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 정치’가 열도의 미래 밝힐까
  • 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1.09.0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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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노다 요시히코 총리 체제 출범…원전 사고 수습·경기 회복 등 난제 많아 ‘가시밭길’ 예고

일본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난 지 만 2년째가 되는 날에 세 번째 총리가 탄생했다. 지난 8월30일 일본 국회는 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54세)를 제95대 총리로 선출했다. 노다 총리는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반(反)오자와·반하토야마 세력의 지원을 받아 8월29일 민주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이번 민주당 대표 선거는 ‘노다’라는 브랜드가 통했다기보다는 민주당 내에서 오자와 전 대표의 영향력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이벤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거였다.

오자와 전 대표의 영향력이 약화된 것은 역으로 노다 총리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하지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노다 총리의 성격상 극단적으로 한 세력을 배제하는 정치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예견된다. 실제로 그는 총리로 임명된 이후 당의 인사와 예산권을 쥐게 되는 넘버 2의 자리인 간사장에 오자와와 가까운 고시이시 아즈마 참의원의원 회장(75)을, 간사장 대리에도 친오자와계이자 같은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인 다루토코 신지 전 국회대책위원장을, 그리고 국회대책위원장에는 하토야마 전 총리의 측근인 히라노 히로후미 전 관방장관을 임명했다. 화합에 최우선의 방점을 찍은 것이다. 노다 총리의 평소 생각인 ‘화(和) = 중용의 정치’, 즉 모나지 않게 두루두루 포용하는 정치를 하겠다는 평소 성격을 이번 주요 당직 임명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같은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인 마에하라 전 외무장관을 정조회장에 임명해 이후 각 보직에 정경숙 출신의 진출을 예고하기도 했다.

노다 총리는 치바 현 후나바 시 출신으로 부친은 육상자위대 출신이다. 와세다 대학 정치학부 재학 시절 다나카 카쿠에이의 금맥과 인맥을 고발한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타카시를 동경해 저널리스트가 되는 꿈을 키웠다. 하지만 노다 총리의 운명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마쓰시타 정경숙에 들어가면서 찾아왔다. 마쓰시타 정경숙은 일본 경영의 신으로 불리우는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일본의 미래를 책임질 지도자를 키우고자 사재를 털어 만든 지도자 양성  기관이다. 이번에 총리 후보로 출마했던 마에하라 세이지 전 외무장관도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이다.

노다 총리는 1980년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 그해 마쓰시타 정경숙 1기생으로 입학했다. 스스로 인정하듯이 돈도 화려한 이력도 없는 사람으로서 정치 개혁을 하고 싶어 마쓰시타 정경숙에 들어 갔으며, 정경숙에서 지낸 5년간 당시 숙장으로 있던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술회했다. 노다 총리의 정치적 기반은  상당 부분이 마쓰시타 정경숙 시절에 만들어졌다. 따라서 노다 총리와 마쓰시타 정경숙과의 인연은 이후 정치 인생에서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마쓰시타 정경숙을 졸업한 후 잠시 정치와 다른 길을 걷기도 했다. 가정교사, 사설교육상담소장 등의 일을 했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것은 1987년 치바 현 의원 선거를 통해서이다. 이후 1993년 일본신당 공천을 받아 중의원이 된 이래 5선 의원으로 국회대책위원장, 재무장관 등을 역임했다.

▲ 지난 8월30일 노다 요시히코 일본 민주당 대표가 도쿄에서 열린 당내 경선에서 총리로 선출되자 일어나 인사하고 있다. ⓒEPA연합

노다 총리의 인물평과 극복해야 할 문제들

우직, 팔방미인, 끈기. 노다 총리의 은사와 주변 사람들이 노다 총리에 대해 내놓는 인물평이다. 유도가 특기이며 격투기 팬으로 두주불사형이다. 정이 많으나 결단력이 부족하다는 평도 듣는다. 노다 총리와 절친한 마쓰시타 정경숙 1기생인 오카다 쿠니히코 와세다 대학 객원 교수는 당시 동기생인 노다에게 왜 정치를 하냐고 물었더니 “갓난아이를 업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정치를 하고 싶다”라고 답하는 등 평소 서민적인 정치를 꿈꾸었던 동기생이었다고 회고했다.

노다 총리는 민주당 대표 선거의 정견 발표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 아이다 미즈오의 ‘미꾸라지가 금붕어를 흉내 낸다고 해도 모양이 달라지나. 모양은 이대로. 빨간 옷을 입은 금붕어가 될 수 없다. 흙 냄새가 나는 국민들을 위해 땀이 밴 헌신적인 정치를 끝까지 하고 싶다’라는 시구를 인용하며 서민적이고 헌신적인 총리가 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또 “아침에 가련한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전날 밤의 어둠과 차가움이다” “밤의 어둠 속에서 밝음과 따뜻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정치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정치적 소신을 밝혔다. ‘예스’와 ‘노’가 분명해 국민적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반면 적도 적지 않은 마에하라 전 장관에 비해 노다 총리는 외모에서 비치는 것처럼 온후하며 좀처럼 ‘노’라고 말하지 못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이러한 원만한 인간관계와 끈기 있는 성격 때문에 2차 투표에서 많은 표를 얻게 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 당내 구조가 오자와 파, 하토야마 파, 마에하라 등의 소장파 등으로 분열된 상황에서 색깔이 너무 뚜렷한 마에하라 전 장관이 총리로 선출될 경우 또다시 당내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이런 것을 많은 의원이 피하고 싶었던 측면도 노다 후보가 당선된 이유 중 하나로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원만한 성격이 때로는 결단력을 필요로 하는 국정 운영에서 약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같은 마쓰시타 정경숙 출신인 야마다 히로시 일본창신당 대표는 노다 총리가 재무장관 시절 시장에 영향력을 감안해 발언에 지나치게 신중한 것 같았다며 “지금까지처럼 있는 듯 없는 듯해서는 안 되고 한 내각의 큰 대업을 성취한다는 기개를 가지고 헤쳐 나가기를 바란다”라며 강한 결단력을 주문했다.

노다 총리의 앞날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다. 제일 급선무는 역시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수습 그리고 경기 회복이다. 그동안 간 나오토 전 총리가 전력투구해왔으나 야당인 자민당과의 대립으로 부흥 재건 예산을 적시에 지원받지 못해 정국 운영이 지지부진했다. 간 총리의 사임으로 자민당으로서도 더 이상을 발목을 잡을 명분이 없기 때문에 3차 보정 예산은 큰 변수가 없는 한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민당의 협력은 여기까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노다 총리는 자민당, 공명당 등과 대연립 구상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야당인 자민당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당과의 대연정은 별로 이득이 없는 일이다. 게다가 민주당의 인기도 갈수록 추락하고 있기 때문에 굳히 연립을 할 이유가 없다. 특히 자민당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시하라 노부테루 간사장이나 자민당 내에서 차기 총리감으로 부상되고 있는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청 장관과 같은 사람들은 민주당과의 연립에 대해 부정적이다. 오히려 하루빨리 국회를 해산해서 총선거를 치러 다시 여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야당과의 문제만이 아니다. 경기 회복을 위한 증세 카드의 효과도 불투명하다. 증세안이 얼어 붙어 있는 개인 소비와 기업의 투자 의욕을 더욱 위축시킬 것이라는 부정적인 여론도 적지 않다.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부흥 재원으로 부흥 채권을 발행하고 소득세 등의 증세로 상환하겠다는 구상이다. 법인세 5%를 낮추는 문제도 부흥 재원 확보 차원에서 동결하겠다는 생각을 비침에 따라 기업들이 점점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당내 문제도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오자와 전 대표는 불법 정치 자금 수수 문제로 당원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상태이다. 이번에 삼고초려로 당의 2인자가 된 고시요시 간사장은 오자와의 당원 자격 정지를 해제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전제하에 당내 소장파들 및 반오자와 세력의 반발을 감안해 “여러 의견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 룰과 시기를 감안해 생각해보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 소장 개혁 세력을 대변하고 있는 마에하라 정조회장의 경우 당원 자격 정지 처분을 재고할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이 문제가 불거질 경우 당내 갈등이 재연될 소지가 농후하다. 특히 노다 총리가 마에하라 전 장관을 정조회장에 임명하며 “정부가 의사 결정을 할 때 정조회장의 승낙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라며 힘을 실어주어 오자와 세력 간의 대립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이처럼 노다 총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조정과 끈기의 승부사 기질을 가진 노다 총리가 야당과의 관계를 비롯한 문제들을 어떻게 설정해갈 것인지가 일본 정국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포인트가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 국민들과 경제계는 총리가 되기 직전까지 맡았던 재무장관의 경험이 난국을 헤쳐나갈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노다 총리는 민주당이 집권한 이래 하토야마 전 총리 밑에서 재무 차관을 간 나오토 전 총리 밑에서는 재무장관을 지내며 경제 정책을 운영해본 몇 안 되는 민주당 내 정책통이다. 대기업의 경제 단체인 경단련의 요네쿠라 히마사 회장이 노다 총리가 선출되자 마자 “정책에 밝다. 상당히 안정되고 행동력이 있는 정치적 리더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아주 좋은 결론을 내렸다”라며 열렬히 환영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경제 문제와 엔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노다 총리의 경제 정책의 기본 노선은 재정 건전화와 증세이다. 이번 총리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 간에 재정 건전화를 가장 강조한 후보이기도 하다. 또 재정 건전화를 위해서는 증세가 필요하며 필요한 경우 국민들의 이해를 얻어 증세를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 가까운 재정 적자를 가진 상태에서 더 이상 국채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제 정책에서는 비교적 입장이 뚜렷하다. 그러나 간 나오토 전 총리가 참의원 선거에서 소비세 인상안을 들고 나와 대패한 사례에서 보듯이 국민들은 증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면서도 막상 증세하고자 하는 경우 그 저항감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노다 총리의 증세 정책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아마추어’ 외교로 주변국과 마찰 빚을 여지도

▲ 지난 5월7일 일본 반핵 시위대가 도쿄 시내에서 후쿠시마 원전의 운영을 책임지는 도쿄전력 임원진들의 사진을 붙인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

산적한 문제 가운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외교 부문이다. 외교에 대한 관심도는 높지 않다. 그동안의 의원 활동에서도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한 바가 거의 없다. 재무장관이 되기 전까지 아마도 해외에가 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일이 외교문제에 대해서는 식견이 없으며 내셔널리즘이 강하다는 평들을 내놓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A급 전범 문제에 대해서는 “전쟁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강경한 보수 입장을 밝혀 우리나라와 중국 등 주변국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또 “정부가 권리는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사는 할 수 없다”라는 모순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집단적 자위권 해석의 수정을 요구하며 신헌법 제정을 주창하는 등 강경 보수의 입장으로 향후 주변 국가와의 마찰의 여지가 있다. 외국인 참정권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냈다.

일본은 불과 2년 사이에 하토야마, 간 나오토 총리에 이어 세 번째 총리를 맞이했다. 54년 만의 정권 교체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이 사라져가고 정치 불신이 심각한 상황에서 노다 총리가 동일본 대지진, 장기 경기 침체, 당내 대립, 재정 적자 등의 산적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갈 것인지 그 앞날을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일본 정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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