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만난 한국 온라인게임
  • 김상현│경향게임스 기자 ()
  • 승인 2011.09.03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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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자본 무장한 ‘차이나 파워’에 ‘종주국’ 위상 흔들…정부의 게임 산업 진흥 정책 아쉬워

▲ 중국은 최근 ‘차이나조이 2011’을 통해 퀄리티 높은 다수의 온라인게임을 선보였다.

중국 온라인게임의 ‘역습’이 거세지고 있다. 종주국인 한국을 위협할 정도이다. 그동안 중국은 ‘게임 한류’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해왔다. 해외에 수출되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절반 이상을 중국이 차지해왔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역전되었다.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종주국인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세계 시장 1위 자리는 지난 2008년 중국에 빼앗긴 상태이다. 올해에는 시장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는 해마다 두 자릿수 이상 성장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는 3백27억4천만 위안(한화 5조8천5백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26.3% 증가했다. 올해 역시 약 6조2천억원으로 한국(약 4조 억원)과의 격차를 벌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짝퉁’으로 불리던 중국산들의 약진

자국 내에서 시장 파이를 늘린 중국 게임사들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한국이 보유한 게임 운영 노하우와 기술력 확보에도 공을 들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짝퉁’으로 평가되던 이미지가 많이 세탁되었다. 일부 3D MMORPG(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가 한국에 역수출되기도 했다. 이미 적지 않은 수의 중국 온라인게임이 한국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2007년 완미시공이 개발한 ‘완미세계’는 중국산 게임에 대한 편견을 깨뜨렸다. 오픈 베타 테스트 일주일 만에 동시 접속자 2만5천명을 돌파했다. 2008년의 경우 ‘천존협객전’이 알짜 게임으로 부각되면서 큰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완미시공이 개발한 ‘불멸 온라인’의 경우 최다 동시 접속자 7만명이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국내 퍼블리셔들은 값싼 중국 온라인게임을 모시는 데 혈안이 되었다. 중국 현지에서 만난 게임업체의 한 대표는 “온라인게임의 운영과 서비스는 한국을 앞선 것으로 본다. 그래픽과 프로그램 수준도 조만간 한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경향은 텐센트, 샨다게임즈, 더나인, 나인유 등 중국 10대 메이저 게임사들의 CEO 설문에서 나타났다. 설문에 응한 10명의 CEO는 “중국 온라인게임 개발력과 서비스 능력이 한국과 비슷하거나, 이미 앞섰다”라고 답변했다. 특히 서비스 운영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앞서고 있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한 CEO는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한국의 온라인게임 개발력을 빠르게 흡수해왔다. 우수한 인재를 양성시킬 수 있는 토양이 구축된 만큼 향후 발전 가능성은 한국보다는 중국이 우세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앞장서서 한국 게임 견제하기도

전문가들은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이 고속 성장한 이면에는 정부의 역할도 상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국 게임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연간 해외 온라인게임 서비스 수를 제한해왔다. 중국 현지 업체가 아닌 경우 온라인게임을 서비스조차 할 수 없다. 국내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현지 퍼블리셔와 손을 잡거나 합작 회사를 설립해야 했다. 실제로 중국 문화부는 지난 2010년 2백4개의 게임 서비스 심의를 통과시켰다. 이 중에서 해외 온라인게임은 28개가 전부이다. 나머지 1백76개는 중국에서 자체 개발한 게임이다. 지난 2004년까지만 해도 한국산 게임과 중국산 게임의 비율은 각각 49.4%와 44.5%를 기록했다.

하지만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중국 정부의 개입으로 중국에서 한국산 게임의 숫자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중국 온라인게임 개발사 ‘오브젝트 소프트웨어’의 마오하빈 CEO는 “중국 정부의 끊임없는 지원은 온라인게임 산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엄격한 규제가 산업 성장을 방해한다고 하지만, 향후 더 큰 발전을 위한 정부의 포석이라는 것이 중국 게임업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라고 말했다.

중국 게임 산업의 비약적인 성장은 지난 7월 열린 ‘차이나조이 2011’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7월28일부터 나흘간 진행된 전시회에는 총 15만6천3백9명의 방문객이 다녀간 것으로 공식 집계되었다. 14만명을 기록했던 지난해보다 1만여 명이 증가한 수치이다. 여전히 한국 온라인게임들이 현장에서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기술력으로 무장한 다양한 작품이 출시되면서 중국 온라인게임 산업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 게임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특히 우리 돈으로 3백억원을 들여 개발한 ‘구음진경’은 중국도 블록버스터급 대작 타이틀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다. 차이나조이 2011의 한 관람객은 “중국 온라인게임이 카피를 넘어서 새로운 시도와 다양한 작품을 창조하고 있다. 중국 온라인게임이 글로벌 시장에서 큰 인기를 구가할 날이 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기획력으로 승부하고 규제 일변도인 정부 정책도 바뀌어야”

값싼 인력을 대규모로 고용해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중국산 MMORPG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기획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민지영 엔씨소프트 ‘아이온’ 기획팀장은 “콘텐츠로 승부하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다양한 기획력을 가지고 한국 MMORPG만의 경쟁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자금력이 강하고, 기술력이 우수하다 해도 기획력을 키우지 못하면 속빈 강정과 같다는 것이다. 콘텐츠에 대한 승부는 한계가 있지만, 기획 경쟁력은 유저들에게 창조적인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고 민팀장은 강조했다.

국내 게임의 경쟁력 강화와 함께 정부의 진흥 정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관호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은 “중국 게임 산업의 성장 뒤에는 정부의 진흥 정책이 주요했다. 국내의 경우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PC방 완전 금연법 등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 게임 산업을 퇴보시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강력한 게임 산업 규제로 신생·중소 개발사들이 하나 둘씩 무너지고 있고, 이 틈을 중국 온라인게임이 파고들고 있다는 것이 최회장의 설명이다.

중국 게임 산업은 정부의 단단한 호위를 받으며 급성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 퇴보하고 있다. 한국 문화 콘텐츠 수출 1위인 게임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진흥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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