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어디로 튈지 궁금한 삼성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8.16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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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이 인수하면 반도체 부문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라…애플과 손잡으면 삼성전자에 치명타

하이닉스반도체(이하 하이닉스)는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의 최대어이다. 대어를 잡기 위해 SK텔레콤(SKT)과 STX가 낚싯줄을 던졌다. 지난 7월8일 인수의향서를 냈고 현재 실사 중이다. 누가 하이닉스를 인수할까? 삼성전자의 최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하이닉스가 삼성전자의 경쟁 상대가 못 되지만, 기업의 투자를 받아 하이닉스가 가속도를 붙이면 삼성전자에는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하이닉스 인수전과 관련된 정보를 직접 챙긴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의 관계가 시선을 끈다.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인수하면 SK그룹 전체 자산 규모는 1백14조원으로 커져 90조원대인 LG를 따돌리고 재계 3위로 등극한다. 재계 5위권에 있는 기업집단이 반도체 업종에서 경쟁하는 모양새가 갖춰진다.

▲ 하이닉스 직원들이 경기 이천공장에서 3백mm 웨이퍼 등 생산 제품을 점검하고 있다. ⓒ뉴스뱅크이미지

투자 여력에서 SK텔레콤이 STX보다 우세

SK텔레콤은 신성장 동력이 필요하다. 통신 업종의 종합주가지수(코스피) 시가총액 비중이 지난 12년 동안 약 30%에서 2%로 급락했다. 이동통신 서비스 가입자도 포화 상태여서 이익이 더 늘어나지 않는 상태이다. 통신 서비스업은 내수 산업인 탓에 해외 진출도 쉽지 않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은 오는 10월 SK플랫폼을 분사시켜 국제 시장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 SK플랫폼은 SK텔레콤에서 글로벌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모바일 광고, 뉴미디어 등의 사업 부문을 떼어내 신설하는 법인이다. 여기에 하이닉스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SK텔레콤은 기대하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 변모하겠다는 것이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기존 통신 서비스업에 반도체 사업이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없다며 하이닉스 인수가 독이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휴대전화로 유명한 노키아는 목재회사로 출발했지 않은가. 신규 사업이 기존 사업과 꼭 시너지 효과를 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SK텔레콤은 1년 전부터 하이닉스 인수를 검토해서 이번에 결정한 것이다. 하이닉스 인수는 광의의 ICT 영역으로의 확장이며, 장기적인 성장 동력 확보의 일환이다. 하이닉스 투자가 성공하면 플랫폼 사업과 하이닉스를 성장의 양대 축으로 육성해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 최태원 SK 회장 ⓒ시사저널자료

외부 상황도 SK텔레콤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하이닉스의 최대 주주인 정책금융공사는 외자 유치를 억제하는 기준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STX는 인수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인수 자금 조달을 위해 중동의 국부 펀드를 끌어들일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또 경기에 민감한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매년 수조 원을 투자할 수 있는 여력도 STX보다는 SK텔레콤이 우세하다. SK증권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SK증권은 7월11일 보고서를 통해 “SK텔레콤의 보유 현금과 연간 잉여 현금 흐름 창출 능력 등을 고려할 때 재무적으로 SK텔레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삼성증권은 같은 날 SK텔레콤의 투자 등급을 ‘매수(buy)’에서 ‘보유(hold)’로 하향 조정했다. 삼성증권은 보고서에서 ‘국내 유사 인수·합병 사례에서 확인되었던 것처럼 영업 시너지가 불확실한 SK텔레콤의 하이닉스 인수 이슈는 단기적으로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판단한다’라고 분석했다. SK텔레콤이 하이닉스 인수를 밝힌 뒤 SK텔레콤의 투자 등급을 하향 조정한 증권사는 삼성증권이 유일하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연구원 개인의 분석이며 삼성증권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업계는 신경전이 표출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SK텔레콤이 반도체 사업으로 진출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 삼성전자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매출의 90%는 해외 시장에서 일어난다. 하이닉스는 국내 기업이다. 그 기업이 어디로 인수되든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디딤돌 삼아 해외 시장에 진출한다고 해도 삼성전자 시각에서는 수많은 경쟁사 중 하나일 뿐이지 특별한 위협 대상은 아니다. 또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은 적대 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SK텔레콤,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도 ‘시동’

▲ 이건희 삼성 회장 ⓒ시사저널 윤성호

SK텔레콤과 삼성전자는 표면상으로는 보완해주는 관계로 보이지만 속내는 다르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SK텔레콤 입장에서 삼성전자가 KT를 가까이 두는 점은 눈엣가시이다. 인터넷전화나 광통신 설비 판매에서 KT는 SK텔레콤보다 삼성전자에 긴밀한 협력 업체이다. 아이폰 판매를 둘러싸고 삼성전자와 KT가 불협화음을 냈지만, 삼성전자는 여전히 KT를 감싸고 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도 SKT가 국가 독점 사업인 유공과 한국이동통신을 연거푸 거머쥔 것이 못마땅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할 때, SK텔레콤이 하이닉스를 인수하면 삼성전자와의 정면충돌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모두 나노 기술을 이용한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다 비(非)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도 경쟁할 가능성이 있다. 하이닉스는 휴대전화나 태블릿PC에 필요한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약체이지만, SK텔레콤에 인수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미 SK텔레콤은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SK텔레콤은 지난 2월 중소 비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엠텍비전과 중국 통신 칩 시장에 진출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합작 법인을 설립한 뒤 공동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엠텍비전은 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이고, 하이닉스는 반도체 생산 시설을 갖추고 있다. 시너지 효과를 내면 삼성전자를 압박할 카드가 생긴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삼성전자보다 한 수 아래이다. 그러나 채권단 지배하에서 하이닉스가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았을 뿐이지, 능력이 없는 기업이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비메모리 반도체 수요처인 애플의 움직임도 삼성전자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애플이 삼성전자에 주는 비메모리 반도체 주문 물량의 일부를 하이닉스로 전환하면서 삼성전자를 견제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의 반도체 담당 부장은 “애플이 하이닉스를 이용해 삼성전자를 견제할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하는 문제이다”라며 말을 아꼈다. SK텔레콤이 대어를 낚도록 삼성전자가 보고만 있을지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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