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일군 ‘경영의 신’ 적자 항공에 날개 달다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1.08.1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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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바 경영’ 창시자이자 교세라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 / 일본항공 되살리려 무보수로 ‘투신’…‘자기 희생’의 리더십 보여

3·11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정국이 혼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본 국민들은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에 심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정부 정책에 직·간접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재계도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민간 경제는 나름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기술력이나 자본력 등 성장 잠재력이 큰데도 불구하고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정치적 리더십이 부재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총리가 1년에 한 번씩 바뀌는 정치 상황에서 리더십을 기대하는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신뢰할 수 있는 리더가 없는 일본 사회에서 주목받는 이가 있다. 2010년 2월 도산 선고를 받은 일본항공(JAL)의 개혁을 책임지고 있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이다. ‘아메바 경영’의 창시자이자 교세라 창업자인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존경받는 경영인으로 칭송되고 있으며 사업에서만이 아니고 인류 사회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주는 ‘교토상’을 창설하는 등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그가 일본항공 재생의 책임자로 결정되었을 때 사내외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아무리 유능한 경영자라 하더라도 평생 제조업에 몸담아온 사람으로서 전혀 생소한 항공·운송 서비스 분야의 개혁은 오히려 조직에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 자신도 극구 사양했다. 주위에서도 그간 쌓아온 명성이 만년에 오점을 남길 수 있다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나모리 회장은 9천억 엔(1조2천억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되고 5만2천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자칫하면 실직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회장직을 받아들였다. 여기에는 일본항공의 운명을 쥐고 있는 정부와 기업재생지원기구가 삼고초려한 점도 작용했다. 특히 같은 교토 출신으로 당시 국토교통성을 이끌고 있던 마에하라 대신이 이나모리 회장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해 간곡히 부탁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이나모리 회장은 민주당과 깊은 인연이 있다. 일본 재계가 대부분 친자민당 성향인 데 반해 이나모리 회장은 민주당이 야당일 때부터 지지를 보내왔다. 건전한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 장본인이다. 민주당의 고문과 같은 상징적인 존재이다. 이같은 민주당과의 깊은 인연으로 부실덩어리인 일본항공을 살리는 일은 곧 민주당을 돕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8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직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 지난해 2월1일 이나모리 가즈오 신임 일본항공 회장이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다. ⓒEPA연합

의식 개혁부터 시작…방만한 계열사 매각

일본항공은 도산할 당시 부채가 2조3천억 엔이었다. 지난해 2월20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를 당했다. 조직은 지나치게 관료화되었고 희생과 책임을 떠맡은 리더가 없었다는 것이 도산한 이유 중 하나이다. 일본항공은 상급 감독 기관인 국토교통상 직원들의 낙하산 인사가 많은 곳이다. 대표적인 서비스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관료 조직과 같다는 비난의 소리를 들어온 이유이다. 그동안 노선·항공편·지역별 수익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제대로 된 시스템조차 없었다. 각 부서별 손익이 리얼타임으로 한눈에 드러나는 아메바 경영의 창시자인 이나모리 회장의 눈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조였다. 일본 항공은 도산할 때까지 오랜 세월 적자 노선임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안전과 서비스라는 명분하에 운행을 계속해왔다. 비생산적인 부동산도 경영 악화의 원인이었다.

부실덩어리를 떠맡은 이나모리 회장이 시작한 첫 번째 일은 의식 개혁 운동이었다. 적자투성이 회사를 책임지고 있는 간부들의 안이한 의식 구조를 바꾸지 않고는 재생의 길은 요원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아울러 과감한 개혁을 단행했다. 해외 및 일본 국내 노선 중 채산성이 없는 노선을 폐지했다. 연료가 많이 소모되는 항공기를 매각하고 신형 비행기를 구입했다. 임원들을 교체하고 종업원을 과감하게 줄여나갔으며 방만한 관련 회사를 매각 조치했다.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았으나 재생의 키를 쥐고 있는 정부와 기업재생지원기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개혁은 중단 없이 지속되었다. 개혁을 위해 자신의 경영 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모리타 나오유키와 같은 교세라 출신의 핵심 측근들을 데리고 와 경영 관리를 맡겼다.

개혁의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먼저 2010년 3월 결산에서 1천6백억 엔이었던 영업 적자가 2011년 3월 결산 시 1~3분기(4~12월) 1천6백억 엔 흑자로 돌아섰다. 1년 만에 3천2백억 엔의 손익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배경에는 인원과 적자 노선을 줄이고 감가상각액을 크게 줄인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일본항공의 옛 영광을 찾겠다는 구성원들의 의식 변화가 흑자 전환에 크게 기여했다. 이나모리식 개혁이 평가를 받고 있는 부분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처음에 일본항공 회장직 취임을 요청받았을 때 교토의 교세라 업무 탓에 1주일에 2~3번 일을 본다는 조건으로 수락했지만, 일을 시작한 이후에는 도쿄의 호텔에 머무르면서 전력을 다하고 있다. 무보수로 일하면서도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9시 이후에 퇴근하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 생활과 의식 구조부터가 이전의 간부들과 크게 비교되고 있다.

개혁이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3월11일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항공업계에도 적지 않는 피해가 발생했다. 개혁의 성과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발생해 앞으로 낙관적인 기대만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외부적인 환경보다는 아직도 반발하고 있는 조직원들이 더 큰 문제이다. 일본항공의 사내 노조는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정리해고된 조종사와 승무원 1백65명 중 1백46명이 ‘부당 해고 철회 법정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상당수 일본인과 일본항공 직원들은 일본 항공 산업의 얼굴인 일본항공의 부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그리 쉽지 만은 않다. 가네보의 이토 준지 씨가 일본항공 개혁에 실패한 예에서 보듯이 정·관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일본항공을 제조업적인 발상으로는 개혁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나모리 회장이라면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1998년 패전 이후 가장 큰 도산이라고 불린 복사기 제조·판매의 대기업 미타 공업을 인수해 2천억 엔(2조6천억원)의 부채를 변제하고 재생시키는 데 최소 10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단 3년 만에 완료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일본 국민들은 이나모리 회장의 확고한 철학을 믿는다. 이나모리 회장은 ‘리더는 먼저 자기를 버리는 것이다. 리더가 이기적이고 자신의 것을 조금이라도 갖고자 하면 조직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리더는 이러한 희생의 위에서 공명정대함을 잣대로 개혁을 이루어야 제대로 된 개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국민들이 이나모리 회장을 믿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기 희생을 몸소 실천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본항공은 한때 대학생들이 입사하고 싶어 한 회사였다. 하지만 이제 도산의 늪에 빠져 생존을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하고 있는 일본 국민들은 자기희생의 리더십과 끊임없는 개혁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일본항공의 부침을 통해서 확실하게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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