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공 날씨’가 산업 기상도 바꾼다
  • 노진섭·이석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1.08.3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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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정보를 경영에 도입한 회사들 매출 ‘쑥쑥’…서비스·유통업계 등에서 ‘날씨 경영’ 급속 확대

올여름은 여름답지 않다고 한다. 불볕더위는 온데간데없고 요즘은 선선한 기운마저 감돈다. 지난해와 올해는 기후를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했다. 여름철 특수를 노렸던 기업들은 내년을 기대하는 분위기이다. 해수욕장은 조기에 폐장했고, 물놀이 제품 생산업체와 빙과류 업체도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가전업계, 자동차업계도 예년만큼 큰 매출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날씨는 연일 울상이지만 웃는 기업이 있다. 바로 날씨를 읽고 돈을 버는 방법을 터득한 회사들이다.

ⓒhoneypapa@naver.com

폭우·장마 속에 차수막·송이버섯 ‘대박’

지난 7월28일 주요 간선도로가 통제될 정도로 서울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산사태가 나고 한강 수위가 높아졌다. 자동차가 떠다닐 정도로 서울 도심에 물난리가 났다. 각 빌딩 주차장도 물바다가 되었다. 도로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통로는 빗물과 역류한 하수가 모이기 좋은 조건이었다. 특히 강남역 주변은 지대가 낮아 대규모 빌딩들의 침수 피해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일부 빌딩은 멀쩡했다. 이른바 ‘차수막’을 설치한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이 차수막을 만든 회사가 DMC코리아이다. 이 회사는 대형 엘리베이터 등 물류 기계를 주문·제작하는 업체이다. 날씨 탓에 물류 기계 주문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업체는 오히려 매출이 늘어났다. 조성일 대표는 “차수막은 소형 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단순 빗물이 아니라 역류한 하수이므로 일반 금속은 쉽게 녹이 슨다. 소금기에 강한 스테인레스로 만든 철문을 주차장 입구에 세워 물길을 막는 것이다. 평소에는 위로 올리거나 아래로 내려 두었다가 홍수 시기에 리모콘만 조작하면 차수막이 설치되어 물의 유입을 막을 수 있다. 이 장치는 100~2백mm 두께에 무게가 4~5t이어서 유압기가 필요한데, 유압기를 취급하는 우리 회사가 2004년부터 기업들의 의뢰를 받아 차수막을 만들었다. 6m당 5천만원 정도로 비싸지만 몇 년 전부터 홍수로 피해를 보던 기업들이 하나 둘 주문해오고 있다. 올해는 차수막 견적 문의가 급증했다”라고 설명했다.

날씨가 습하고 기온이 낮아 농민들은 한숨이 나온다.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날씨에도 잘 자라는 농작물이 송이버섯이다. 농작물을 백화점이나 할인점에 납품하는 해송KNS는 송이버섯 덕에 매출이 크게 늘어났다. 2년 전만 해도 1억원을 겨우 넘겼던 연매출이 지난해 50억원까지 급증했고 올해도 비슷한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이미옥 대표는 “지난해는 50년 만에 송이버섯 대풍이었다.

일등 공신은 좋지 않은 날씨였다. 송이는 재배가 되지 않아 산에서 자란 것을 따는데, 19℃ 정도 저온이면서 비가 수시로 내려야 잘 자란다. 또 태풍이 온다는데 태풍이 오면 산에 송이버섯 포자를 흔들어놓아 더 잘 자란다. 지난해와 올해 이런 날씨가 이어져서 송이버섯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올해도 많이 덥지만 않으면 9월 중순에는 송이버섯 출하량이 늘어날 것 같다. 다만 추석이 예년보다 한 달 정도 빠른 탓에 국내산 송이버섯은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내산 송이버섯은 추석 이후 9월 중순부터 맛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골프장 잔디 관리도 효율적으로

삼성에버랜드는 날씨 정보를 경영에 도입해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이 회사는 안양베네스트골프클럽 등 다섯 개의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다. 필드에 사용하는 농약과 화학비료의 양을 줄이기 위해 그동안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미생물과 같은 친환경 제품을 사용해보았지만 허사였다. 최근 계속되는 이상 기후도 회사측을 곤혹스럽게 했다. 갑작스런 날씨 변화로 잔디밭의 건조와 과습 피해가 반복되면서 관리 비용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내부 회의를 통해 대대적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우선 잔디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골프장용 AWS로 장비를 교체했다.

민간 날씨 정보 제공업체인 케이웨더와 함께 TWS(잔디 관리 예보 시스템)도 최근 개발했다. 기상 자료를 토대로 잔디 관리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3~4단계로 나누어 제공하는 것이 이 시스템의 특징이다. 이로 인해 비료와 농약을 투입하는 시기뿐 아니라 양까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골프장에서 가장 심각한 병해가 라지패치이다. TWS는 라지패치의 발생 예보를 건조·조심·주의·위험 등 4단계로 제공하면서 맞춤형 대응이 가능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올 상반기(1~5월) 기준으로 농약 살포 횟수가 29.4%나 감소했다. 다섯 개 골프장의 농약 살포 비용 역시 지난해에 비해 1억원이 감소했다. 1년간 운영할 경우 최소 3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었다. 농약 살포 횟수가 줄어들면서 골프장 안의 연못 수질도 전년에 비해 24%나 개선되었다. 회사 관계자는 “TWS를 전국 3백69개 골프장에 설치할 경우 1백85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농약 살포나 잔디 교체에 따른 인건비 등을 감안하면 경제적 효과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전망했다.

삼성에버랜드와 케이웨더는 현재 TWS의 특허 출원을 준비 중이다. 이미 효과가 입증된 만큼 내년부터는 전국 골프장을 상대로 TWS를 시판할 예정이다. 김동식 케이웨더 대표는 “골프장의 단위 면적당 농약 사용량은 2003년 이후 꾸준히 감소하다가 2006년부터 다시 증가했다. 정체된 골프장 환경 개선을 위해 내년부터 컨설팅 대상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 지난 7월28일 집중 호우로 물이 불어나 한강변 일대 도로가 큰 혼잡을 겪었다. ⓒ시사저널 유장훈

기상보험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편의점 업체인 보광훼미리마트는 날씨 정보를 활용해 매출 상승 효과를 보았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편의점은 도심의 번화가나 오피스텔에 자리를 잡았다. 매출 자체가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공원 등 외곽으로 매장이 확대되면서 날씨가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떠올랐다. 비가 왔을 때 우산을 비치하지 않으면 매출을 올리기 어렵게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날씨가 맑을 경우 음료수나 맥주 등이 잘 팔리기 때문에 공급량을 늘릴 필요가 있었다.

훼미리마트는 이런 날씨 정보를 마케팅뿐 아니라 재고 관리에도 도입했다. 민간 날씨 정보 제공업체와 개발한 ‘POS(날씨 정보 이용 시스템)’를 올 3월부터 가동했다. 행정 구역 단위의 기상 데이터를 각 점포에 제공하면서 날씨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날의 날씨에 따라 상품 진열을 차별화했다. 유통 기한이 짧은 패스트푸드의 경우 날씨에 따라 발주량을 조절했다. 일례로 학교 운동회가 열리는 초등학교 인근의 점포에서는 김밥이나 도시락, 유제품 등을 집중적으로 발주한다. 하지만 우천으로 운동회가 취소될 경우도 예측해 과도 발주를 억제하는 식이다.

재고 비용도 크게 감소했다. 장마철에는 잘 팔리지 않는 도시락이나 김밥, 아이스크림, 음료 등의 발주량을 10~15% 줄인 탓에 재고 비용이 크게 감소했다. 회사 관계자는 “제공받은 날씨 정보를 바탕으로 주간 판매 전략을 세운다. 재고 비용뿐 아니라 폐기 물량이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전국 14개 판매센터의 재고 일수 또한 15일에서 7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이렇듯 기상 이변이 속출하면서 ‘산업 기상도’가 바뀌고 있다. 서비스나 유통뿐만이 아니라 건설, 조선 등의 산업으로 ‘날씨 경영’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SK건설이나 현대건설 등은 날씨에 따라 공사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나 STX조선 역시 선박 건조 과정에서 기상 정보를 활용한다. STX조선의 경우 관련 기술을 상당 부분 확보하기도 했다. 전병성 전 기상청장은 “기상 정보는 일반의 생활뿐 아니라 기업 활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를 활용하는 기상 경영 전략 역시 필수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상보험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폭우 등 기상 재해로 인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소방방재청의 자료에 따르면 기상 재해 피해액은 2007년 2백51억원에서 2010년 4천2백68억원으로 늘어났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51%가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는 조사 결과도 발표되었다. 하지만 정부 예산만으로 보상을 커버하기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상보험을 통해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를 만회하자는 것이다. 정천재 삼성방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홍수보험 가입자가 80%에 이른다. 관련 산업 확대 차원에서라도 기상보험을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날씨 산업’ 선진국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선진국에서는 이미 기상 정보가 산업의 주요한 축이 되고 있다. 미국의 월가 애널리스트들이 기상 정보를 구하기 위해 나설 정도이다. 국내에는 10여 개밖에 없는 민간 기상 정보 제공업체가 선진국에서는 수백 개 이상 운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관련 산업도 활성화되어 있다. 프랑스 여행업계의 경우 날씨 때문에 휴가를 망치는 일이 없도록 ‘햇볕보험’을 출시하고 있다. 갑작스런 날씨 변화로 휴가지에서 고생할 경우 여행 경비의 일부를 돌려받는 상품이다. 일본 의류업체인 유니클로는 기상 예보를 활용해 생산량을 조절한다. 또 날씨에 따라 옷의 진열을 수시로 바꿔 매출을 늘리고 있다.

영토가 넓은 미국에서는 날씨 산업이 잘 발달되어 있다. 미국 내 2천3백여 점포를 보유한 K마트는 지역 상권의 기상이나 인구 특성 정보를 미리 확보하고 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계절이나 기상 변화에 맞는 제품을 배송하면서 재고량을 18%가량 줄였다. 갑작스런 수요 증가에 따른 배송 물량 부족 현상 역시 없앨 수 있었다고 한다. 도드니 바이어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전 경제수석은 “허리케인이나 폭염과 같은 위험 기상 예보를 통해 얻는 경제 가치는 연간 30억 달러에 달한다. 예보는 생명을 구할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모든 분야에 상당한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 기상 서비스의 가치를 매기는 초기 단계에 있다.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설문조사를 통해 기상 예보의 가치를 추산하고 기상 예보 서비스 수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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