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어 놓은 당상’ 푸틴, 어떤 러시아를 그리나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8.23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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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시대의 소련을 부활시킬 것인가 ‘문명 세계’로 들어올 것인가, 두 갈래 전망 나와
러시아는 내년 3월 대통령 선거를 실시한다. 이 선거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나 푸틴의 재선이 확실시된다. 이미 대통령을 두 번이나 역임한 푸틴은 이번에 재선될 경우 개정 헌법에 따라 6년간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다. 요즘 러시아에서는 푸틴과 메드베데프를 각각 지지하는 미녀 부대들이 나타나 이색적인 지지 행사를 벌여 선거 전초전이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두 당사자는 아직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으며 선거와 관련된 모든 이벤트는 사실상 푸틴의 재선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통과 의례로 간주되고 있다.  

예상대로 푸틴이 다시 대통령이 되면 그가 러시아를 어디로 인도할 것이냐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이다. 푸틴이 만들 러시아의 모습을 놓고 두 가지 지배적인 전망이 상충하고 있다. 하나는 옛 소련의 향수에 젖어 있는 다수의 러시아 유권자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스탈린 시대의 소련을 부활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전망은 푸틴이 바보가 아닌 이상 모든 상황이 변한 21세기에 소련의 재현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며 ‘문명 세계’로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어떤 예측이 맞느냐에 따라 미국의 대응도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요즘 미국에서는 이에 관한 토론이 한창이다.  

▲ 지난 8월1일 러시아 셀리게르 호수 인근에서 열린 청소년 캠프에 참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학생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EPA 연합

푸틴이 소련의 해체를 ‘치욕’으로 본다는 논리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따르면 소련 부활론의 논리는 소련의 해체를 ‘치욕’으로 보는 푸틴의 인식에서 찾고 있다. 러시아는 소련의 붕괴와 그 후에 온 경제 붕괴로 거의 국가의 소멸을 예고하는 직전까지 추락했다. 그러나 푸틴이 대통령으로 재임한 8년간 경제는 유가 상승 덕분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중산층이 형성되고 푸틴에 대한 지지율은 한때 80%까지 치솟았다. 그의 권위주의적 민주주의와 공격적 외교 정책에 대해 대다수 러시아인은 긍정적이다.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한 것을 보고 미국 경제를 세계 경제의 ‘기생충’으로 매도한 푸틴의 막말 속에서도 러시아인들의 정서가 읽힌다. 푸틴은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리는 미국을 보면서 다시 미국과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받을 수 있다.

많은 러시아인은 1956년 헝가리 봉기 진압, 1968년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1979년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같은 전성시대를 그리워한다. 당시 러시아는 동유럽, 코카사스, 발트 해를 직접 통제했고 니카라과, 쿠바, 남예멘, 시리아, 앙골라에 대해서는 우방이라는 이름으로 간접적 지배력을 행사했다. 경제 회복으로 자신감을 얻은 러시아는 2008년 그루지야를 침공해 패권주의 버릇을 버리지 못했음을 확인해주었다.

푸틴이 9·11 테러에 대해 애도를 표시하고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지원을 약속한 것을 두고 그의 패권 야망이 완화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런 우호적 행동은 체첸 분리주의자들을 학살한 반인륜 행위를 묵인해달라는 조건을 내포한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푸틴의 야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은 러시아 연방보안위원회(KGB) 본부에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유리 안드로포프의 명패를 다시 설치하도록 한 것이다. 안드로포프는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봉기를 유혈 진압한 냉혈 인간이다. 푸틴은 그를 ‘탁월한 지도자’라고 찬양했다. 안드로포프에 대한 추앙이 반드시 크렘린주의의 부활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제스처는 레이건 대통령이 말한 ‘악의 제국’에 자신감을 불어넣은 측면이 있다.  

성격상 패권은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

▲ 지난 7월31일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 광장에서 경찰이 반정부 시위자들을 끌어내려 하고 있다. ⓒAP연합
푸틴의 러시아가 과거의 소련과는 현저히 다를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은 푸틴의 성격에서 그 단서를 찾는다. 냉전이 끝나고 다극 체제가 된 21세기에 푸틴이 무모한 패권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이다. 무엇보다 푸틴은 ‘현실주의자’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실천할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다. 과거 국무부에 근무하면서 푸틴을 연구한 미국 관리들도 이에 동의한다. 또한 푸틴은 속내를 숨기지 않는 성격이다. 푸틴은 여러 계기를 통해 문명 세계를 동경하는 말을 했다. 인종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문화적 전통과 하룻밤 사이에 무너지지 않는 탄탄한 제도와 경제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어쩌면 미국과 유럽 경제의 취약성을 보면서 무언가를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그루지야 침공만을 두고 푸틴을 팽창주의자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게다가 옛 소련 위성국들은 대부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했고, 나토에 대항하던 바르샤바조약기구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푸틴의 치하에서 러시아 경제는 많이 발전했다. 1인당 소득도 7천 달러를 넘었다. 하지만 부패와 빈곤은 여전하고 서구 문명과의 갈등도 깊다. 중국과 인도가 새로운 강대국으로 떠오른 점도 푸틴의 행동 반경을 제약한다. 따라서 산적한 대내적 도전과 새로운 세기의 지정학적 변화를 감안할 때 더 이상 푸틴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서북쪽으로 3백50km 떨어진 셀리게르 호수 인근에서는 지난 7월에 크렘린이 주관하는 청소년 캠프가 9일간 개최되었다. 이 캠프에는 앞으로 1년간 18세에서 25세 사이의 남녀 2만명이 참가한다. 행사 비용으로는 7백만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포럼 형식으로 진행되는 행사의 교육 내용이 흥미롭다. 기자들에게 국가 기밀을 누설하지 않는 법, 인터넷을 잘하는 법, 청년 조직을 만드는 법, 사회 활동에 필요한 모금을 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교육의 핵심은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젊은 세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푸틴과 메드베데프가 모두 참석한 이 캠프에서 가르치지 않은 단 한 가지는 푸틴을 찬양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일부 서방 언론과 러시아 내 반체제 인사들은 이 행사를 젊은 세대에 대한 세뇌 교육으로 본다. 오렌지 혁명이나 ‘아랍의 봄’ 같은 외부 풍조로부터 체제를 보호하려는 정책 차원의 노력이기도 하다. 캠프에 참석한 청소년들의 생각은 다르다.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 나갈 때 유리한 경력 하나를 추가하려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다. 한 강사가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앞줄에 앉은 한 학생은 “모든 화근의 원천이다(America is to blame for everything)”라고 대답했다. 어느 날 질문과 응답 시간에 참석한 푸틴은 전제주의식 국가 경영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평소 푸틴의 통치 스타일과 동떨어진 이 연설에 청중들은 어리둥절해졌다. 한 학생이 2012년 선거에서 푸틴이 당선되리라는 데 추호의 의심도 없다는 발언을 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푸틴은 우리 대통령!”이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푸틴이 이 캠프에서 보인 언동은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헷갈리게 했으나 그가 대통령이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해주었다. 다만 어떤 대통령이 될지는 아직 베일에 가려 있다.

50년 전 8월 니키타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은 동독의 공산당 서기장 발터 울브리히트에게 베를린 장벽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공산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상징적 조치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20년 전 8월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각하, 장벽을 철거하시오”라고 말했고, 고르바초프는 그렇게 했다. 역사학자들은 가정을 좋아한다. 베를린 장벽을 건설하지 않았다면, 또는 그 장벽을 철거하지 않았다면 공산주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 베를린 장벽 얘기가 나오는 것은, 푸틴이 베를린 장벽을 둘러싼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배웠느냐 하는 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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