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도 ‘혹평 탈출’할 날 가까워졌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1.08.2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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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의 컴퓨터그래픽에 대해 호평 일색…<7광구> <최종병기 활> 등이 그와 비교되지만 호평도 끊이지 않아

▲ ⓒ20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최근 개봉한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하 <혹성탈출>)은 컴퓨터그래픽(CG)에서 놀라울 만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컴퓨터그래픽의 한계점이라고 지적받아온 눈동자 표현과 털 표현에서 실물을 능가하는 완성도를 보여준 것이다. 대부분의 평론가들도 이 영화가 보여준 ‘그림’이 실사 촬영과 구별하지 못할 정도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 영화의 CG를 담당한 회사는 웨타디지털이다. 3D 영화의 이정표를 세운 <아바타>의 특수 효과를 담당한 바로 그 회사이다. <아바타>는 배경 화면도 90% 이상이 그림으로 그린 세계였다. <혹성탈출>이 <아바타>를 능가하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대부분 특수효과물의 가상 캐릭터는 어두운 밤이나 조도가 낮은 실내에서 등장한다. 대낮에 실사 촬영한 배경 화면에 가상 캐릭터를 티나지 않게 표현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혹성탈출>에서는 대낮에 그림으로 창조한 캐릭터를 떼로 풀어놓는 기술을 선보였다. 그것도 CG로 표현이 어렵다는 털이 무수히 난 원숭이를 말이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 원숭이가 눈동자와 얼굴 근육을 이용한 표정 연기까지 한다. CG로 표현하지 못할 것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국내 기술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 개봉한 <7광구>나 <최종병기 활>에서 등장하는 CG 기술은 어느덧 국내 기술도 할리우드 기술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7광구>는 그동안 국내에서 제작한 것 중 CG 비율이 가장 높은 영화이다. 총 1천8백 컷 가운데 1천7백48컷이 CG 컷이었다. 90%가 넘었다. 특수효과를 담당한 모팩의 장성호 대표는 “투입 시간이나 예산 대비 효율은 국내 기술이 최고이다”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7광구>의 크리쳐는 웨타가 작업한 <괴물>의 크리쳐 완성도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얻었다.

<최종병기 활>에서는 ‘털 달린 크리쳐’인 호랑이가 등장한다. 이 영화의 특수효과를 담당한 디지털아이디어의 한영우 감독은 최근 <퀵>과 <최종병기 활>의 CG를 연달아 완성해냈다. 특히 <최종병기 활>은 8억원 정도의 예산에 45일 만에 전체 4천3백 컷 중 6백 컷 정도의 CG 장면을 완성하는 초스피드 작업을 해냈다. 그럼에도 호랑이나 절벽 낙하 장면, 화살 비행 장면에서 <최종병기 활>의 CG 완성도는 호의적 평가를 받고 있다.

▲ 좌측 - | 우측 -  ⓒ디지털 아이디어 제공

국내 CG 기술, 내년이나 내후년쯤이면 할리우드와 어깨 견줄 수도

그 어렵다는 털보 괴물을 45일 만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스터 고>(김용화 감독)라는 대형 프로젝트가 있다. <미스터 고>는 고릴라가 야구를 한다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1년째 사전 작업 중이다. 고릴라가 야구도 하고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만큼 이 영화는 웨타가 <혹성탈출>에서 보여준 완성도를 넘어서야 한다. 웨타가 <혹성탈출>에서 원숭이에게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부여할 수 있었던 동력이 된 것은 모션캡쳐 기술이다. 실제 배우가 얼굴과 온몸에 센서를 달고 연기를 하면 이를 찍어서 ‘극사실체’로 그려내는 것이다.

디지털아이디어에서도 내년 2월에 시작될 <미스터 고>의 촬영을 앞두고 한국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1년여간 동영상 콘티(프리비젼)를 짜는 등 프리 프로덕션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한영우 감독은 “<미스터 고>의 프리비젼을 1년 동안 해온 성과물이 쌓여서 <최종병기 활> 작업을 그나마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었다. 좀 더 많은 시간과 예산을 지원해주면 할리우드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데 많이 아쉽다”라고 전했다. 최근 몇 년간 국내 CG 기술은 할리우드와의 기술 차이를 열 걸음 이상에서 세 보·네 보 차이로 좁히고, 내년이나 내후년쯤에는 반보나 어깨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 ⓒ화앤담이엔티 제공
한국의 아이들은 이가 빠지면 지붕 위로 던졌지만 북유럽의 아이들은 이가 빠지면 베개 밑에 넣었다. 빠진 이를 가져가는 대신 은화를 놓고 간다는 ‘이빨 요정’ 신화 때문이다. 잠자리에 든 아이들을 훈육하기 위해 구전된 이야기이다. 영화 <돈 비 어프레이드-어둠 속의 속삭임(이하 <돈 비 어프레이드>)은 바로 이 이빨 요정 이야기를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소녀 샐리(베일리 매디슨)는 아빠 알렉스(가이 피어스)와 함께 19세기풍 고택으로 막 이사를 왔다.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샐리는 이사 온 첫날부터 집 안 어딘가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듣는다. “같이 놀자, 샐리.” 하지만 아빠도, 새엄마가 될 킴(케이티 홈즈)도 샐리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아빠는 오래된 집을 복원하는 데만 열심이고, 어딘지 우울해 보이는 킴은 다가가기 어렵다. 멀리 있는 엄마와는 연락하기도 쉽지 않다. 외로운 샐리에게 친구는 목소리뿐이다. 어느 날 밤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샐리의 방을 찾는다. “같이 가자, 샐리.”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던 소녀의 성장을 담은 영화 <돈 비 어프레이드>는 고전적 하우스호러의 동화적 변주이다. 새로 이사 간 집에서 만나는 기이한 존재 그리고 시작되는 공포. 가족은 위기를 맞지만 아이는 공포를 통해 자란다. 영화는 고전적 스타일에 충실하되 CG를 통해 탄생한 이빨 요정으로 현대적 손길을 가미했다. 공포의 수준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고, 그 실체가 조금 일찍 전면에 드러나면서 흥미가 반감된다. 하지만 콘트라스트를 강조한 화면과 공들인 세트에서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나 이빨 요정의 습격 장면 등은 어른의 눈높이로 보아도 꽤 훌륭하다.

연출자는 코믹북 일러스트레이터 출신 트로이 닉시이지만 곳곳에서 초안과 각본, 제작에 이름을 올린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델 토로 연출의 <판의 미로>가 스페인 내전이라는 배경을 깔아 이야기에 깊이를 더했다면 <돈 비 어프레이드>는 상대적으로 다소 단순해 보이기는 한다. 존 뉴랜드의 동명 TV 영화가 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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