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 출연은 ‘공생 발전’과 상관없는 결심”
  • 감명국 │정리 · 이규대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8.2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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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 인터뷰 “이미 3월에 발표하려 했던 일이다”

▲ “한나라당에는 친박·친이의 계파가 있어서 자기 계파원끼리만 잘 챙기고 계파 우두머리의 눈치는 잘 본다. 상대 계파도 의식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계파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경우에 없이 행동하는 의원도 있었다. 내가 6선인데…. 민주주의의 기본에 역행하는 일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지만, 올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대선 판도가 요동치고 있다. 우선 야권에서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급부상하면서 ‘손학규-유시민 양강 구도’가 허물어졌다. 여권도 지각 변동 조짐이 보인다. 이른바 ‘박근혜 대항마’로 유력하게 부각되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8월12일 전격적으로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이후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의 행보가 급격히 빨라졌다. 지난 8월16일 범현대가(凡現代家)와 함께 사회복지재단인 ‘아산나눔재단’을 설립하기로 하고 자신의 사재 2천억원을 출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뉴스의 중심에 섰다. 공교롭게도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생 발전’을 역설한 직후였다는 점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끌었다. 정 전 대표가 본격적인 대선 행보에 나섰다는 분석과 함께 청와대와 정 전 대표 간에 사전 교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냐는 시선 때문이다. 8월1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정 전 대표를 만나 이에 대해 물었다.  

아산나눔재단 설립 발표 시점이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직후였다. 청와대와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아니다. 원래는 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인 지난 3월에 발표하기를 원했는데,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 가족들과도 상의해야 하고 회사도 절차를 밟아야 하다 보니 5월, 8월 이렇게 늦춰진 것이다. 그리고 광복절 경축사가 대개는 남북 문제 이런 데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나. 대통령께서 공생 발전을 꺼낼지는 몰랐다.

아산나눔재단 설립은 언제, 어떤 계기로 결심하게 되었나?

지난 3월 아버지 10주기 행사 때 사진 전시회, 음악회 등으로만 끝내려 하니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지 않나. 물론 양극화, 청년 실업 문제 등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책임지고 일을 해야 할 분야이다. 하지만 정부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 함께 고민하고 참여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도 아산나눔재단과 같은 취지의 사회적 참여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최근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사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정 전 대표 역시 재벌 회장 출신임에도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회장이) 잘못한 일이다. 물론 필리핀에 조선소를 짓는 것은 한진중공업이 알아서 판단하고 진행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국내의 부산 영도조선소가 돕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영도조선소의 일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새로 수주를 한다든지 해서 고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 몇 년 동안 수주가 없어서 종업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물론 그런 일이 발생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막기 위해 더 노력해야 했다.

최근 ‘박근혜 대항마’로서의 대권 행보가 가속화하는 듯하다. 아산나눔재단 역시 대권 행보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은 아닌가?

여기 아산정책연구원을 처음 만들었을 때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대권 행보용이라는 것이다. 물론 아산정책연구원은 내가 세웠지만, 궁극적으로는 나로부터 독립해서 대한민국을 위한 정책연구원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단지 명예이사장으로서 그것을 도울 뿐이다. 이번의 아산나눔재단도 마찬가지다.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설립했지만, 이후에는 나와는 독립적으로 잘 발전하기를 바란다. 아버지는 스스로를 ‘부유한 노동자’라고 표현하셨다. 나는 스스로를 ‘정치 노무자’라고 생각한다. 정치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정치인 중에서 관련 법 다 지키는 이가 얼마나 있나. 정치판에 오래 있으면 황폐해진다. 비록 내가 지금 정치판에 몸담고 있지만, 모든 것을 다 정치적인 행동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근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자주 만나고, 또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해서 지지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대세론’에 맞서기 위한 ‘3자 연대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김지사는 자주는 못 본다. 지난번 경기도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강연 자리에서 만났고, 얼마 전 저녁 식사를 같이한 정도이다. 그때 경기도에 강연하러 갔을 때, 한 기자가 김지사와 ‘전략적 연대’를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거기에 대해 “전략적 연대라고 하니 듣기는 좋지만, 그냥 편안한 만남이라 불러달라”라고 대답했다. ‘3자 연대론’이라고 하니까 좀 자연스럽지 않은 느낌이다. 각 정치인이 각자의 소신을 갖고 열심히 하는 것 아니겠나.

박근혜 전 대표와는 초등학교 동창인데,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박 전 대표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테니스장에서 가끔 본 적이 있다. 함께 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부르곤 했다. 예전에는 둘이서만 식사를 한 일도 꽤 있었다. 당시 박근혜 의원이 평양에 다녀왔을 무렵에도 했고…. 한나라당 들어온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다.

별로 안 친한가 보다.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하나?

썰렁한 농담 정도는 주고받는 사이이다.(웃음)

최근 ‘박근혜 대세론’에 대해 “‘일시적 쏠림’ 현상이 아니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정확하게 ‘일시적 쏠림’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표를 향한 국민의 기대가 높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박근혜 대세론’인데, 이것이 ‘박정희 향수’ 때문이라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한 것이다. 박근혜 개인을 보면서 “좋다” “능력 있다”라고 말한다면 좋은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향한 향수 때문에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현상은 옳지 않다.

박 전 대표가 여전히 부친의 후광을 입고 있다고 보는 것인가?

박 전 대표 스스로가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주변 사람들 중에는 실제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관계 때문에 박근혜를 지지한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더라. 그런 모습을 보면 답답하다. 과연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이 될까.

얼마 전 “양극화, 중산층 붕괴, 청년 실업 등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다”라며 복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국민은 ‘정몽준의 정치’가 무엇인지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복지 정책의 출발점은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물론 의식주 문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물질적으로 충족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지 않나. 개인이 독립하려는 의지가 있다고 보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독립된 개인이다. 알렉시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를 오래 할수록 위기에 처한다’라고 말했다. 평등화가 진행되면서 개인이 ‘고만고만한’ 존재로 전락해 정부에 의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줄 수는 없다. 모두가 국가에 의존하기만 하면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겠나. 못 한다. 독립된 개인이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 대표까지 지냈지만 여전히 당내 기반이 취약해 보인다. 일부 의원들은 정 전 대표를 향해 ‘포용력이 부족하다’ ‘스킨십이 없다’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평균적으로 20만명의 국민이 한 사람의 국회의원을 탄생시킨다. 20만명을 대표하는 사람이 그에 대한 자부심도 없이 특정 계파에 들어가서 그 하수인으로 전락한다면 민주주의의 미래는 없다. 한나라당에는 친박·친이의 계파가 있어서 자기 계파원끼리만 잘 챙기고 계파 우두머리의 눈치는 잘 본다. 상대 계파도 의식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계파가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경우에 없이 행동하는 의원도 있었다. 내가 6선인데…. 그러면 계파 안에서 점수를 따는가 보더라. 창피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에 역행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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