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싼샤 댐이 방류하는 ‘교훈’
  • 모종혁│중국 충칭 통신원 ()
  • 승인 2011.08.3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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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예방·전력 생산 등 경제적 혜택 얻는 데는 성공…환경 파괴·생태계 변화에는 ‘속수무책’

햇볕은 쨍쨍한데 시야가 또렷하지 않다. 지난 8월 중순 세계 최대 댐인 싼샤(三峽) 댐으로 가는 길은 줄곧 짙은 안개에 덮여 있었다. 후베이(湖北) 성 서쪽 끝 이창(宜昌)은 싼샤 댐의 혜택을 받은 도시이다. 인구 1백60여 만명 중 적지 않은 수가 댐과 양쯔 강(長江·창강)을 유람하기 위해 몰려오는 관광객에 기대어 살아간다. 이창에서 꿈의 직장으로 꼽히는 회사도 싼샤 댐을 관리하는 창강싼샤그룹이다. 창강싼샤그룹이 해마다 내는 세금은 이창시 정부 재정 수입의 4분의 1에 가깝다.

싼샤 댐은 이창에서 30여 ㎞ 떨어져 있다. 잘 닦인 고속도로를 30여 분 달려서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는 댐 입구에 도착했다. 검문소와 초소를 지나니 싼샤 댐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을 가르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높이 48m, 폭 9백m에 달한다지만, 높이 1백85m, 길이 2천3백9m인 싼샤 댐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나 다름없다. 만리장성 이후 2천3백년 만에 이루어진 중국 최대의 역사(役事)라고 뽐낼 만큼 엄청난 규모이다.

▲ 중국 양쯔 강을 막은 싼샤 댐이 기념 공원 너머로 보인다. ⓒ모종혁 제공

‘인류 최대 인공 구조물’ 찾는 관광객 ‘밀물’

지난해 싼샤 댐을 찾은 관광객 수는 1백50만명. 불편한 교통편을 고려한다면 적지 않은 숫자이다. 올해만 해도 8월 초에 이미 100만명을 넘어서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3만명이나 늘어났다. 푸젠(福建) 성에서 온 량톄청 씨(41)는 12명의 직장 동료들과 함께 먼 길을 달려왔다. 량 씨는 “인류 최대 인공 구조물이라는 싼샤 댐은 중국의 자랑거리이다”라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첫 중국 방문길에 싼샤 댐을 찾은 미국인 캐서린 씨(여)도 “댐 건설에 따른 논란이 분분하지만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라 여겨져 일부러 찾았다”라고 말했다.

2009년 모든 공정이 완공되었다는 언론 보도와 달리 싼샤 댐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1994년 12월 시공해 1998년 댐 축조에 들어간 싼샤 댐의 공사비는 가히 천문학적 수준이다. 본래 중국 정부는 착공 전 1백8억 달러를 산정했었다. 하지만 2010년까지 투입된 공사비는 3백12억 달러. 이것도 2005년보다 100억 달러가 늘어난 액수이다. 소양강댐의 15배에 달하는 3백93억㎥의 저수 용량과 초당 10만2천5백㎥의 방류량은 세계 최대 규모이다. 우리나라 전체 전력 생산의 30%에 달하는 1천8백20만㎾의 설비 용량도 기록적이다.

양쯔 강 상류에 대형 댐을 건설하는 사업은 중국 지도자들의 오랜 꿈이었다. 양쯔 강은 중국 문명을 꽃피운 젖줄이었지만, 홍수라는 무시무시한 재앙을 가져다주었다. 지난 2천년 동안 10년 단위로 2백번 이상의 큰 홍수가 일어나 양쯔 강 주변 주민과 마을을 덮쳤다. 홍수는 왕조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였기에, 치수는 국가 주요 정책 중 으뜸이었다. 양쯔 강에 댐을 건설하려는 구상을 처음 선보인 이는 중국 혁명의 아버지인 쑨원(孫文)이었다. 쑨원에 이은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는 1932년 싼샤 지역을 측량해 댐을 건설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사를 벌였다.

국민당을 몰아내고 대륙의 패권을 잡은 중국 공산당도 댐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다. 1954년 20세기 최대의 홍수가 양쯔 강을 휩쓸어 수십만 명이 죽고 1천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에 마오쩌둥(毛澤東)은 1956년 댐 건설을 결정하고 양쯔 강을 직접 시찰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열악한 토목 기술에다 건설 재원 확보가 어려워 당장 대형 댐을 건설하기 힘들었다. 오랫동안 묻혀 있던 댐 구상안은 1980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충칭(重慶)에서 싼샤 댐이 들어선 싼떠우핑(三斗坪)까지 순례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계획안이 수립된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 사회에서는 싼샤 댐 건설 문제로 치열한 내부 논쟁이 벌어졌다. 수많은 전문가와 지식인이 대형 댐 건설이 가져올 재앙을 우려해 격렬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싼샤 댐 건설안에 대해서는 1992년 4월 전국인민대표회의(全人大)에서 투표 참가자 2천6백8명 가운데 1천7백67명만이 찬성했다. 33%인 8백41명이 반대하거나 기권했는데, 전인대 역사상 가장 많은 반대표와 기권표가 나온 결과였다.

▲ 싼샤에서 최고 절경으로 꼽히는 우샤를 지나가는 유람선. ⓒ모종혁 제공

▲ 우샤의 일부분인 선눙시에서는 뱃사공이 직접 노를 젓는 목선들이 관광객을 실어나른다. ⓒ모종혁 제공

싼샤 댐의 첫 희생양은 수몰지 주민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싼샤 댐 건설로 고향을 떠난 수몰 이주민은 1백40만명이다. 앞으로 10년간 추가 이주 계획에 따라 30만명이 더 소개될 예정이다. 싼샤 댐 완공 후 강 만수위가 1백75m로 올라가면서 수백 곳의 마을이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중국 정부는 수몰지 주민 대부분을 새로이 건설된 고지대 신도시로 이사시키거나, 일부는 수천 ㎞ 떨어진 연해 지방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싼샤 댐 방문 후 찾은 바둥(巴東) 현도 그 신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가파른 산에 기대어 조성된 바둥 현청은 아담하면서 잘 정돈되어 있었다.

양쯔 강을 오가는 많은 유람선은 바둥에 잠시 정선한다. 승선한 관광객들을 천연의 절경 중 하나인 선눙시(神農溪)로 인도하기 위해서다. 선눙시는 싼샤에서 최고 절경으로 꼽히는 우샤(巫峽)의 일부분이다. 본래 싼샤는 양쯔 강 상류의 3대 협곡인 시링샤(西陵峽)·우샤·취탕샤(瞿唐峽)를 일컫는다. 이창에서 충칭 시 펑제(奉節) 현의 백제 성에 이르는 1백92㎞ 구간이다. 우샤에는 석회암이 많은데, 양쯔 강 물에 의해 자연적으로 깎여진 암벽이 많아 특색 있는 장관을 연출한다.

선눙시의 일부 구간에서 관광객들은 뱃사공이 직접 노를 젓는 목선을 타고 유람에 나선다. 20여 척의 목선이 항시 대기하고 있는데, 수몰지 주민들이 조금씩 출자해 마련한 것이다. 보통 배 한 척당 네 명의 뱃사공이 일한다. 그들은 목선의 주주이자 노동자이다. 뱃사공으로 일하는 장궈칭 씨(41)는 “관광객들을 타워서 40분가량 노를 저어 구경시켜주고 받는 노임은 30위안(약 5천원)이다. 성수기에는 하루에 세 번, 비수기에는 한 번 정도 일할 수 있어 벌이가 시원치 않다”라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뱃사공들은 때로는 다른 배와 경주하고 구성진 민요도 불러주는 등 관광객을 즐겁게 해주려고 애를 썼다. 노고를 치하한 일부 관광객이 팁을 주고 가기 때문이다. 가이드인 양징메이 씨(여)는 “과거 농사를 짓던 수몰인 대부분은 신도시 이주 후 별다른 할 일이 없이 지낸다. 관광업이 유일한 수입원이라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밝혔다. 가이드들도 동정심을 유발하며 각종 상품을 직접 판매하는 것이 특이했다.

▲ 비가 온 뒤에는 어김없이 싼샤 댐으로 쓰레기가 떠내려온다. ⓒ모종혁 제공

▲ 양쯔 강변에 들어선 석유화학공장. ⓒ모종혁 제공

강물 썩고 산사태 빈발…부유물도 골칫거리

수몰 주민 정착은 앞으로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신도시로 이주한 절반 이상의 주민이 반실업 상태이거나 최저 생계비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거대한 저수지로 변한 양쯔 강 상류는 수압이 심해 끊임없는 지진이 발생하고 있고 강변 지반이 약화되었다. 오랫동안 이런 사실을 인정치 않던 중국 정부조차 지난해 6월 “5천3백86곳이 산사태 위험 등에 노출되고 그중 97곳은 붕괴되었다”라고 발표했다. 실제 2007년 4월 충칭 시 윈양(雲陽) 현 가오양(高陽) 진에서는 산사태로 35명이 사망했다.

해가 갈수록 강물이 썩어가고 예상치 못한 기후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큰 골칫거리이다. 싼샤 댐 상류에는 인구 3천2백만명의 공업도시 충칭 시가 자리 잡고 있다. 충칭에서 나오는 생활 쓰레기는 한 해 약 3백만t에 달한다. 여기에 양쯔 강 상류의 전체 도시에서 버려지는 공업 폐기물도 약 1천5백만t으로 추산된다. 싼샤 댐 주변을 비롯해 양쯔 강에서는 온갖 쓰레기의 부유물이 떠다닌다. 댐 건설 전 양쯔 강은 물살이 빨라 강물 자체가 자연 정화를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유속의 흐름이 거의 없어 정화 기능이 상실되었다.

무려 1천84㎢에 달하는 저수지에서 발생하는 수증기에 의해 생기는 기후 변화는 점차 정설로 굳혀지고 있다. 싼샤 댐을 끼고 있는 이창 시에서는 사시사철 심각한 안개가 발생하고 기온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다. 댐 상류에 있는 충칭 시에서는 지난 수년간 게릴라성 폭우와 40℃를 넘는 무더위가 반복되고 있다. 지난 7월 중국기상국 기상센터는 “댐 주변 일부 지역에서 기후 변화 현상이 국지적으로 나타났다”라고 발표했다. 제한적이지만 중국 정부가 싼샤 댐 일대의 기후 변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홍수 예방, 전력 생산, 수운 개선 등 싼샤 댐이 가져다준 경제적 이익과 혜택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우려했던 생태계 변화와 환경 파괴 예측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지난 5월 “싼샤 댐이 긍정적 효과는 있었지만 환경 파괴, 지질 재해, 이주민 등 많은 문제를 양산했다”라고 인정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굴원, 이백, 두보, 백거이 등 수많은 문인이 싼샤를 찾아 찬미한 것은 깎아지른 듯한 협곡과 하늘까지 치솟은 험준한 산세가 드러내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인간은 자연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통제하기는 어렵다. 세계 최대 단일 토목 공사인 싼샤 댐은 그 진리를 다시금 증명하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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