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행’이 일본 기업 돌파구 될까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1.08.30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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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불황에 엔고 겹쳐 국제 경쟁력 약화…전력비·노동력 절감 등 이유로 ‘이전’ 검토하는 사례 늘어

일본의 엔화 가치가 치솟고 있다. 지난 8월1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76.29엔까지 올랐다. 그동안 심리적 마지노선이라고 불리던 달러당 80엔이 무너진 지는 이미 오래전이다. ‘미스터 엔’이라고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가쿠인 대학 교수는 60엔까지도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엔화 가치가 1엔이 오르는 경우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 메이커인 도요타와 혼다의 영업이익은 각각 3백억 엔, 1백70억 엔이 줄어든다. 기업들은 그동안 경영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수익성을 추구해왔으나 슈퍼 엔고로 인해 다시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엔 캐리도 슈퍼 엔고에 일조했다. 기업들은 장기 불황과 엔고로 지칠 대로 지쳐 있다. 국제 경쟁력은 날로 약화되고 있다.

전력 공급도 문제이다. 지난 3월11일의 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으로 전기가 부족한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고베 지진이 일어났을 때에는 일주일 만에 복구했으나 후쿠시마 원전의 경우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 기업들은 전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없다. 나날이 치솟는 엔화, 전력 제한 공급, 장기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부족 등의 문제로 일본 기업들의 채산성은 크게 악화되고 있다. 따라서 지속 성장을 위한 대책의 일환으로 생산 시설을 해외로 옮기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반도체·디스플레이·가전·조선·철강 등의 분야에서 유사한 산업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으로의 진출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향상되었다는 점도 이전을 검토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또 한국은 일본에 앞서 유럽연합(EU)과 같은 큰 시장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어 한국을 통해서 EU 및 해외 시장을 공략하려는 의도로 한국에 생산 거점을 이전하고자 하는 기업들도 있다. 일본 기업들은 예전에는 한국 시장을 단순히 물건을 공급하는 곳 정도로 간주했으나 이제는 부품·소재의 생산 기지로서 검토하고 있다.

도레 탄소섬유 공장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지난 6월28일 경북 구미시에서 탄소섬유 공장의 기공식이 있었다. 사업비 6백30억원에 연간 생산 능력 2천2백t이다. 한국의 탄소섬유 시장 규모가 8천t임을 감안하면 도레의 생산 규모는 전체의 4분의 1이 넘는다. 도레 담당자는 도레가 한국에서 생산 공장을 설립하는 데는 전력비와 노동력이 일본에 비해 싸다는 점과 법인세와 FTA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이유만이 아니라 한국 기업과의 경쟁과 상생을 통해서 한국 시장의 점유율을 더욱 높이고 나아가 국제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지난 6월20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프트뱅크의 미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메이드 인 코리아’로 가격 경쟁력 높일 수도

한·일 간 경쟁과 상생에서 또 하나의 좋은 예가 우베코산 주식회사이다. 디스플레이 기반에 사용되고 있는 폴리마이드를 한국에서 생산하기 위해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 합작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를 통해서 자신의 재료를 판매하고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다. 일본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한국으로 이전하고자 하는 이유는 △법인세나 전기 요금이 유리하다 △일본은 전력 공급 사정이 좋지 않다 △엔화 가치가 치솟고 있다 등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만으로는 한국 진출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JETRO(일본무역진흥기구) 서울사무소 오오스나 소장의 말이다. 상생 모델이 되고 ‘메이드 인 코리아’로 EU와 같은 큰 시장을 공략할 때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한국에 거점을 확보하려고 검토하는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이다. 윈윈 전략을 통해 양국 경제 및 기업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모델이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게 되면 한국 진출 및 생산 기지 이전을 검토하는 일본 기업들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현재 한·일 간 무역 총액은 약 7.96조 엔에 달한다. 한국은 반도체, 평면 디스플레이 등의 주력 수출품을 생산하는 중간재인 부품·소재와 제조 설비를 일본에서 조달하고 있다.

한편 지난해 일본의 한국에 대한 직접 투자는 20.9억 달러 규모였다. 일본 도요게이자이신보 사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 기업에 고용된 종업원은 7만명 이상이다. 진출 기업은 제조업뿐만이 아니다. 화장품·외식 체인 사업 분야 등에 진출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일본 기업이 한국에 진출하는 데에 문제점도 있다. 한국에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하고 있는 일본의 인터프라이즈 카츠키 요시츠구 씨는 한국 기업의 문제점으로 “계속성이 없다. 예약한 것을 지키지 않는다. 상 관습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카츠키 씨는 “일본 기업들이 한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고 투자를 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대지진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앞으로도 계속될 일로 보고 있다”라고 했다. 일본 시장이 축소되고 있기에 일본 기업들은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으며 지리적 조건, 기술력, 숙련도로 보아 한국은 아주 적합한 국가라고 생각하는 일본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장 규모로 보면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비해 작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인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 그동안 일본의 자동차·가전 메이커를 비롯한 많은 기업이 한국 부품을 사용한 결과 지금과 같은 엔고 상황에서 그 혜택을 크게 보고 있다는 점도 한국 진출 및 한국 기업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때문에 한국으로서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일본 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특히 대일 적자의 원인이 되고 있는 부품·소재 기업의 생산 기지를 한국에 유치하는 일은 기술 고도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이다. 한국에 진출해 있거나 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의 반응에서 보듯이 한·일 기업 간의 상생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비즈니스에서 신뢰를 쌓는 일은 그 어느 투자 유치 조건보다 중요하다.


ⓒ임수택 제공
일본 이시가와 현 가나자와 시 출신인 오오스나 JETRO 서울 소장은 와세다 대학 문학부와 같은 대학 공공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979년 JETRO에 입사해 싱가포르센터 차장, JETRO 아시아경제연구소 국제교류 연수실장을 거쳐 지난 3월 여성 최초로 JETRO 서울사무소장에 취임했다. 그는 “한국은 처음이지만 한국 음식, 생활 습관 등에 위화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라며 한국 생활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요즘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한국어를 ‘열공’하고 있다. 등산을 좋아해 주말에는 한국 지인들과 북한산, 인왕산을 오르며 서울 시내에 등산할 수 있는 산이 있다는 것을 부러워했다.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히 살려 앞으로 한국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다방면에 관심을 보이는 열성파이다.

3·11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본 기업들은 어느 정도의  피해를 보았는가?

지난 5월에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 제조업 5백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24.8%가 일본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테이코쿠 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일본 대지진 관련 도산은 7월 말 시점으로 2백58건이다. 부채 총액은 1천2백97억4천4백만 엔으로 1995년 한신 대지진 때의 연간 6백억7천4백만 엔의 두 배가 넘는 규모이다. 대지진 이후 서프라인 체인이 두절되어 세계 제조업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등 동북부 각지의 첨단 부품 소재 제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큰 규모의 제조업을 하는 회사의 경우 모기업에서 동북부 지역에 있는 공장이나 관련 회사에 사람, 기계, 자금을 제공하고 서프라인 체인을 복구하는 데 최선의 지원을 한 결과 빠른 속도로 복구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일본이 직면하고 있는 시장의 포화 상태, 엔고, 원전 사고와 같은 문제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전력 부족, 인프라 등도 회복되지 않아 일본 경제의 먹구름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원전 재점검으로 한여름에 일본 전체에 전력이 부족한 상태이다.

일본 기업들이 생산 기지를 해외로 옮기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데?

JETRO 서울사무소에서는 8월 초 ‘지진 이후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움직임’에 대해 긴급 조사를 실시했다. 대지진 영향으로 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은 거의 없다. 그러나 해외 생산 거점의 하나로 한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 메이커는 있다. 현재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기업은 오래전부터 검토하고 있었다. 한국의 경우 EU 등과의 FTA 루트의 활용, 낮은 법인세, 낮은 원화 가격, 낮은 전력 및 인건비 등이 매력적이다. 한국에 진출하고 있는 일본 기업의 예를 들면, 5월27일 야마구치 현에 있는 우베코산이 사는 아산시에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 폴리마이드를 생산하는 법인을 설립했다.

6월28일 도레가 경북 구미시에 탄소섬유 공장을 착공해 향후 10년간 1조3천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며 8월5일에는 JX닛코닛세키에너지가 SK이노베이션과 함께 울산광역시에 1천2백억 엔을 투자해 석유화학 제품 및 윤활유를 생산할 예정이다. 또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지진 이후 서프라인 체인의 불안을 해소하는 일환으로 일본의 부품 공급사에게 제조 거점을 한국에 두었으면 하고 바라는 움직임도 있다. 한국에 진출하는 일본 기업은 제조업이 많지만 최근에는 레스토랑 체인, 운수, 인재 알선 등 다양하다.

최근 한국 지자체에서 관심이 많은데 일본 기업들의 반응은?

일본의 큰 제조회사 간부의 말에 따르면 일본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는 것은 지진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한국 대기업과의 비즈니스를 확대하는 것이 주 목적이다. 한국 기업들의 빠른 대응, 가깝기 때문에 공급의 서프라인 체인과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로컬 서프라인 체인으로부터 수요가 클 것이라는 기대 등이다. 수요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전을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인프라, 세제, 전력 공급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으면 한다.

한·일 간의 산업 구조가 경쟁적인 면도 있지만 상호 협력으로 세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모델도 있을 것 같은데?

몇 가지 예가 있다. 미쓰이물산과 대우건설이 몽골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수주(약 1천억 엔), 스미토모상사와 한국전력이 아부다비 발전 사업 참가(약 15억 달러), 미쓰비시상사와 한국가스공사가 인도네시아에 LNG 제조 판매를 착수한 것(약 2천3백억 달러) 등이다. 일본의 자금력과 한국의 해외 경영 전략이 하나가 된다면 좋은 상생 모델이 될 것이다. 한·일 기업이 협력해서 투자한 금액은 플랜트, 인프라, 자원 개발로 약 1조7천5백억 엔 정도이며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JETRO의 RIT(지역 간 교류 사업)란 무엇인가.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는?

1998년 시작한 일본과 해외 지역 간의 경제 교류 사업이다. 예를 들면 후쿠시마와 원주 간의 의료기기 교류 사업이 있는데, 대지진 이후에도 원주시는 후쿠시마와 계속 교류를 원하고 있다. 또 오이타와 충북 오창은 반도체 산업에서 협력하고 키타큐슈는 창원과 기계 산업에서 협력하고 있다. 중소기업 간의 기술 교류 계약도 진행되고 있다. JETRO는 한·일 간에 ‘하나의 경제권’을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다.

한·일 기업 각각의 장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일본 기업은 자금력과 인재, 경험이 있다. 한국은 오너십과 빠른 의사 결정, 도전 의식이 넘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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