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너무 무서워 겉도는 아이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1.09.04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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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가정 자녀들, ‘왕따’ 등으로 공교육에서 이탈하는 경우 많아

▲ 지구촌 국제학교의 한 학생이 김영석 교장과 함께 동화책을 읽고 있다. ⓒ지구촌국제학교 제공

과연 우리 사회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교육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을까. 다문화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이 확산되고 재정적 지원이 늘어나면서 상황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한계 또한 분명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여전히 관련 인프라가 부족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이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편견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에 이르기까지, 실제 교육 현장에서 나타나는 어려움들은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학교에서 겉돌다가 끝내 이탈하도록 만든다.

지난 8월31일 <시사저널> 취재진은 서울 오류동에 있는 지구촌 국제학교를 찾았다. 이곳은 다문화 가정, 미등록 체류자(불법 체류자) 가정 그리고 상대적으로 빈곤한 한국 가정 자녀들의 초등교육을 위해 설립된 대안학교이다. ‘지구촌’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중국, 미얀마, 태국, 가나 등 9개국 출신 31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다.

교실에는 아이들 특유의 밝은 기운이 가득했다. 친구들과 웃고 대화하고 허물없이 장난을 쳤다. 하지만 이런 풍경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허용되지 않는 행복이었다. 외모가 조금 다르거나 말이 좀 어눌하다는 이유로 생긴 편견이 종종 또래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몇몇 아이들은 이곳에 입학하기 전 일반 학교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4학년 박연우군(가명·10)도 그랬다.

연우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한국어만 할 줄 알고 한국 음식만 먹는다. 한국인 아버지로부터 태어나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연우는 “그러면 저는 한국 사람이 분명하죠?”라고 물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피부가 상대적으로 검은 편인 연우는 학교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많이 받았다. “사람들은 저를 한국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마 저의 피부색이 검기 때문인가 봐요. 우리 엄마는 아프리카 가나에서 오셨어요. 피부색이 검은 흑인이에요. 저도 피부색이 검게 태어났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불만이 참 많았어요. 나는 왜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까 하고요.” 연우는 “자기들끼리 놀면서 왕따를 시킬 때 정말 힘이 들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는 가고 싶지 않아요”라고 덧붙였다.

다행히 연우는 지구촌 국제학교에 입학한 이후 안정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피부색이나 쓰는 언어가 달라도 서로 어울리는 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에 비해 교보재가 잘 확충된 것도, 시설이 월등히 쾌적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연우를 비롯한 아이들은 그 어떤 초등학생보다 학교에 오는 것을 좋아한다. 이곳에서는 어떠한 편견에도 시달리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보통 시민’으로 바라봐주지 않는다. 지구촌 국제학교 맹경희 교무부장은 “학교 안에 있으면 너무나 즐거워하는 아이들이, 밖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왜 그럴까 궁금해서 아이들의 뒤를 따라가 보았다. 금방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선이 온통 아이들에게 쏠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무심코 던지는 익명의 시선은 그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이방인임을 말해주는 불편한 증거인 셈이다. 특히 맹경희 부장은 모든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을 ‘차별받는 아이’ 혹은 ‘고통받는 아이’로 단정 짓는 고정 관념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것도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과 선을 긋는 편견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일반 학교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실제 교육 현장에서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벽’ 때문이다. 현 공교육 체제에서 다문화 가정 자녀들은 대개 한 학급당 한두 명씩 분산되어 교육을 받는다. 우리 사회 문화에 자연스럽게 적응하도록 하기 위한 통합 교육 원칙 때문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소외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 학급에 속한 많은 수의 학생을 교사 한 명이 일률적으로 지도하는 시스템 탓이다.

이에 대해 공립 학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교사는 “언어가 특히 문제가 된다. 한국어에 능숙하지 않은 아이에게는 더욱 세심한 지도가 필요한데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부모님의 한국어가 서툴 경우에는 아이의 학교생활을 가정에서 충분히 보살펴주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 탓에 준비물을 못 챙기거나 숙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것이 학업 성취도나 교사와의 관계에 악영향을 준다. 통합 교육의 좋은 취지가 무색해지는 셈이다.

▲ 지구촌 국제학교 학생들이 외국인 교사로부터 수업을 받고 있다. ⓒ지구촌국제학교 제공

전체의 17%가 학교 다니지 않아

이러한 편견과 무관심은 다문화 가정 자녀에게 마음의 상처로 남게 된다. 이 상처가 아이들을 학교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원희목 한나라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참고하면, 지난 2009년 취학 연령대 전체 다문화 가정 자녀 4만2천6백76명 가운데 학교에 다니는 자녀는 3만5천3백16명이었다. 전체의 17%에 해당하는, 약 7천여 명의 자녀들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자료의 ‘다문화 가족’에는 외국인 부부의 자녀, 미등록 체류자의 자녀가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실제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자녀의 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연우처럼 대안 교육에 의지하는 것은 운이 좋은 경우이다. 현재 이들을 수용할 대안학교의 수가 많지 않다는 것을 고려할 때, 아예 교육을 받지 못하는 자녀들이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상급 학교로 진학할수록 재학률이 감소하는 점이 주목된다. 초등학교 연령 자녀와 중학교 연령 자녀의 재학률이 각각 86%, 84%인 데 반해 고등학교 연령 자녀의 재학률은 70%로 뚝 떨어진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만 13세부터 19세까지의 다문화 가정 자녀들에게 중등 교육을 제공하는 ‘들꽃 피는 학교’ 민경석 교장은 “고등학교의 경우 적응하기가 더욱 어렵다. 고등학교 교과 수준은 어지간한 수준의 언어 능력이 아니고서는 따라잡기 힘든 수준이다. 초등학교나 중학교는 그나마 학습량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면 따라잡는 것이 가능하기도 하다. 하지만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로 몇 개월 (학교에) 있다가 버티지 못하고 나오는 학생들을 많이 보았다”라고 말했다.

특히 외국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한국으로 온 ‘중도 입국 자녀’의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재학률이 각각 60.3%와 55.7%, 고등학교 재학률이 30.6%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중도 입국한 고등학생 연령의 자녀 10명 중 7명이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는 문화 차이로 인한 적응의 문제가 크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민교장은 “어리고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생소한 문화권으로 떨어져 나와 심리적으로 불안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학업 성적이 저조하고 칭찬받을 구석이 없으니 자존감마저 매우 떨어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한국 내 다문화 가정의 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간다. 이에 따라 다문화 가정의 자녀 또한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품어 충분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단순히 교육권을 보장하는 차원을 넘어 국제 관계나 예·체능 분야 등에서 경쟁력을 갖춘 인재로 충분히 육성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구촌 국제학교의 설립자인 김해성 목사는 지금이 다문화 사회의 첫 단추를 끼우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차대한 시점이다.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사회가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사회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심각한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다문화’를 자산으로 삼아 다양성 넘치는 인재를 길러낼 것인가. 아니면 울분으로 뭉친 갈등의 불씨를 피워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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