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박’은 부글부글, ‘친박’은 나긋나긋
  • 조진범│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1.08.31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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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계, 친이계의 거센 반격에도 요지부동…주민투표 전 내부 토론회에서 이미 ‘무대응’ 결론 내려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8월23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격의 기운이 꿈틀댄다. 한나라당 ‘친이명박계’ 의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지난 7·4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던 친이계 의원들이 칼을 벼르고 있다. 칼끝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향하고 있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반격의 모멘텀으로 삼고 있다. ‘예상대로’ 주민투표는 한나라당의 패배로 끝났다. 25.7%의 투표율을 기록해 개표 기준인 33.3%를 넘지 못했다. 준(準)대선급으로 불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치러야 한다. 가뜩이나 민심 이반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서는 비명을 지를 판이다.

더욱이 주민투표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친이계 의원들이 만든 무대이다. 내년 총선에 대한 친이계 의원들의 위기감은 공포에 가깝다. 당내 권력 지형도 친이계 의원들을 조바심 나게 한다. 어느새 한나라당은 ‘박근혜당’이 되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는 분위기이다. 이래저래 ‘비상구’가 절실한 친이계이다.

친이계, ‘반박 전선’ 구축할 가능성 커져

▲ 지난 7월13일 열린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와 유승민 최고위원(맨 왼쪽) 등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친이계 의원들은 주민투표 무산에 대해 ‘박근혜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예고된 수순이다. 박 전 대표의 주민투표 거리 두기를 집중 비판하고 있다. 강승규 의원은 “굉장히 아쉬웠다. 박 전 대표의 지원을 절실하게 요청했던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웠다”라고 말했다. 신지호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도와주지 않은 것을 두고 지역에서 비판하는 이가 많다. 친박계도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만큼 개표 무산 ‘책임론’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마디로 박 전 대표가 당의 위기를 ‘나 몰라라’ 했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친이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대세론에 취해 주요 이슈를 피해 다니는데, 그런 자세로는 본선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실제 박 전 대표와 ‘친박계’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관련해 거리를 두었다. 박 전 대표는 “지방자치단체마다 형편과 사정이 다르니 거기에 맞추어야 한다”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했다. 주민투표 전날인 8월23일에도 “서울시민이 판단할 것이다”라고 말을 아꼈다. 시장직을 건 오세훈 시장의 초강수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친박계 핵심인 유승민 최고위원도 주민투표에 앞서 “오세훈 시장이 당과 한 번도 상의한 적이 없는 주민투표에 대해 왜 당이 깊은 수렁에 빠지는가”라고 비난했다.

무상급식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입장에는 사정도 있다. 박 전 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군의 일부 지역에서 전면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친박계 초선 의원은 “지역구에서 전면 무상급식이 실시 중인데, 서울은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사정을 다들 알고 있으면서 박 전 대표를 몰아붙이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한구 의원은 “무엇을 행동하지 않은 것도 책임져야 하는가. 선거 후보자나 정책 결정에서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게 선거 과정에서 어려워지면 ‘설거지하라’는 식으로, 책임지라는 식으로 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라고 반박했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친이계의 공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투표 과정에서 꺼내든 ‘반(反)복지 포퓰리즘’을 기치로 ‘반박(反朴) 전선’을 구축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보수 신당’이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때마침 ‘친이계의 군기반장’인 이재오 특임장관의 귀환이 임박했다. 친이계로서는 구심점이 생기는 셈이다. 이장관의 최측근인 진수희 보건복지부장관과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장관도 함께 돌아온다. 진장관이 여성 의원들을 맡고, 정장관이 소장파 의원들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소문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재오 장관은 ‘대선 불출마’ 의사 내비쳐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이장관이 주민투표일인 8월24일 한 지방 언론사의 정치 아카데미 강사로 나서서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위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장관은 “정권의 2인자, 왕의 남자, 측근 실세라는 수식어만 안 따라다니면 한번 해볼 생각이 있는데 본의 아니게 이런 수식어가 따라다니면서 (대선 후보) 지지율이 1%에도 못 미친다. 나 같은 사람이 딴생각하고 빈틈이 생기면 레임덕이 빨리 온다. 조기 레임덕을 막고 국정 운영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에 복귀하면 토의종군(土衣從軍)하는 자세로 당이 화합하고 하나가 되도록 돕겠다고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친박계는 이장관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다. 이장관의 스타일로 볼 때 절대 가만 있지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한 친박계 인사는 “이장관이 친박계에 쏠린 힘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하지 않겠느냐. 이장관이 당에 버티고 있으면 친이계 의원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 한번 생각해보라. 이장관이 식사나 한번 하자고 했을 경우에 거부할 의원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라고 말했다.

친박계는 당내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도 다급하게 움직이는 기색이 없다. 주민투표 무산에 대한 공식적인 반응도 없다.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인 이학재 의원이 “박 전 대표는 무상급식은 지방자치단체의 상황에 맞게 해야 하고, 서울시는 시민이 판단할 문제라는 입장을 밝힌 만큼 (주민투표) 결과가 나오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느냐”라고 언급할 뿐이었다. 사실 친박계 내부에서는 주민투표에 앞서 한 차례 토론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예정된 패배’와 관련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주제였다. 결론은 ‘무대응’이었다. 토론회에 참석했다는 한 친박계 인사는 “박 전 대표가 원칙을 분명히 말했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라고 전했다.

친박계의 대권 전략에도 변함이 없다. ‘박근혜 대세론’을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오세훈 시장의 대선 불출마 선언으로 변수가 생겼지만,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친이계의 반격도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으로 여긴다. 여권의 잠룡으로 거론되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나 이재오 특임장관, 정몽준 전 대표 등이 반박(反朴)의 깃발 아래 뭉치더라도 박근혜 대세론을 깨기 힘들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다. 친박계가 친이계의 반격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도 현재의 대권 구도를 끝까지 유지하겠다는 의지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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