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지금 박태규와 ‘통화 중’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1.08.31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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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파악된 부산저축은행 핵심 로비스트 박씨, “귀국할 생각없다” 버티는 중

ⓒ시사저널 이종현·유장훈

김준규 전 검찰총장은 검찰 내에서 ‘기획통’으로 분류되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수사 경험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김준규 체제에서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라는 비아냥이 꾸준히 있어왔고, 김 전 총장도 항상 여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래서 그 후임으로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과 차동민 서울고검장이 거론되었을 때 ‘수사통’인 차고검장을 높게 평가하는 내부 목소리가 많았다. 한상대 신임 검찰총장 역시 ‘기획통’으로 분류된다.

한상대 총장은 취임하자마자 자신의 특기를 십분 발휘했다. 부정부패와 종북(從北)·좌익 세력, 검찰 내부의 적 등 ‘3대 적과의 전쟁 선포’라는 기획안을 들고 나왔다. 일단 시선 끌기에는 성공했다. 그런 한편으로 수사력 약화에 대한 주변의 우려를 의식한 듯 ‘저축은행 비리’ 의혹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할 것을 강력하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위상을 회복해서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에 대한 사정을 강화해나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대통령까지 박태규 못 잡느냐며 질타

▲ 지난 8월12일 대검찰청 강당에서 열린 검찰총장 취임식에서 한상대 총장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축은행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몇 달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수사 초기만 해도 유력 정·관계 인사들이 연루된 ‘대형 게이트’로 커질 듯했다. 그러나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을 구속 기소하고, 청와대 정무비서관을 지낸 김해수 한국건설관리공사 사장을 불구속 기소한 것이 고작이었다.

검찰 수사가 이렇게 지지부진한 데는 무엇보다 부산저축은행의 핵심 로비스트인 박태규씨(위 작은 사진)를 잡지 못하고 있는 탓이 크다. 박씨는 지난 2월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한 후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자 4월 캐나다로 도피했다. 그는 정치권뿐 아니라 법조계와 언론계 등에 전방위적인 인맥을 구축한 거물 로비스트로 알려져 있다. 한 일간지 편집국장 출신 언론인은 “2년 전쯤, 박태규 회장의 전화를 받고 한 모임에 나갔는데 그곳에 유력 일간지 편집국장들이 죄다 모여 있었다. 당시 현 정부의 장관급 인사 두 명도 함께 있어서 놀라기도 했다. 모두 박회장이 부른 사람들이었다”라는 말로 그의 폭넓은 인맥을 짐작케 했다.

박씨는 부산저축은행 구명 로비의 핵심 열쇠를 쥐고 있다. 또한 지난해 부산저축은행이 유상 증자를 통해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으로부터 1천억원의 투자금을 끌어들이는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검찰은 뇌물 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양 부산저축은행 부회장으로부터 “박태규씨에게 17억원을 건넸고, 이 가운데 2억원은 돌려받았다”라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씨가 나머지 15억원을 정·관계 로비에 썼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지난 6월 말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검사협회 연례 총회에 참석한 브라이언 손더스 캐나다 연방 검찰총장에게 박씨의 조기 송환을 요청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8월2일 “캐나다로 도망한 로비스트 박태규를 왜 못 잡느냐, 내가 직접 나서야 하느냐”라며 검찰을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별동대 꾸려 박씨 관련 정보 수집에 박차

이 때문인지 최근 검찰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박씨 추적에 부쩍 속도를 내고 있다. 실제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박씨가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는 박씨의 아들 자택에 머무르고 있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에 박씨의 아들 집으로 전화를 걸어 박씨와 직접 통화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른바 ‘검찰과 박태규의 핫라인’이 구축된 셈이다. 대검찰청 핵심 관계자는 “중수부에서 박씨에게 전화해 자진해서 귀국해 조사를 받으라고 계속 종용하고 있다. 하지만 박씨는 ‘귀국할 의사가 전혀 없다’라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기자에게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한상대 신임 검찰총장이 이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도 받기 전에 ‘박태규 관련 정보 수집팀’을 서둘러 꾸렸던 것도 사실은 박씨의 자진 귀국을 유도하기 위한 압박 조치라고 보면 된다”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8월11일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실에 소속된 베테랑 수사관 일곱 명으로 ‘박태규 별동대’를 구성했다. 박씨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을 찾아내 박씨가 자진해서 인천공항에 들어오도록 압박하겠다는 전술이다. 검찰은 박씨를 통해 ‘부산저축은행 로비 전모와 정·관계 리스트’에 대한 진술을 받아내는 대신 박태규 별동대를 통해 찾아낸 박씨의 ‘약점’은 덮어주겠다는 의도이다. 일종의 플리바게닝(유죄 협상죄)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한총장의 특명을 받은 별동대는 현재 일주일에 한 번씩 전체 회의를 갖고 있으며, 대검 중수부에 박씨 관련 정보나 첩보 등을 수시로 보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박씨가 자기 발로 검찰에 출두할 만한 결정적인 정보는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중수부는 부산저축은행 부실 사태 등을 무마하려고 여권과 금융기관 등에 구명 로비를 벌인 ‘여권 핵심 인사’에 대한 수사를 상당히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인사의 혐의를 확실히 입증하기 위해서는 박씨의 진술이 절대 필요하다. 검찰이 박씨에게 목을 매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라고 말했다.


 “작은 집회 정보까지 챙겨라”…발동 걸린 ‘공안 정국’

한상대 검찰총장은 8월12일 취임 일성으로 부정부패와 종북(從北)·좌익 세력, 검찰 내부의 적 등 3대 적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특히 종북·좌익 세력과의 전쟁 선포로 정치권이 크게 술렁이면서 “공안 정국을 조성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비난이 강하게 나왔다. 이후 단행된 검사장급 이상 고위 간부 인사에서도 52명 가운데 무려 21명을 ‘공안 출신’들로 채웠다(<시사저널> 제1140호, 2011년 8월23일자 참조).

공안 정국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총장은 최근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에 “공안 정보 수집을 강화하라”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에 검찰은 우선적으로 각종 집회에 대한 정보 수집에 나서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대형 집회 등에 대한 정보는 경찰의 협조를 받아서 수집해왔다. 그런데 앞으로는 대형 집회뿐 아니라 작은 집회에 대한 정보까지 검찰이 직접 수집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한총장의 공안 강화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8월25일에는 북한 225국과 연계된 간첩단 ‘왕재산’을 결성한 혐의로 김 아무개씨 등 5명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앞으로 공안 사건에 대한 검찰의 구형이 이전보다 더 세질 것이다”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공안 정국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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