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종편 ‘예능 전선의 혈투’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1.09.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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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선 잡기 경쟁, 일찍부터 가열…전쟁 이끌 장수인 스타 PD·MC 스카우트 공방에 사활 걸어

▲ 수성에 나선 KBS·MBC·SBS. ⓒ시사저널 유장훈

방송가가 꿈틀대고 있다. 가히 춘추 전국 시대라 할 수 있다. KBS, MBC, SBS로 삼분지계를 이루던 방송가는 종합편성 채널(이하 종편)을 맞아 군웅이 할거하는 전국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기존 삼국(KBS, MBC, SBS)은 장수(PD와 스타 MC)를 빼앗기면서 내부를 추스리며 새로운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다. 새로 들어오는 열국(종편과 CJ E&M)은 장수를 빼앗아와 전국 시대의 기선을 잡아야 한다.

생존을 건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용을 갖추는 일이다. 이 진용 짜기에서 핵심은 바로 예능 프로그램이다. 상업 방송 시대에 방송사의 힘을 만들어주는 것은 시청률이고, 시청률을 좌우하는 것은 방송 프로그램의 재미이다. 과거에는 드라마가 그랬지만 지금은 잘 키운 예능 하나가 그 방송사의 이미지와 명운을 가르는 시대이다. 따라서 예능 PD와 스타 MC를 확보하는 전쟁은 향후 방송가의 정세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 된다. 전국 시대를 맞아 방송계는 어떤 포석을 하고 있을까. 또 그 포석이 그리는 그림은 무엇일까.

KBS는 이미 수많은 장수를 잃었다. <1박2일>의 초창기 그림을 그린 김시규 PD와 <해피선데이>의 CP였던 이동희 PD, <야행성>의 조승욱 PD 그리고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김석윤 PD가 중앙 종편(jTBC)을 택했고, <해피선데이>의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을 모두 세팅한 이명한 PD와 <남자의 자격>의 신원호 PD, <개그콘서트>의 김석현 PD가 CJ E&M으로 갔다. 사실상 KBS 예능 프로그램을 만든 알짜배기 PD가 대부분 이적을 택한 셈이다. 게다가 방송가에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것이 끝이 아니다.

▲ 종편 채널을 지닌 조선·중앙·동아일보와 케이블 채널을 가진 CJ E&M. ⓒ시사저널 박은숙

KBS, 이렇게 뺏기고도 믿는 구석은 뭘까

강호동의 <1박2일> 하차 선언에도 ‘끝까지 <1박2일>에 남겠다’고 선언한 나영석 PD의 경우에도 여전히 여지는 남아 있다. <1박2일>의 6개월 후 종영 선언은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고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나PD는 스카우트 제의를 수락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1박2일>이 가진 ‘국민 예능’이라는 칭호를 연출자 스스로 먼저 깨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중심부에 서 있던, 그리고 실제 출연자의 한 명으로서 충분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그는 보통의 PD와는 확실히 다른 위치에 있다. 이미지가 깨지면 스타 PD로서의 위상도 위험해질 수 있다. 하지만 6개월 후 <1박2일>이 종영한 뒤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적어도 자신은 할 책임을 다한 셈이 되고,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이 없는(시즌 2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프로그램이나 다름없다) 상황에 계속 KBS에 남아 있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KBS의 PD 이탈 러시에는 특유의 방송사 분위기가 한몫했다. 공영방송이라는 기치 아래, KBS는 스타 PD를 키워오지 않았다. 대신 KBS는 주로 시스템에 주력해왔다. PD 몇 명이 빠져나간다고 해도 시스템에 의해 빈자리가 채워지고 굴러간다. KBS에 이명한이나 나영석 같은 스타 PD가 등장하게 된 것은 리얼버라이어티쇼라는 새로운 형식이 트렌드로 자리하면서부터다. 프로그램의 현장성을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PD가 얼굴을 내밀었고, 그것이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이면서 팬덤이 형성된 것이다.

춘추 전국 시대에 KBS가 수성을 하는 방식은 이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다. <개그콘서트>의 김석현 PD가 빠져나간 자리는 초창기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서수민 PD가 채우고, 신원호 PD가 빠져나간 자리에 조성숙 PD가 서는 식이다. 만일 스타 PD 중심으로 프로그램이 움직였다면 이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김태호 PD 없는 <무한도전>(MBC)을 떠올릴 수 있을까. 하지만 신원호 PD 없는 <남자의 자격>은 만들어질 수 있다. 여기서 나영석 PD의 고민이 엿보인다. 그는 특이하게도 자신의 팬덤을 확보한 KBS PD이다. 즉, 나PD 없는 <1박2일>을 상상하기 쉽지 않다. 그러니 나PD의 이적은 <1박2일>이 먼저 없어져야 가능한 일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나PD의 이적설 만큼이나 관심을 끄는 인물은 바로 <1박2일>과 <남자의 자격>을 모두 맡고 있는 이우정 작가이다. KBS라는 조직에서 엄청난 노동과 성과를 내고 있는 이우정 작가는 춘추 전국 시대의 스카우트 표적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스타 PD에다 MC까지 빼앗기고 있는 KBS는 공영방송이라는 틀 속에서 춘추 전국 시대를 대비하는 듯하다. KBS가 수신료 인상에 목을 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상업방송과의 경쟁과는 다른 차원으로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얘기처럼 보인다. 치열해질 전쟁 바깥에 서려는 것이다. 물론 많은 장수를 잃었지만 그래도 KBS가 믿는 구석은 이것이 아닐까.

이적, MBC는 뜨겁고 SBS는 차가운 이유

KBS와는 다른 사풍을 갖고 있는 MBC는 이 전국 시대 상황에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KBS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던 것과 상반되게 MBC 예능은 스타 PD에 의해 유지되어왔다. 현재 중앙 종편 jTBC의 주철환 본부장이나 CJ E&M 방송부문 송창의 본부장은 모두 MBC가 배출한 스타 PD이다.

이 밖에도 자타가 공인하는 <나는 가수다>를 만든 김영희 PD, <무한도전>의 김태호 PD, <황금어장>을 만든 여운혁 PD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PD 스타가 배출될 수 있는 조직은 그만큼 PD의 움직임에 대해 ‘쿨’할 수밖에 없다. PD 입장에서는 충분한 기회를 주는 MBC라는 조직이 가진 장점과 그럼에도 이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을 비교·분석해서 각자 자신의 위치에 맞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중앙 종편으로 이적한 여운혁 PD는 스타 PD는 맞지만 사실상 현장 PD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 이적의 이유가 드러난다. 반면 김영희 PD는 현재도 여전히 현장에 있고 그만큼 방송사에서도 예우를 해주는 상황이라 쉽게 이적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방송가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김영희 PD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것을 허용해주는 방송사의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김태호 PD는 예외적이다. 그는 물론 MBC에 애착을 갖고 있지만, 방송사에 그다지 목을 매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무한도전>이라는 브랜드에 더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무한도전>이 MBC에 귀속되어 있는 한 그가 움직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MBC 출신 PD가 이적을 택하는 이유는 각 종편에 MBC 출신이 두루 포진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적은 이적료나 새로운 분위기 등을 생각하면 당장에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불안감도 안겨준다. 이럴 경우 주철환 같은 선배가 본부장으로 앉아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여운혁 PD나 <우리 결혼했어요>와 <위대한 탄생>을 연출한 임정아 PD 그리고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일밤-단비> <추억이 빛나는 밤에>를 연출한 성치경 PD가 jTBC로 옮기게 된 데는 이런 이유가 한몫을 차지한다.

반면 SBS가 유독 이적 이야기가 없는 것은 거꾸로 이런 이적에 따른 고용 불안을 해소시켜줄 만한 선배 스타 PD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SBS 예능은 스타 PD를 키우기보다는 외주 제작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고 경쟁력을 높여왔다. SBS 예능이 자신만의 개성을 만들어내기보다는 기존 코드를 가져와 최적화하는 방식으로 유지된 데는 이런 특징이 투영된 결과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시스템을 가진 SBS가, 스타 PD뿐만 아니라 스타 MC를 끌어오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SBS 예능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강호동이 과연 SBS의 주말 예능으로 들어오느냐 하는 점이다. 이것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이다. 강호동의 의중이 출연료 크기가 아니라 프로덕션을 차려 아예 자체 콘텐츠를 생산·납품하는 데 있다면 그 종착점으로는 MBC나 KBS보다 SBS가 가장 유력하다.

KBS는 상업적 행보에 둔감할 수밖에 없고, MBC는 스타 MC를 끌어다 효과를 보려 하기보다는 스타를 키우려 하는 습속이 있다. 종편은 여러모로 강호동에게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SBS 이적설이 근거를 갖게 되는 것이다. 유재석의 <런닝맨>이 점점 위치를 만들어가고 있는 상황에 강호동이 SBS 주말 예능에 가세하면 유재석과 강호동 쌍두마차를 앞세워 주말 예능을 접수할 수 있다. 방송사의 위상을 만들어내는 주말 예능의 판도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카드이다. 

중앙 종편 예능과 조선 종편의 인포테인먼트

빼앗긴 자가 있으면 가져간 자도 있는 법. 중앙 종편은 이 스카우트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주철환을 본부장으로 세워두고 여운혁 PD를 비롯해 임정아 PD, 그리고 성치경 PD를 MBC에서 끌어온 중앙 종편은 KBS에서도 이동희 PD를 위시해 <승승장구>의 윤현준 PD, <1박2일>의 신효정 PD 등 다양한 인력을 끌어들였다. 중앙 종편의 이런 움직임은 과거 TBC 방송국을 운영했던 경험이 작용한 덕분이다. 결국 방송은 예능이 그만한 위치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확신이다.

중앙 종편의 방송 경험은 상대적으로 신문사로서의 위상에서 발을 빼기 어려운 조선 종편보다 유리하게 작용한다. 중앙 종편이 오락과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인력을 대거 유입하고 있는 반면, 조선 종편은 자극적인 오락을 추구하는 것에 보수언론으로서의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김수현 작가가 조선 종편의 개국 작품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는, 예능보다 드라마에 더 집중하게 되는 조선 종편의 상황을 잘 말해준다.

물론 조선 종편이라고 예능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방송의 핵심이라는 것을 조선 종편이 모를 리 없다. 최근 조선 종편으로 스카우트된 김일중 작가는 조선의 예능이 어떤 성격의 것인가를 대충 짐작하게 만든다. 김일중 작가는 최근까지 tvN에서 <열광>이라는, 시사를 소재로 하는 예능 토크쇼를 만들어왔다. 그는 “예능 같지 않은 예능에 더 관심이 많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조선 종편의 예능은 보도 기능으로서의 조선일보와 연계할 수 있는 인포테인먼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이다.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나머지 두 종편인 동아 종편과 매경 종편의 움직임이 잘 포착되지 않는 것은 의외이다. 동아나 매경의 종편에서는 중앙 종편이 하듯이 먼저 재미를 포착해 시청자들의 눈을 돌리든가, 아니면 조선 종편을 통해 조선일보라는 매체의 확장을 꿈꾸든가 하는 전략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벌써부터 종편 전쟁에서 이 두 종편이 생존할 수 있을까를 의심하기도 한다.

CJ E&M,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전국 시대의 대혼란 속에 서 있는 CJ E&M의 움직임이다. 종편 채널 확보 레이스에는 불참했지만, 막상 종편 전쟁이 가속화될 조짐을 보이자 오히려 종편보다 더 빨리 장수를 영입하는 CJ E&M의 속내는 도대체 무엇일까. 여기에는 어찌 보면 종편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CJ E&M의 자신감과 야심이 어른거린다. 백전노장 송창의 PD를 대표로 세우고 자체 제작 방송의 가능성을 타진했던 tvN은 이미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고, Mnet의 <슈퍼스타K>로 지상파 프로그램을 눌렀다. 케이블로서의 정확한 틈새를 계산해, 그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바꾸는 작업은 이제 CJ E&M의 새로운 노하우가 된 셈이다.

그런 그들이 이명한 PD에 이어 신원호 PD를 스카우트해 사수-부사수로서 프로그램 런칭을 준비시키고 있고, <개그콘서트>의 김석현 PD도 끌어들였다. 스카우트 전쟁에서 가져오지 못하면 뺏기는 것이기에 어느 쪽으로든 두 배의 효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다른 종편으로 갈 가능성이 있는 인재를 끌어오는 것은 일종의 ‘1타 2피’인 셈이다. 게다가 향후 도태될 종편의 가장 유력한 인수자로 꼽히는 CJ E&M의 자금력을 생각해보면 이런 포석은 그때까지도 염두에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스타 PD가 가지고 있는 힘도 무시하지 못한다. 케이블과 지상파 사이의 간극을 좁혀온 CJ E&M으로서는 기성 스타 PD가 갖고 있는 코드로 좀 더 넓은 시청층을 끌어들이겠다는 야심을 세울 만하다. 김석현 PD가 컴백할 예정인 <코미디 빅리그>는 여러모로 <개그콘서트>의 케이블 버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 이명한 PD와 신원호 PD가 준비하고 있는 예능은 리얼버라이어티쇼 형식을 활용하면서도 그 바깥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춘추 전국 시대의 진군나팔은 벌써 울렸다. 누구의 전략이 맞아떨어질지 궁금해진다.


 이적료 둘러싼 심리전도 ‘후끈’

종편 스카우트 전쟁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이적료이다. ‘누가 얼마를 받고 어디로 움직였다’라는 얘기는,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현업 PD마저 뒤흔들어놓는다. 방송가에서는 이번 종편발 스카우트 전쟁에서 특A급 PD가 10억~15억원대의 이적료를 받았고, 보통은 3억~4억원대의 계약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것은 확실한 것이 아니다. ‘이적료’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적료가 실제와는 상관없이 어떻게 알려지느냐는 것 자체가 스카우트 전쟁의 정교한 심리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카우트 경쟁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방송가에서는 ‘누가 어디로 이적한다더라’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이 루머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대부분은 스카우터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PD 중 ○○가 이미 옮기기로 결정했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소문에 소문을 타고 방송가를 술렁거리게 만들기 마련이다. 여기에 이적료의 규모가 덧붙으면 소문의 위력은 배가되기 마련이다. ‘누구에게 어디서 얼마를 제시했다더라’라는 소문은 사실이 아닐지라도 스카우트 표적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여주는 스카우트 전쟁터의 풍향계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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