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가는 도시 이끄는 인재들
  • 이춘삼│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8.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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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 인맥 지도 | 경기 부천

 

▲ 경기도 부천시 ⓒ부천시홍보기획관 제공

부천이라는 지명은 1910년 8월29일 경술국치를 당한 지 4년 후인 1914년 일제에 의해 전국에 걸쳐 부(府)·군(郡)·면(面)이 통폐합되면서 생겨났다. 부평의 ‘부’와 인천의 ‘천’ 두 글자를 딴 것이다.

1973년 7월1일 부천군 소사읍 일원을 관할로 하는 부천시가 설치되었고, 부천군의 여타 지역은 당시 시흥군·김포군·옹진군에 편입되면서 부천군이 폐지되었다. 부천시는 인구 증가로 인해 1988년 1월1일 중구와 남구로 나뉘고 1993년 2월1일 현재의 원미구, 소사구, 오정구로 다시 한번 분화했다.

1990년대 중반에 중동 신시가지 건설이 완료되고 2000년대 초반 상동 신시가지가 들어서며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76년 당시 12만명 정도였던 것이 지금은 87만명을 육박하고 있다. 서울의 위성도시로 베드타운 기능을 하면서 중소 규모 제조업의 비중 또한 높아져 5인 이상 기업체 3천5백94개에 종사자는 약 6만명 정도에 이른다. 인구 밀도는 평방 km당 1만6천2백79명으로 서울에 이어 전국 두 번째이다.

양귀자씨의 장편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부천시 원미동을 배경으로 소시민들의 삶과 애환을 묘사하고 부천의 이곳저곳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유명하다.

 

 


총선에서 한나라당·민주당, 엎치락뒤치락

부천시 4개 선거구의 현역 의원 현황은 표와 같다. 부천이 아닌 다른 지역 출신인 임해규 의원과 차명진 의원은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임의원은 김지사가 국회의원을 지내던 시절 지역구 사무소에서 조직부장, 사무국장, 부위원장으로 일했다.

차의원은 민중당 구로 갑 지구당 김문수 위원장의 사무국장으로 시작해 신한국당으로 당적을 옮긴 김문수 의원 보좌관, 김문수 경기도지사 후보 선대위 총괄실장, 김지사 당선자 인수위 부위원장을 맡아 보면서 측근에서 보좌했다. 부천 소사구에서 15, 16, 17대 의원을 지낸 데다 워낙 지역 기반이 든든한 김문수 지사와의 관계가 두 사람의 당선에 도움을 주었다고 지역 사람들은 말한다.

 

지역구

이름

나이

당적

본적

학력

경력

선 수

원미 갑

임해규

51

한나라

김천

양정고-서울대 교육학과

부천시의원

2선 

원미 을

이사철

59

한나라

부천 

경복고-서울대 법대

검사

2선 

소사

차명진

52

한나라

서울

 용문고-서울대 정치학과

의원보좌관

2선 

오정

원혜영

60

민주

부천

경복고-서울대 역사교육과

부천시장

3선 

 

16대 때 안동선(원미 갑)·배기선(원미 을)·최선영(오정) 의원이 모두 민주당 소속이었고, 17대에 들어서도 김기석(원미 갑)·배기선(원미 을)·원혜영(오정) 의원이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한나라당이 열세였으나 김기석 의원이 중도하차한 자리에 임해규 의원이 당선되면서 동수(同數)를 이루었다. 17대 임기 중 김의원의 도지사 선거 출마로 같은 당의 차명진 의원이 재·보선에서 당선되었다. 이 숫자는 18대에서 역전되었다.

임의원은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부천에 자리 잡아 부천시 의원,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조직위원, 로타리클럽 지역사회개발위원장 등을 지내며 이름을 알려 17대 임기 중 재·보선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공천심사위원, 대외협력위원장을 지냈다.

이사철 의원은 원혜영 의원과 같이 부천에서 출생했고, 경복고 1년 선후배 간이다. 이의원의 집안은 3백년간 원미구 약대동에 터를 잡아온 토박이이다. 이의원은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 대구지검 의성지청장, 특수부장, 법무부 검찰 2, 3, 4과장을 지냈다. 5공 시절이던 1985년 서울지검에서 대학생 73명이 연루된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의 주무 검사를 맡는 등 공안 검사로 활약했다.

이의원은 두 차례에 걸쳐 당 대변인을 지냈다. 신한국당 경선 때는 고교·대학·검찰 선배인 이한동 고문 곁을 떠나지 않은 의리를 보였고, 호방한 성격에 솔직하고 직선적이어서 ‘다혈질’의 인상을 준다. 신군부의 한 사람인 박준병 전 의원과 동서지간이다.

부천 원미구 을은 이의원과 배기선 전 통합민주당 의원이 네 차례나 엎치락뒤치락 맞대결을 벌인 곳이어서 관심을 끄는 지역이다. 15, 18대 선거에서는 이의원이 이겼고 16, 17대에서는 배 전 의원이 이겼다. 배 전 의원은 전남 무안 출신으로 1990년대 초부터 부천에 살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민주화운동을 했다.

차명진 의원은 앞에 설명한 대로 김문수 지사의 측근이면서 손학규 경기도지사 당시 공보관과 특별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고,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을 하다 민중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이어 한나라당으로 이적해 17대 국회에 진출한 후 이명박 후보 경선대책위 미디어홍보위원회 본부장 일을 맡아 보았고 당 수석대변인, 공천심사위 부위원장, 정책위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당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다.

 

 

유한양행과 풀무원의 터전

원혜영 의원은 민선 2, 3대 부천시장을 지냈고 14, 17대에 이어 18대 의원으로 있는 부천의 터줏대감이다. 열린우리당 정책위 의장, 사무총장, 최고위원, 국회 예결위원장, 민주당 원내대표를 역임한 중진이다.

서울대 교양과정부(1학년) 시절 학생회장을 맡았던 그는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두 차례 복역하고 역사교육과 3학년 때 제적되어 입학 25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다. 대학 시절 시위 전력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수 없어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1981년 호구지책으로 ‘풀무원식품’이라는 유기농 자연식품회사를 차려 1988년 한겨레민주당 창당에 참여할 때까지 경영했다. 기업을 하면서 체득한 경험은 정치 행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유기농법을 정치에 적용한 것이다. 그는 단기간에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화학비료와 같은 정치적 제스처는 쓰지 않았다고 자평한다.

‘정치인 원혜영’에게는 한국 유기농의 대부로 통하는 아버지 원경선씨가 있다. 원의원이 지난해에 펴낸 <아버지, 참 좋았다>라는 책에는 자식도 유기농으로 키운 원씨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원경선 풀무원 공동체 원장은 97세의 고령인 지금도 하루 몇 시간씩 트랙터를 타고 농장을 돌며 도랑을 치고 풀을 뽑는다고 한다.

원원장은 평안남도에서 월남해 1949년 부천군 오정면 도당리에 자리를 잡아 농사를 시작했고, 공동체를 꾸린 후 1955년 ‘풀무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농장 공동체 식구들을 하느님의 말씀과 농사일로 풀무질해서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라는 뜻이다. 전쟁 후에 폐허가 된 거리는 전쟁 고아들과 걸인들로 넘쳐났는데 원원장은 이들을 풀무원농장에 받아들였다. 함께 일하고 부대끼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는 농사는 간접 살인이라는 생각에서 최초로 유기농을 시도했다. 원원장은 천안에 씨알농장을 갖고 있던 함석헌 선생과도 각별한 사이였다.

정치에 발을 들여 놓겠다던 원의원과 아버지 사이에 오간 대화는 이러했다. “양심대로 할 자신 있느냐? 돈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 있느냐?” “걱정하지 마세요.”

18대 총선에서 이상 소개한 네 명의 의원은 임해규 51.8%, 이사철 49%, 차명진 50.1%, 원혜영 56%의 엇비슷한 득표율을 보였다.

 

▲ 경기도 부천시 복숭아밭 ⓒ부천시홍보기획관 제공

 

김만수 부천시장은 충주 태생으로 연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 총학생회 부회장을 지냈으며, 민주화운동으로 구속된 경력이 있다. 원혜영 의원 보좌관과 부천시의원을 지내면서 부천에서 터를 닦았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의 공보팀장과 인수위 부대변인을 거쳐 청와대 홍보수석실에 들어섰다. 춘추관장을 지내고 17대 총선에 출마(열린우리당)했으나 김문수 후보에게 패하고 다시 청와대 대변인으로 돌아갔다.

18대 총선에 재도전(통합민주당)했다가 차명진 후보에게 패배한 후 제5회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간판을 달고 시장에 당선되었다.

2004년 4월23일 국내에서는 최초로 기업인의 이름을 별칭으로 붙인 도로가 생겼다. 부천시는 경인고속국도의 부천 구간 6km를 ‘유일한로(柳一韓路)’로 부르기로 했다.

부천시는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 박사가 1936년 원미구 심곡동 일대에 근대적 제약 공장을 지어 지역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1999년에는 그를 ‘부천시를 빛낸 공덕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부천시내 중앙공원에는 그의 동상을 세워 업적을 기리고 있다.

부천에 제약실험연구소와 공장을 세운 유박사는 종업원들에게 주식을 액면가의 10% 정도로 골고루 나눠주었다. 부천에 현재의 유한대학을 세우기도 했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장남에게는 “대학까지 졸업했으니 자립해서 살아가라”라는 유언만을 남겼을 뿐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았다.

권문구 GS건설 부회장, 김근태 우석대 행정학과 석좌교수(전 보건복지부장관), 문인구 제34대 대한변협 회장, 민경천 홍익대 명예교수(전 홍익대 총장), 한방교 부천대 총장이 부천 출신이다.

 

부천 출신 인사

 

 

이름

출신  학교

직책

유일한(故)

 

유한양행 회장

강득수

중앙대 기계과

케이엠아이티 대표이사 회장 

강호문

서울고-서울대 전기과

삼성전자 중국본사 부회장 

고기화

연세대 정외과

국제신문 논설위원 

권문구

제물포고-서울대 법학과

GS건설 부회장 

김근태

경기고-서울대 경제학과

우석대 석좌교수 

김봉록

서울장로회신학교

정동제일교회 원로목사 

문인구

서울대 법학과

제34대 대한변협 회장 

민경천

경기상고-서울대 정치학과

홍익대 명예교수 

바다(본명 최성희)

단국대 공연영화학부

가수 

박상돈

환일고-인천대 전기과

거산정보통신 대표이사 

원경선

 

풀무원 공동체 원장 

원국희

인천고-서울대 상학과

신영증권 회장 

원혜영

경복고-서울대 역사교육과

국회의원(민주당·부천시 오정구) 

윤종수

홍익대사대부고-서울대 법대

인천지법 부장판사 

이사철

경복고-서울대 법학과

국회의원(한나라당·부천시 원미구 을) 

이상훈

부천고-연세대 수학과

경기도의회 의원(민주당·부천시1) 

이수향

중경고-중앙대 연극영화과

MBC 영상취재1팀 부국장 

이우정

안양대 테크노경영학과

주연테크 대표이사 

이창운

서울대 상대

인천YMCA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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