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로는 통하는데 ‘지상파’로는 통하지 않는 것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08.30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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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 위드 더 스타> 시행착오에서 엿보는 포맷 수입 프로그램 현주소

▲ ⓒMBC 제공

<댄싱 위드 더 스타>는 10%대 초반의 아쉬운 시청률로 시즌1을 끝냈다. 애초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 시간대를 프라임타임으로 만들어놓은 <위대한 탄생>의 후광이 편성에 적용된 데다, 프로그램 포맷이 너무나 유명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의 원조는 영국 BBC의 <스트릭틀리 컴 댄싱(Strictly Come Dancing)>으로 미국 <Dancing with the Stars>, 독일 <Let’s Dance>, 이탈리아 <Ballando con le Stelle>, 프랑스 <Danse avec les stars> 등 세계 39개국에 그 포맷을 수출하고 있다. 그만큼 검증된 프로그램이라는 뜻이다.

검증된 해외 포맷 수입 프로그램들은 케이블TV 채널에서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 적이 있다. <프로젝트 런웨이 KOREA> <도전! 수퍼모델 KOREA> <러브스위치> <트라이앵글> <순위 정하는 여자> <코리아 갓 탤런트> <탑기어 코리아>. 이 프로그램들은 모두 일정한 로열티를 지불하고 해외 프로그램의 포맷을 가져와 만든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이다. 이들 중 몇몇 프로그램은 몇 차례 시즌을 거치며 시청자들로부터 ‘도수코’니 ‘프런코’니 하는 약칭을 얻을 정도로 충분한 존재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케이블 채널 포맷 수입 프로그램의 존재감과 비교해볼 때 MBC의 <댄싱 위드 더 스타>는 너무 소소한 느낌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물론 지상파도 해외 포맷을 가져와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케이블만큼은 아니다. 이것은 지상파와 케이블의 사정이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케이블의 자체 제작은 최근 들어 많이 늘어났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그 비중이 상당히 낮았다. 하지만 tvN 등의 케이블이 자체 제작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자체 제작 비율이 높아졌고, 시청자 역시 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어느 정도 검증된 해외 포맷을 들여오는 데 케이블이 좀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해외 포맷을 가져와 만든 프로그램이 성공할 확률에서 지상파보다는 케이블이 유리하다는 점도 있다. 케이블은 성격상 어느 정도 마니아층을 겨냥한다. 그만큼 보편성보다는 차별적인 점, 즉 특수성이 용인되는 프로그램이다. 해외 포맷을 가져올 경우에 그 이질적인 분위기는 지상파로서는 어딘지 보편성이 부족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댄싱 위드 더 스타>는 영국에서 포맷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에게 직접 적용되었을 경우 여러 가지 문화적인 간극을 만들어낸다. 댄스스포츠에 대한 대중의 인식 차이 때문이다. 영국은 파티 문화 속에서 춤에 대해 그만큼 자연스럽지만, 우리는 정서적으로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변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매뉴얼이 가진 이중적인 성격에서 비롯된다. 사실 포맷 수입의 핵심은 바로 이 매뉴얼이다.

이 방송 프로그램의 룰이자 툴인 매뉴얼 속에는 구체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상황에 대한 대처 방식이 들어가 있다. 제작 노하우를 룰북에 담은 것이다. 하지만 이 매뉴얼이 ‘바이블’이라고까지 불리는 것은 거꾸로 그만큼의 완고함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댄싱 위드 더 스타>를 연출한 임연상 PD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초기에 전체 춤의 레퍼토리를 정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진통이 있었다고 한다. 조금만 매뉴얼 바깥으로 나가려고 해도 절대 허용하지 않는 BBC측의 고집 때문에 힘겨웠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리를 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한국적인 요소를 끼워 넣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해외 포맷을 수입해 만들어본 경험이 일천한 상황에서는 이것도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댄싱 위드 더 스타>는 시즌1을 통해 이 시행착오를 제대로 겪은 셈이다. 임연상 PD는 “시즌1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이것이 시즌2에서는 어떤 결실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즌2에서 좀 더 한국적인 상황을 반영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임연상 PD는 의외의 대답을 한다. 그는 “시즌2는 오히려 원작에 충실한 프로그램을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매뉴얼이 그만큼 정확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저런 변화를 무리를 해서라도 시도해보았지만 그다지 효과도 없었고, 점점 진행될수록 BBC측이 왜 매뉴얼대로의 진행을 고집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하우는 역시 노하우인 셈이다.

이다지도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어려운데 왜 자체 제작을 하지 않고 굳이 해외 포맷을 사와서 만드는 것일까. 단지 좀 더 쉽게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굳이 돈까지 써가면서 해외 포맷을 사와 한국 상황에 맞춰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만드는 것이 편의주의적인 발상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방송사의 또 다른 계산이 들어가 있다. 해외 포맷을 굳이 사오는 것은 물론 그것이 방송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향후 콘텐츠 수출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매뉴얼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매뉴얼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매뉴얼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매뉴얼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댄싱 위드 더 스타>는 방송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만, 매뉴얼을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

제작 노하우 배울 수 있지만 매뉴얼의 완고함이 한계로 작용할 수도

많은 이들이 향후 방송이 나가야 할 길로서 콘텐츠 매뉴얼 사업은 핵심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콘텐츠를 매뉴얼화해 수출하는 등의 다각적인 사업화가 필요하지만 이것을 백업해주는 인력이 부족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임연상 PD는 “지금 <나는 가수다>의 해외 판권 수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매뉴얼 작업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해외 판권 수출은 단순히 방송 제작을 허용하는 수준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수익 분배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나는 가수다>를 일본 시장에 수익 분배 형태로 수출한다고 생각해보라. 그 엄청난 음원 수익을 분배받을 수 있다면.

포맷 수입 프로그램이 가진 명과 암은 분명하다. 노하우가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적고, 또 그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다. 하지만 노하우가 적용되는 과정에서 매뉴얼의 완고함이 오히려 프로그램의 한계를 만든다는 단점도 있다. 중요한 것은 포맷 수입 프로그램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미래의 그림일 것이다. 앞으로 방송의 미래는 어쩌면 바로 이 콘텐츠 매뉴얼에 있을지도 모른다.  


ⓒtvN 제공

<코리아 갓 탤런트>는 세계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인 <갓 탤런트>의 한국 버전이다. tvN에서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케이블에 방영되었던 여타의 포맷 수입 프로그램과 비교했을 때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물론 4%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여타의 포맷 수입 프로그램과 달리 대규모의 투자를 감행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효과는 낮은 편이다. 즉, 포맷 수입 프로그램은 ‘틈새’는 되어도 어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킬 만큼의 파장은 만들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따라서 케이블TV에서 해외 포맷을 수입해 프로그램을 제작할 경우, 그 손익 계산을 제대로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성과의 최대치가 나올 수 있을 만큼의 적절한 제작비 투입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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