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이겼지만 “전쟁에선 질 수 있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11.08.31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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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보편적 복지’ 방안·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등 ‘산 넘어 산’…보수층은 주민투표로 확실히 뭉쳐

▲ 지난 8월24일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서울시당 종합상황실에 들러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를 확인한 후 당직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민주당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승전고를 울렸지만, 서울 영등포 중앙당사의 분위기가 환호 일색만은 아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와 올해 4·27 재·보선에 이은 연승으로 민주당은 정국 주도권을 서서히 장악해나가는 분위기이다. 오세훈 시장이 사퇴한 이후 진행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여당을 물리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상당수 정치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마냥 좋아할 상황이 아니다. 전투에서 이겼지만 전쟁에서 질 수도 있다”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이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냉정하게 평가해서 앞으로 몰아칠 후폭풍에 대비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유리한 국면을 맞이했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여야가 치열하게 맞섰던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결국 투표함을 개봉하지도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이는 서울시민이 ‘투표 거부’ 운동을 펼친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제 복지가 시대의 흐름이고, 민생이 국민의 요구임이 확인되었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보편적 복지’와 ‘경제 민주화’라는 민주당의 양대 노선이 국민의 요구이고 시대의 흐름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앞길이 탄탄대로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이번 주민투표에서 나타난 ‘투표율 25.7%’의 표심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표 수만 따지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오세훈 시장이 획득한 2백8만6천여 표보다 7만3천여 표가 더 많다. 물론 이 중에는 무상급식 찬성표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초 민주당은 20% 미만의 투표율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이보다 5%포인트 이상 더 높은 수치로 나타났다.

정치컨설팅 전문회사인 이윈컴의 김능구 대표는 “어느 정도 결과(패배)가 예상된 투표임에도 참여했다는 것은 아주 적극적인 지지라고 볼 수 있다. 만약 25.7%가 반드시 투표한다고 가정하면 전체 투표율 60%에서 42% 정도를 차지한다. 한나라당의 핵심 지지층을 무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번 주민투표에서 확인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그동안 각종 선거에서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던 보수 세력이 결집에 나섰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논리를 지지층에 각인시키는 한편, 일반 대중에게도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주민투표 결과를 한나라당의 완패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이다.

민주당이 향후 ‘보편적 복지’를 어떻게 구체화할지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여당을 상대로 야 4당이 한목소리를 냈지만, 보편적 복지를 실현시키는 방법론에서는 시각차가 있다. 민주당 내에는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되 예산을 고려해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다른 진보 정당과는 물론 당내 계파 간에도 온도 차가 있다. 오는 12월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보편적 복지에 대한 ‘속도 조절’을 두고 내부 진통을 겪을 여지가 남은 셈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대한 부담도 크다. 물론 현재 상황은 민주당이 더 나아 보인다. 중간선거의 경우 여당이 불리한 것이 사실이고, 선거 자체를 한나라당에서 자초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민주당이 승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야권 단일 후보를 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오는 10월26일 치러질 선거 일정을 감안할 때 물리적인 시간이 촉박하다. 야권 연대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야권 연대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민주당이 일정 부분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선거 패배에 대한 위기의식이 줄어든 상황이 오히려 야권 연대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누가 나오는지도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국회의원이나 구청장의 경우 선거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반면, 수도권의 광역자치단체장 선거는 인물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유권자가 단순히 ‘정권 심판이냐, 정국 안정이냐’가 아니라 지도자로서 후보를 다각적으로 평가해 투표하는 경향이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결과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여당보다 후보군 협소해 불리하다는 분석도

▲ 8월24일 저녁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투표함이 종로구청 개표소로 옮겨져 정렬되어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이러한 측면에서 민주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후보군이 협소해 불리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의 경우 벌써부터 출마 선언이 이어지는 등 선거 열기는 다른 당에 비해 한 발짝 앞서 있다. 당내에서 거론되는 후보 수도 한나라당보다 적지 않다. 하지만 내부 경쟁이 치열한 만큼 외부 영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황인상 P&C정책개발원 대표는 “민주당의 경우 내부 카드가 많지만 이 때문에 교통정리가 어렵다. 외부 인사를 후보로 수용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대중성 있는 카드는 한나라당이 더 많이 갖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참신한 인사를 영입해 후보로 내세웠을 때 민주당에서 이에 대응할 마땅한 카드를 찾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이제 서울시장 선거는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시험이 되었다. 선거 패배에 대한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높지만, 그런 상황으로 내몰렸다는 점이 오히려 선거를 홀가분하게 치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정국의 흐름을 일시에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패배할 경우 보수 세력의 위기감을 더 높여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어떠한 경우든 내년 총선에서 입을 피해를 미리 완화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이번 주민투표 승리 이후를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주민투표 결과를 놓고 볼 때 보수층이 상당히 결집했다. 선거는 기세 싸움이 중요하다. 현재 여당이 몰리는 분위기로 가고 있는데, 이때 야당이 한 번의 선거를 잘못 치르면 급격한 반전이 일어난다. 상황이 역전되어 심각해질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반면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해서는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았다. 그는 “시간이 촉박하기는 하지만 다른 당에 후보군이 많지 않아 단일화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협상은 불가피한 부분이다. 그러나 예전처럼 막판까지 지분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경우 선거를 치르기 힘들다는 경험을 이미 충분히 해왔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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