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사회는 썩었다” 87.5%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8.1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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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한국반부패정책학회’ 공동 기획 전문가 대상 ‘2011 한국 사회 부패지수’ 조사

저축은행 사태 등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비리 사건은 끝이 없다. 지난해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지수 순위에서도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1백78개국 가운데 39위를 기록했다. 대체 우리 사회의 체감 부패지수는 얼마나 될까. <시사저널>은 그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교수, 변호사, 연구원 등을 주축으로 구성된 ‘한국반부패정책학회’와 손잡고 각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약 100여 년 전 영국의 역사학자 액턴 경이 한 이 말은 ‘반(反)부패 투명 사회’를 꿈꾸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지침이 되고 있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우리의 헌정 역사는 절대 권력을 용인했고, 그 속에서 필연적인 절대 부패를 양산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및 5년 단임제 개헌 이후 이 땅에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는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부패’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패지수’는 한 사회, 한 국가의 부패 정도를 측정하는 수치이다. 국제적인 부패 감시 민간 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국가별 부패지수를 발표하는데, 지난해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1백78개국 가운데 공동 39위를 기록했다. G20 회원국이면서 세계 12위권의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이지만, ‘부패’의 현주소는 아직 부끄럽기만 하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여전히 대한민국 부패지수를 갉아먹는 암적인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저축은행 비리’ 사태는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검찰 수사도, 국회 국정조사도 무용지물일 뿐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지난 8월10일 펴낸 자서전에서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에게 대선 자금으로 3천억원을 건넸다’라고 밝혀 새삼 충격을 던졌다. 사실 여부를 떠나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또다시 돈 비린내 진동하는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행태를 목격하는 국민들의 시선은 불편하기만 하다. 지난 6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그룹 전체에 부정부패가 퍼져 있다”라고 공개적으로 질타하기도 했다.

‘보수 정권은 부패로 망하고, 진보 정권은 무능으로 망한다’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 들어 부정부패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비등하다. 우리 사회가 체감하는 부패지수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시사저널>은 ‘한국반부패정책학회’와의 공동 기획으로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대한민국 부패지수’를 측정해보기로 했다. 한국반부패정책학회는 지난 2005년 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창립되어 현재 교수, 변호사, 연구원 등 4백5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국내의 대표적인 반부패 전문 학술기관이다. 현재 반부패 정책과 제도 연구, 정부 정책 제안, 반부패 세미나 개최, 국제 협력 연계 연구 사업 등 다양한 학술 연구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회장은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가 맡고 있다.

이번 조사의 책임을 맡은 김교수는 “기존의 일반인 조사와는 달리 부패 관련 분야 대학 교수, 국책연구원 등만을 대상으로 전문가 심층 조사를 실시해 현재 우리나라의 부패 실태를 좀 더 정확히 진단·평가해보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총 2백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폐쇄형(객관식) 질문과 개방형(주관식) 질문을 혼합 구성했다”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지난 6월부터 7월까지 2개월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번 조사에 응한 전문가 2백명은 남성 1백23명, 여성 77명이다. 연령별로는 30대 이하가 72명, 40대가 88명, 50대 이상이 40명이었다.

가장 부패한 직업인은 “정치인”

첫 문항의 조사에서부터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한국 사회의 부패 정도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려 87.5%가 ‘부패하다’라고 답했다. 10명 중에 9명꼴로 우리 사회에 부패가 만연해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이 가운데서도 37.5%는 ‘매우 부패하다’라고 답했다. ‘보통이다’라는 응답은 12.5%였으며, ‘부패하지 않다’라고 답한 전문가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 사회의 부패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가장 부패한 직업인’을 묻는 질문에서는, 우리 사회의 리더층 직업군 가운데 정치인, 행정공무원, 기업인, 교육자, 법조인, 방송·언론인, 문화·체육인, NGO·노동단체 종사자, 군인, 종교인, 의료인 등 크게 11개 직업군을 보기로 제시하고, 그중에서 선택하도록 했다. 그리고 해당 직업군 가운데서도 특히 부패하다고 생각되는 구체적인 직종을 명기해달라고 추가 질문했다. 각각의 질문에 걸쳐 최대 2개까지 복수 응답을 허용했다.    

이번 조사에 응한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직업군 가운데 정치인이 가장 부패하다고 꼽았다. ‘가장 부패한 직업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전체의 30.1%가 ‘정치인’을 선택했다. 그 뒤를 기업인(16.1%), 법조인(15.2%), 행정공무원(13.1%), 교육자(11.4%) 등이 10%대를 기록하며 이었다. 이들이 상대적으로 부패 정도가 심각한 직업군으로 꼽혔다. 

정치인을 택한 응답자 가운데서 특히 ‘여당 정치인’을 꼽은 이가 35.9%로 가장 많았고, 여야 정치인을 포함해서 ‘국회의원’이라고 답한 이도 28.3%로 나타났다. ‘대통령’(대통령실 종사자 포함)이라고 답한 이도 15.1%에 달했다. 지방의회 의원도 역시 같은 지목률(15.1%)을 받았다.

방송·언론인, 종교인은 “상대적으로 덜 부패”

기업인을 택한 응답자 중 구체적인 직종을 묻는 추가 질문에서는 대다수가 직종에 상관없이 전체 기업인이라고 답했지만, 구체적 직종을 명시한 응답자 가운데서는 80%에 달하는 압도적 다수가 ‘대기업 총수’를 꼽았다. 대기업의 경영권을 지배하고 있는 재벌가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임을 잘 보여준다. 법조인 가운데서는 ‘판검사’가 52.4%, 변호사가 28.6%의 순으로 각각 나타났다. 행정공무원 가운데서는 전체의 62.5%가 중앙 부처 공무원이라고 답한 가운데, ‘건설·토목 관련 공무원’ ‘인·허가 관련 공무원’을 적은 응답자들도 눈에 뜨였다. 교육자를 지목한 응답자 가운데서 구체적인 직종을 명기한 이들 중 의외로 초등학교 교사를 지목한 이가 66.7%로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는 점도 특기할 대목이다.

방송·언론인과 종교인은 각각 4.7%와 4.2%의 지목률로 부패 정도가 다소 덜 심각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방송·언론인 중에서는 지방지 기자를 꼽은 이가 상대적으로 많게 나타났고, 종교인 중에서는 타 종교 종사자에 비해 목사를 꼽은 이가 응답자 가운데 87.5%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 다수로 나타났다. 이들에 비해 의료인(0.9%), NGO와 노동단체 종사자, 문화·체육인(이상 1.2%), 군인(1.9%) 등은 상대적으로 부패지수가 매우 양호한 직업군으로 나타났다.

‘가장 부패한 기관’을 묻는 조사 역시 1차 객관식 질문에서는 청와대, 중앙 행정 부처, 지방 행정 부처, 정당, 기업, 교육기관, 법조기관, 방송·언론 기관, 시민·노동단체, 군대, 종교단체, 의료기관 등 12개의 대표적 기관을 보기로 들었다. 그리고 2차 주관식 질문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기관을 명기해달라고 요구했다. 역시 최대 2곳까지 복수 응답을 허용했다.

조사에 응한 전문가들 중 정당을 꼽은 이가 20.6%로 가장 많았다. 부패 직업군으로 정치인을 1위로 선택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2위는 지방 행정 부처로 17.3%였다. 4위를 차지한 중앙 행정 부처(12.4%)보다 지방 행정 부처가 오히려 부패 정도가 더 높게 나타난 점이 눈에 띈다. 3위는 청와대(13.4%)가 차지했다. 정치·행정 기관이 전체의 63.7%를 차지하고 있다. 다섯 번째 자리를 차지한 법조 기관도 11.3%의 지목률로 비교적 부패지수가 높은 기관으로 꼽혔다.

“부패 없애려면 처벌을 더 강화해야” 최다

▲ 2009년 9월30일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재오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

정당을 선택한 응답자 중에서는 역시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83.3%의 압도적 빈도수를 나타냈다. 지방 행정 부처 중에서는 건설·토목 관련 부처가 47.8%의 높은 지목률을 나타냈고, 도시계획 관련 정책 기관(34.8%)이 그 뒤를 이었다. 중앙 행정 부처 가운데서도 국토해양부와 지식경제부, 그리고 환경 및 식품 관련 부처 등이 각각 23.5%씩의 높은 빈도율을 나타냈다. 법조 기관 중에서는 경찰청을 지목하는 목소리가 40.0%로 가장 많았다. 

이들 기관의 다음은 교육기관(5.4%), 기업(5.2%), 방송·언론 기관(4.4%), 종교단체(3.9%)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교육기관 중에 초등학교를 지목한 전문가가 거의 전부였다는 점이다. 앞서 부패 직업군 중 교육자를 답한 이 가운데 절대 다수가 초등학교 교사를 지목한 것과 그 맥을 같이한다. 상대적으로 군대(2.1%)와 시민단체·노동단체, 의료기관(이상 1.8%) 등은 부패 정도가 양호한 기관으로 조사되었다.  

‘부패와 관련해서 가장 심각한 사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44.5%가 ‘뇌물 수수’라고 답했다. 그 다음으로 ‘이권 개입’(24.0%)과 ‘권한 남용’(22.0%)이 엇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인사 청탁’은 8.0%에 그쳤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이렇게 만연하고 있는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일까. 본 조사에서는 주요 방지 대책 사례로 6개의 보기를 제시하고, 그 각각에 대해서 중요한 순서대로 표기토록 했다. 1순위로 표기한 것을 7점으로 하고, 2순위는 6점, 3순위는 5점 등 역순으로 점수를 매겨 평균을 조사한 결과, 전문가들은 ‘비리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4.74점)는 점을 1순위로 꼽았다. ‘사정 당국의 수사를 좀 더 강화해야 한다’(4.33점)는 주문이 2순위로 나왔다. 부패·비리에 대해 좀 더 강력한 수사와 처벌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부패·비리에 대해서 너무나 관대한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이어서 3순위로 거론된 것이 ‘내부 고발 확대 여건 조성’(3.89점)이었고, 4순위가 ‘청렴 의식 교육 강화’(3.06점)였다. 5순위는 ‘정보 공개 강화’(2.67점), 6순위는 ‘시민 감시 시스템 강화’(2.30점)였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김용철 교수는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개인의 도덕성 부재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제도의 역할 부재로 보는 경향이 더 강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부정과 비리의 근본적인 통제를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전문가들은 내부 고발에 대해 좀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그만큼 내부 고발자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라고 분석했다.


2008년 2월29일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새롭게 탄생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청렴위원회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그리고 국무총리실의 행정심판위원회가 수행했던 기능이 현 정부 들어 모두 권익위로 통합되었다. 국가청렴위는 과거 부패방지위원회의 후신이었다. 따라서 권익위가 부패 방지 기능을 흡수하게 된 것이다. 권익위는 한때 현 정권의 실세로 불리던 이재오 특임장관이 위원장을 맡으면서 위상이 강화되기도 했다. 이장관은 권익위원장 시절 “부패를 척결하겠다”라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전문가들은 ‘권익위의 부패 방지 활동의 효과성’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전체의 39.0%에 이르는 응답자가 ‘효과가 전혀 없다’라고 답했다. ‘거의 없다’(24.0%)라는 응답까지 포함하면 부정적 견해가 과반을 넘는 63.0%에 해당한다. ‘그저 그렇다’가 27.0%로 나타났고, ‘효과가 조금 있다’라는 긍정적 견해는 10.0%에 불과했다.

‘차기 정부에서 권익위의 부패 방지 기능이 어떻게 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폐지되어야 한다’가 43.0%로 압도적 다수를 이루었다. ‘감사원으로 이관되어야 한다’(17.5%)와 ‘다른 기능으로 대체되어야 한다’(17.0%)가 엇비슷하게 그 다음을 이었다.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13.0%에 그쳤다.

이에 대해 이번 조사를 진행한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 정부에서 권익위의 부패 방지 기능에 대해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는 불신과 회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는 권익위의 부패 방지 기능을 전면 폐지하고, 새로운 반부패 개혁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좀 더 새롭고 강력한 부패 방지 전담 기관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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