 통해 TV와 영화 양쪽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흔치 않은 경우에 속한다. 또래의 여배우들이 이름값을 얻기 시작하면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광고용 배우’로 전락하는 것에 비해 하지원은 늘 드라마와 영화로 당대 스타의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 상반기에도 드라마 <시크릿 가든>으로 홈런을 쳤다. 시청자들은 ‘길라임’이 스턴트 연습을 열심히 해서 <7광구>에 출연을 한 것으로 여기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다. “<7광구>에서 만들어준 해준이를 갖고 길라임을 편하게 찍었다. 이미 액션도 연습을 많이 해놓았고”라고 말하는 <7광구>의 여전사 하지원을 만났다.

<7광구>에서 무려 ‘원톱 배우’이다.

100억원대의 큰 영화, 멜로도 아니고, 블록버스터 장르의 여전사 캐릭터라는 것이 한국 영화에 없었다. 제작자도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도전이었다. 할리우드 배우나 하는 여전사 역할을 작은 체구의 동양 여배우가 소화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도 있었다고 하더라. <7광구>를 기다리는 5년 동안, 시나리오도 계속 바뀌고, 3D 촬영이 추가되고, 감독도 바뀌고, 그래서 못하게 되면 어쩔 수 없지 하고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나는 내 것이 아니면 아닌 것이지, 안 된다고 울고불고 하는 성격은 아니다. 2008년에 <7광구> 출연이 결정 나면서 해준이가 되기 위한 연습에 들어갔다.

흥행작이 많은데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

시나리오를 만화책 보듯 후루룩 보고 딱 덮어놓았을 때 생각나는 것을 떠올려본다. 캐릭터 위주로 보지 않는다. 관객 입장에서 본다. ‘재밌다, 진정성 있다. 힘 있네…,’ 그런 느낌이 나는 것을 다시 한번 읽어본다. 내가 길라임이 되었든, 해준이가 되었든, 채옥(<다모>)이가 되었든 이 삶을 신나게 살아볼 만한 삶인가, 그게 매력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의 결정을 한다. 회사 쪽에는 ‘한다, 안 한다’ 이야기는 안 한다. 시나리오상의 느낌만 전한다. 다만 하기 싫은 것은 안 한다.

배우라는 직업이 마음에 드나?

지금까지는 너무 좋다. 전에는 개인 사생활이 없어서 반항도 하고 나를 찾으려고 노력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 출연작이 내 인생이더라. 그 안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즐기니까 신나더라. 촬영장에서는 힘들기도 하지만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니까 재미있다. 작품 안 할 때는 외롭다.

차기작 <코리아>에서는 탁구 선수이고, 유독 운동하는 캐릭터를 많이 했는데.

2006년 <1번가의 기적>에서 복싱을 한 다음에는 운동을 거의 안 했다. 복싱이 너무 힘들어서 충격을 받았다. <해운대> 촬영에 들어가기 전 <7광구> 출연을 확정 짓고 그때부터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기억나는 캐릭터가 있나?

티 안 나게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작품이 <형사>(2005년, 이명세 감독)이다. 배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중에게 <다모>(2003년)라는 작품을 통해 배우 하지원을 각인시켰는데 이 작품을 통해 연기가 미치도록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만 했을 뿐이었다. 이 작품부터는 ‘열심히’나 ‘잘해야’를 넘어서 연기가 너무 좋아서 미치겠더라. 현장에 있는 스태프들 얼굴도 보이기 시작하고 현장에 있는 것이 너무 편했다. <7광구>는 어찌보면 큰 도전이고, 더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준 영화이다.

맡아온 역할이 다양한데.

맡은 역 때문에 변신할 기회가 많았다. 변신을 위해서 작품을 고르지는 않는다. 윤제균 감독과 작품을 많이 했는데, <색즉시공>은 윤감독이 나를 위해 캐릭터를 만들어줬다. <1번가…>는 복싱을 통해 캐릭터를 완성했다. <해운대>에서는 횟집에서 일하는 평범한 부산 여자였다. 윤감독이 사투리 하나만 100% 하자고 하더라. 그래서 사투리만 열심히 했다. 거기서 사투리를 통해 행동이나 부산 느낌이 젖어드니까 자연스레 캐릭터가 완성되었다. 그 뒤부터 내가 어떤 변신을 해서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을 떨쳐버렸다.

실제 성격도 활달한 편인가?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떤 결정이나 선택에 대해서는 책임감이 있다. 내가 무섭다고 피하는 성격은 아니다. 사실 노래방 같은 데 가면 박수는 열심히 하지만 노래는 잘 못한다. 숫기가 없다. 배우를 준비하면서 ‘넌 끼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고민 많이 했다.

힘들 때 어디서 위로받나?

엄마한테 위로를 받는다. 오디션에 떨어지고 나서 ‘나는 연예인 자질이 없나 보다’라고 푸념하면 엄마가 ‘힘들면 하지 마라’라고 하시더라. 그 말을 듣고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데뷔작 <진실게임>을 찍게 되었다. 엄마가 항상 ‘돈은 적으면 적은 대로 쓰는 것, 돈을 따라서 작품을 고르지 마라’라고 하신다. 엄마 아빠는 나에게 친구같다. 술도 엄마 아빠랑 마신다. 얼마 전에 새 영화 촬영과 <7광구> 홍보가 겹쳐서 너무 바빴다. 영화 촬영장에서 2주 만에 집에 갔다. 촬영장에서는 술을 못 마시니까 엄마에게 소주 한잔 하고 싶다고 했다. 밤이 늦었는데도 엄마가 같이 마셔주셨다. 그 뒤에 촬영하고 더 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엄마 아빠가 소주를 사놓고 기다리시더라. ‘소주 한잔 할래?’ 하시는데, 우리 엄마 아빠 정말 귀여우시다.(웃음) 

더 나이가 든 뒤의 하지원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라면 공부도 더 많이 하고 강의를 하는 상상도 해본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을 때 표현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액션을 많이 하는 이유도 내가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도 그때 더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 같다.

지금 하지원은 <코리아>라는 작품을 열심히 찍고 있다. 남북한 탁구 단일팀을 소재로 한 스포츠 영화로, 여기서 하지원은 현정화로 분한다. ‘탁구를 잘 쳤느냐’라고 묻자 “아니다. 이번에 배웠다. 내가 스매싱을 잘한다”라며 오른손을 어깨 쪽으로 접어올리며 손칼로 스매싱 궤적을 만들어냈다. 순식간에 전성기 시절 현정화의 모습이 그려졌다. 역시 배우이다. 하지원의 ‘현정화’는 내년 설날쯤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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