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을 산업으로 보고 지원하라”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11.08.2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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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가 약가 통제·산업 육성 모두 관할하는 것은 문제”…‘약값 단계적 인하’ 요구도 많아

▲ 한국제약협회 소속 제약사 임직원 100여 명이 지난 8월12일 ‘약가 인하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보건복지부와 제약업계 사이에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정부는 리베이트 근절과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화를 위해서라도 약값 인하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제약업계는 약값 인하가 지나쳐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관련 법규를 개정해 내년 1월부터 약값 산정 방식을 변경할 계획이다. 또 혁신형 제약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을 내년 3월 시행하기로 정했다.

이 시간표대로라면 제약업체 상당수는 연구·개발을 축소 또는 포기할 위기를 맞는다. 업계에 따르면, 대량 해고 사태는 물론이고 문을 닫는 제약사도 생길 수 있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사태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시사저널>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해법을 세 가지로 종합했다. 우선, 약가 정책과 제약 산업 육성 정책을 분리하는 방법이다. 국내 제약업계 역사가 100년을 넘었지만 그동안 산업으로 육성하는 데에는 미흡했다. 공공재라는 의약품의 특수성 때문에 시장 논리에 맡겨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약가 통제에 대한 권한과 산업 육성 모두를 복지부가 관할하고 있다.

때에 따라 국민 눈치를 보아야 하고, 건강보험 재정도 챙겨야 하고, 제약사도 관리해야 하는 일을 처리하다 보면 상충되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다. 약값과 같은 문제는 복지부가 관할하더라도 제약업계는 산업으로 보고 지식경제부가 지원·육성하는 방안도 검토할 가치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제약 산업을 지원하는 방법도 달리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각 제약사마다 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약품이라도 화학 약품, 바이오 약품 등 종류가 다양하고, 각 제약사의 연구·개발 진행 과정도 천차만별인데, 매출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로 지원 대상 기업을 선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다. 또 외형이 크지 않아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은 많지 않지만 잠재 능력이 있는 제약사는 보호할 가치가 있다. 연구·개발을 활발히 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음부터 싹을 잘라버리면 한국 제약업계의 국제 경쟁력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지원 방법, 기업 처지에 맞춰 달리 해야”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국장은 “한국 제약업계의 연구·개발 과정을 세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연구·개발이 성숙 단계에 들어선 기업이 있는가 하면 이제야 활기를 띠는 기업과 겨우 준비하는 기업도 있다. 이런 기업별 특성에 맞춰 지원책을 준비해야 각 기업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한 가지 잣대로 제약업계를 나눌 것이 아니라 제약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경쟁력도 생기고 자생력도 기를 수 있다. 이런 힘이 세계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밑천이 된다”라고 말했다.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화를 위해서 약값을 인하할 수밖에 없더라도 업계가 받아들이는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제약사들도 적응해 나가면서 경영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제약사 임원은 “과거에 약가를 내릴 때는 매년 6~7%씩 단계별로 내려 업계가 대비할 시간을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17~30%, 즉 2조원어치를 한꺼번에 내리려니 부작용이 크다. 기업은 예측 가능한 정책을 보고 미래를 설계한다. 이런 생리를 이해하면 지금처럼 일방적이고 부담스러운 가격 인하 정책을 강요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지난 8월12일 제약업계 사장들이 요청한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과의 면담은 성사되었나?

장관과 면담하기 위해 복지부를 찾았다. 그러나 복지부는 정문을 걸어 잠그고 면담을 거부했다. 정문 밖에서 1시간가량 면담을 요청했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 약값 인하 정책을 마련하기 전에 복지부와 사전 조율이 없었나?

한두 차례 있었지만, 업계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는 제약 산업 선진화를 최종 목표로 두고 있는 것 같다.

그 대의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연구·개발의 원천인 약값을 인하하면서 신약 개발과 해외 진출을 독려해 제약 산업을 육성한다는 정책은 모순이지 않는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도 제약 산업은 피해 산업으로 인정되어 오히려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정책으로 제약업계는 경쟁력을 잃고 회생 불가능한 제약 후진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왜 약값 인하 정책을 강요한다고 생각하는가?

건강보험 재정 적자를 만회하려는 단기적 성과주의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길고 큰 안목의 정책이 아니다. 정책은 산업이 받을 충격을 최소화하고, 산업은 그 정책에 맞춰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 정책은 그야말로 충격이다. 

리베이트 문제로 제약업계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리베이트는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제약협회의 입장이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정부가 도입한 쌍벌제도 받아들였다. 반성과 자정 노력도 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 건강과 경제 발전을 위해 필수 의약품 안정 공급, 선진 제조 시설 투자, 신약 개발, 해외 시장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런 노력이 무산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투자 재원이 필요하다. 일부 업체의 일을 빌미로 모든 업체에 정책을 일괄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이다.

절충안은 무엇인가?

기존의 약가 인하 정책(기등재 의약품 정비 사업)으로 이미 1조원을 절감하고 있는데, 추가로 2조원을 깎으라는 것은 제약업계에게 가혹한 조치이다. 기존 정책이 마무리되는 2014년 이후 재정 효과와 시장 변화 등을 충분히 살펴보고 검토해줄 것을 복지부에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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