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친박 갈등 속 ‘보수 신당’ 깃발 오르나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1.08.31 01: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정당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한나라당이 지금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후폭풍 탓이다. 이를 둘러싸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핵심은 한나라당의 변화이다.

▲ 지난 8월24일 한나라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한 홍준표 대표(오른쪽 두 번째) ⓒ시사저널 유장훈

정치권의 대격변이 본격화되었다. 물밑에서는 이미 세력 간·정당 간 요동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 다양한 정국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야권은 이미 단일화를 위한 행보에 힘을 실었다. 잠잠하던 여권 또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세력적으로는 친이명박계(친이계)-친박근혜계(친박계)의 한판 대결,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행태에 대한 외곽 보수 그룹의 문제 제기가 가시화하면서 어떤 식으로든 ‘한나라당의 변화’를 강제받고 있다. 한나라당의 리모델링이든 새로운 정당의 태동이든 ‘보수 신당’을 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한나라당은 올해로 창당 15년째를 맞고 있다. 4~5년 주기로 명멸해가는 대한민국 정당사에서 역사가 가장 긴 정당이 한나라당이다. 그런 한나라당이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8·24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가 기폭제였다. 이번 투표가 보수와 진보의 이념 전쟁터로 변하면서 ‘보수의 패배’로 규정되었다. 그러자 당 밖의 보수 진영에서 “한나라당은 이미 수명이 다한 정당이다”라는 말과 함께 “한나라당의 간판을 내려야 한다”라는 요구까지 등장하고 있다. 진정한 보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신당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다시 나온다. ‘보수 신당론’이 그것이다.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도 많아졌다. 다양한 시나리오와 함께,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한나라당이 안팎의 회오리를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 한나라당을 둘러싼 보수 정계개편론은 그 시나리오가 크게 세 방향으로 나뉘고 있다. 첫 번째는 친이계의 탈당 및 신당 창당 가능성이다. 두 번째는 친박계가 움직이는 이른바 ‘박근혜 신당론’이다. 세 번째는 당 외곽의 보수 신당 창당과 그에 따른 한나라당의 일부 이탈 가능성이다. 세 시나리오 모두 기본적으로 친박계와 친이계의 갈등을 전제로 한다. 많은 정치 전문가는 “아직도 ‘친박’과 ‘친이’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친이와 친박은 절대 같이 갈 수 없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 가장 주목하는 이는 신율 명지대 교수이다. “단언컨대, 친이와 친박은 절대 같이 갈 수 없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그 이유로 그는 “지난 2007년 경선 과정에서 보여준 양 계파의 네거티브 전쟁은 이미 치유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더 중요한 것은 친이계의 뿌리가 민주계에 있다는 점이다. 이들 사이에는 여전히 민정·공화계를 수구 세력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반면 친박계는 자신들이 한나라당의 본류라는 주인 의식이 강하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친박계를 대표하는 한 인사는 현 정부 들어 지난 3년간 기자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가려면 저들(친이계)이 나가면 된다. 왜 ‘객’이 들어와서 ‘주인’을 쫓아내려고 하느냐. 우리가 이 당의 주인인데, 우리가 왜 나가나?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객들이 나갈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신교수가 한나라당 분열의 진원지로 친이계를 지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친이계 입장에서는 어차피 이번 주민투표가 승패를 떠나서 하나의 기회였다. 만약 이겼다면, ‘나 몰라라’ 했던 박근혜 전 대표를 흠집 내면서 오세훈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띄우는 반전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고, 지더라도 지금 어차피 ‘박근혜당’이 되어버린 한나라당의 판도를 흔드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는 장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나갈 가능성은 제로이다. 지금 박 전 대표가 대권 전략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나아가는 ‘좌클릭’을 시도하고 있지만, 정치인의 이미지는 쉽게 바뀌기 힘들다. 결국 선거가 닥치면 보수층에 기댈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친이계는 중도 보수를 놓고 박 전 대표와 차별화를 꾀하려 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보수 논객으로 통하는 이상돈 중앙대 교수 역시 “친이계와 친박계가 같이 가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데에는 신교수와 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분열 양상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르다. 이교수는 두 번째 시나리오를 더 강조한다. 그는 “지금 한나라당이 박근혜당이라고는 하지만, 다소 어정쩡한 상태이다. 지금의 한나라당 이름으로는 MB의 이미지를 지우기가 쉽지 않다. 내년 총선을 제대로 치르려면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보수 신당’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MB의 한나라당과 차별화가 가능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신당 형태로 그는 한나라당 이름을 바꾸는 재창당 수준의 보수 신당이 될 가능성을 주장했다.

▲ 이재오 특임장관이 지난 8월22일 특임장관실 직원들과 함께 고유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 절약 방법이 적힌 부채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친박계는 ‘외곽 보수 신당’ 가능성에 방점

이교수는 “과거 한나라당 당권이 YS에서 이회창으로 넘어갈 때 자연스럽게 YS 계파가 ‘이회창 대세론’에 스며들었고, 이회창이 물러난 후에도 최병렬 전 대표 등이 ‘탄핵 역풍’ 때 스스로 물러나면서 새로운 지도자에게 길을 터주었다. 그런데 과연 지금 MB계가 박 전 대표를 위해서 스스로 물러나 줄 수 있다고 보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친이계가 ‘반(反)박근혜’로 남아 있는 한 한나라당 간판으로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 정권의 ‘세종시’ ‘4대강’을 안고서는 어렵다. 그나마 박 전 대표가 승리할 수 있는 길은 현 정권과 결별하는 것만이 방법일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친박계의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인사는 “원칙을 강조하는 박 전 대표의 정치 스타일상 ‘박근혜 신당’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MB 정부가 인기가 떨어진다고 해서 결별을 선언하는 것 또한 ‘박근혜식 정치’와 맞지 않다. 그렇다면 1997년 YS와 결별한 ‘이회창식 정치’와 뭐가 다를 것이 있나”라고 그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고 있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세 번째 시나리오의 가능성에 크게 비중을 두고 있다. 당 밖의 보수 신당 출현 가능성이다. ‘범친이계’ 또는 ‘중도 성향’에서 최근 ‘박근혜 대세론’에 다소 기우는 듯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발언도 여기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그는 주민투표 전인 8월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주민투표에서 지면 수도권 총선에서 최악의 상황에 몰릴 수 있다. 한나라당을 대신하는 새로운 외곽 보수 정당이 등장할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당 외곽에서 사실상 박근혜 캠프 성격의 조직을 관장하고 있는 친박계의 한 유력 인사는 “내년 4월 총선을 전후로 해서 당내 ‘이탈 세력’이 나올 가능성은 충분히 있고, 나름으로 그에 대한 대비책도 갖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한사코 친이계라는 용어 대신 이탈 세력이라고 표현했다.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못 받거나 불만을 가진 이들이 이탈 세력을 이룰 것이고, 거기에 친이계 인사들이 상대적으로 비중을 많이 차지하기는 하겠지만, 그들이 친이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는 전망이다.

친이계, 벌써 ‘차차기 준비론’도 솔솔

▲ 박세일 한반도 선진화재단 이사장 ⓒ시사저널 임준선

이 인사 역시 당내 분열보다는 당 외곽에서 일고 있는 보수 신당론에 더 주목한다. 당장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주도하는 ‘선진통일연합’이 보수 신당의 모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렇게 되면 ‘박근혜의 한나라당’에 불만을 가진 이탈 세력이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새로운 정당 출현을 명분으로 이들과 통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박이사장이 한나라당에 재영입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박 전 대표와의 관계를 고려해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 박세일 이사장은 투표 직후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투표 결과에 실망감이 너무 크다. 한나라당은 문을 닫아야 한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라는 입장만 밝힌 채 말을 아꼈다.  

친이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투표일인 지난 8월24일 한 지방 강연에서 사실상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한 것도 주목된다. 친박계의 한 인사는 “예상은 했지만, 이장관이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킹메이커’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다면, 지금처럼 마냥 ‘박근혜 대세론’에만 안주할 수는 없다”라고 경계했다.

그래서일까. 지금 친박계 진영에서는 홍준표 대표에게 “조기 대권 가시화를 선언하는 것도 (위기 극복의)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라는 제안을 은밀히 넣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7·4 전당대회에서 홍대표 캠프 진영에 친박계 인사들도 참여해서 선거 전략을 도와주었다. 이들이 홍대표에게 박 전 대표로의 조기 대권 가시화를 종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차차기’를 노리고 있는 홍대표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이다”라고 귀띔했다.

실제 친이계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차차기’를 대비할 각오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친이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솔직히 지금의 차기 대선 구도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그가 한나라당 후보로 나갈 것으로 본다. 하지만 문제는 본선 경쟁력이다. 박 전 대표가 본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만약에 박 전 대표가 실패하더라도 한나라당은 제1 야당으로서, 그리고 차차기 집권을 준비하는 정당으로서 국민들 속에 뿌리내려야 한다. 그때가 되면 친이니 친박이니 하는 것도 없어질 것이고, 한나라당이 진정 건강한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다. 당장 1년, 2년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5년, 10년을 바라보는 긴 정당이 되어야 한다. 나는 그런 면에서 이명박·박근혜 이후의 한나라당에 희망이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언뜻 원칙론적인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박근혜’를 바라보는 친이계의 불안감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친이계 이탈 가능성’ 바라보는 친박계의 두 시선

친이계의 이탈 가능성을 바라보는 친박계의 시선은 현재 둘로 나뉜다. 대체적으로 “일부 이탈 세력은 있을 것이다”라는 데에는 의견이 일치하지만, 그 규모에 대해서는 ‘소수에 그칠 것’이라는 낙관론과 ‘자칫 당이 양분될 수도 있다’는 비관론이 엇갈린다. 영남 지역의 한 친박계 의원은 “한나라당과 관련 없는 보수 신당의 출현이야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의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 말기의 열린우리당과는 다르다. 당 지지율이 10%대도 아니고, 어쨌든 지금 20~30%의 1위 지지율이다. 국민들이 한나라당을 질타하고는 있지만, 버리기까지 할 수야 있겠는가. 25.7%의 주민투표율이 이를 말해준다. ‘사실상 이긴 것’이라는 당내 일부의 주장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완전히 절망적인 수준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국회의원들은 어차피 힘의 논리에 쏠릴 수밖에 없다. 현재 가장 힘이 있는 대권 주자가 친이계가 아닌 친박계에 있는 이상, 또 그 대권 주자가 당에 굳건히 남아 있는 이상 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가기란 쉽지 않다”라고 전망했다. 박 전 대표가 손을 내밀면 친이계는 허물어질 것이라는 얘기이다. 이는 바꿔 말해서 박 전 대표가 끝까지 손을 내밀지 않는 소수의 인사들에 한해 이탈자가 생길 것이라는 얘기도 된다.

반면 친박계의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인사는 다소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정통 보수 여당의 성향을 가진 이들은 쉽게 당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야(野) 성향이 강한 이들은 다르다. 명분만 서면 언제든지 행동에 옮길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민주계에 뿌리를 둔 친이계를 겨냥한 말이다. 그는 그 기준을 내년 4월 총선으로 전망했다. 그는 “총선을 전후해서도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이 30% 이상 치고 올라가지 못하고, 대신 야권 후보들의 지지율이 15~20%로 치고 올라오면 반드시 ‘박근혜 불가론’이 나올 것이다. 이때 그들은 ‘박근혜로는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는 명분을 내세워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거 결집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