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격 혈액’ 또 유통되었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1.08.2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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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혈액원, 지난 7월 의료기관에 여덟 팩 공급…유효 기간 지난 사실 8개월 동안 몰라

 

▲ 대한적십자사 중앙혈액원 직원이 혈액냉장고에 보관된 혈액을 정리하고 있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연합뉴스

 

대한적십자사(이하 적십자)의 파행 운영은 다른 곳에서도 엿볼 수 있다. 부적격 혈액이 아무런 제재 없이 의료기관에 공급되고, 이 혈액이 다시 환자에게 수혈되는 사례가 최근 잇달아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혈액원은 지난 7월 부적격 혈액 여덟 팩을 의료기관에 공급했다가 내부 감사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혈액원은 당시 부적격 혈액이 유통된 사실을 파악하고도 내부적으로 ‘함구령’을 내렸다. 수혈 당사자는 물론이고, 본사에도 관련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다. 뒤늦게 내부 직원의 고발로 본사의 감사가 시작되었다.

적십자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문제가 된 혈액은 유효 기간이 8개월이나 지난 생리 식염수로 제조한 세척 적혈구(W-RBC)였다. 내부 직원의 제보가 없었다면 영원히 묻힐 수도 있었다”라고 귀띔했다.

적십자측도 일부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다. 적십자의 한 관계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다수 직원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데, 일부가 물을 흐리면서 이미지를 훼손하고 있다”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혈액 자체가 유효 기간이 지난 것은 아니다. 세척 적혈구를 만드는 생리 식염수가 문제인 만큼 부작용은 없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효 기간이 지난 제품을 8개월 동안 확인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혈액 관리나 유통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적십자의 한 직원은 “전남 광주혈액원이 문제의 생리 식염수를 빌리는 과정에서 유효 기간이 지난 사실을 확인하고 전북혈액원에 통보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부적격 혈액인지도 모른 채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최근 부산혈액원에서도 비슷한 사고 발생

민원기 한국진단검사의학회 이사장(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은 “문제가 있는 혈액을 걸러내지 못하고 내보낸 사실 자체가 문제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주한 전문가가 제품으로 내보낼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같은 시스템이 무너졌다. 국민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혈액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보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부산혈액원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터졌다. 정상 온도를 벗어난 상태에서 두 시간 가까이 방치된 혈액팩 1천8백여 개가 부산·경남 의료기관에 공급된 것이다.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보고받은 혈액관리본부가 서둘러 회수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상당수가 일선 의료기관에 출고된 상태였다. 일부는 환자에게 수혈되었다.

지난해 4월에는 홍역·볼거리·풍진(MMR) 백신 예방 접종을 받은 지 한 달도 안 된 군 장병 8백84명으로부터 단체 헌혈을 받았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적십자 안팎에서는 헌혈자뿐 아니라 수혈자의 안전 확보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자와 만난 적십자 내부 직원들은 “부적격 혈액을 내보낸 자체가 혈액 사고이다. 역학 조사를 통해 결과를 발표하고, 재발 방지책도 마련해야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적십자 측은 "감사 자체가 전북 혈액원 내부 보고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내부 직원의 제보는 일체 없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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