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경기에서 역전승을 꿈꾸게 하라
  •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11.09.2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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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날 수 없는’ 사회에 대한 무기력을 벗어내려면…

ⓒhoneypapa@naver.com

평균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현재의 10대들은 건강 관리를 꾸준히 하고 사고를 당할 확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면 아마도 평균 90세까지는 살 것이 확실해 보인다. 심지어 의학과 생명공학의 발달 덕분에 평균 수명이 1백20세가 되는 시대를 생각보다 빠른 시점에 만나게 될 것이라는 전망들도 나오고 있다(<시사저널> 제1123호). 대다수 동물은 신체가 성장하는 기간의 여섯 배 정도를 살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20세까지 신체적인 성장이 진행되는 인간은 그 여섯 배에 해당하는 1백20세까지 살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평균 수명을 90세라고 가정하면, 야구로 치면 인생이라는 게임은 승부가 9회까지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야구는 1회에서 9회까지 경기를 하고, 9회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하는 경우에는 연장전에 돌입한다. 요즘 프로야구에서 연장전을 12회까지만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야구 경기는 마치 인간의 수명을 토대로 경기 시간을 배정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야구뿐만이 아니다. 축구도 경기 시간이 전·후반 90분으로 정해져 있다. 보통은 90분이 되면 경기가 종료되지만, 토너먼트 경기에서는 90분 안에 승부가 결정되지 않으면 30분간의 연장전에 돌입하게 된다. 총 1백20분의 경기 시간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야구나 축구의 경기 시간이 요즘 10대들의 예측된 평균 수명 90세와 가설적인 최고 수명 1백20세에 맞아 떨어진다.

인생도 스포츠도 한 편의 드라마

인생을 야구 경기 시간에 대응해보면, 10대는 인생이라는 야구 경기에서 1회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50대가 마무리되면, 야구 경기에서 5회가 끝나고 경기장을 한 번 정리하는 시간을 갖듯이, 지금까지의 인생을 은퇴나 다른 방식으로 한 번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경기가 마지막 회를 향해 갈수록 마무리 투수가 등장할 시점이 가까워진다. 인생을 축구 경기에 비유하면, 대학생이 되는 18세는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린 후 18분이 경과한 시점에 해당한다. 45분의 전반전이 마무리되고 나면, 인생의 나머지 후반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

스포츠 경기를 한 편의 드라마로 표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극적인 역전승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패배가 분명해 보였던 팀이나 선수가 경기 막판에 승부를 뒤집는 역전승이야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스포츠 경기에 빠져들게 하는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이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채널 ESPN은 2010년에 ‘월드컵 쇼크(World Cup Shocks)’라는 제목으로 역대 월드컵 경기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 10대 이변을 선정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벌어진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이었다.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졌던 당시 경기에서 한국은 이탈리아의 크리스티안 비에리에게 선제 헤딩골을 허용하며 0-1로 끌려갔다. 하지만 경기가 거의 끝날 무렵인 후반 43분쯤에 터진 설기현의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그리고 연장 후반, ‘반지의 제왕’ 안정환의 골든골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8강 진출의 역사를 썼다.

당시 히딩크 감독의 전략이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었었다. 그는 후반전에 수비수들을 대거 빼고, 대신 공격수들을 투입했다. 많은 사람은 저러다 이탈리아에 대량 실점을 하면서 한국 축구가 큰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히딩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실점을 더 많이 해서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득점을 통해 승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역전승은 스포츠 경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도 역전 승부가 존재한다. 가장 전형적인 인생 역전 스토리는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성취하거나, 학창 시절 전혀 존재 가치가 없던 사람이 졸업 후에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런 인생 역전 스토리의 종류가 다양하고 역전의 기회가 많은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역전의 가능성을 믿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로 활력이 넘치게 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과거에 비해 이러한 역전승의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천에서 용이 날 확률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많은 젊은이들이 역전승의 가능성을 애초에 포기하고 자신의 삶의 목표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벌이나 학력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 사회에서 자기 인생에서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매우 이른 시점에 스스로 규정하는 것이다. 대학생이 된 경우에도 자신이 들어간 대학의 사회적 통념에 기초한 서열을 토대로 자신의 인생에서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제한한다. 좋게 표현하면 요즘 젊은이들이 현실적인 판단을 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인생에 대한 태도는 결국 인생 역전의 기회를 스스로 조기에 차단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공정한 심판’ 있어야 역전 승부도 가능

2002년의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처럼 스포츠 경기에서 역전승을 하는 개인이나 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심리적 특징이 있다. 하나는 자신들이 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 역전은 자신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자신을 계속 좌절시키는 사회적 편견에 굴하지 않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 같은 것이다.

최근 실시된 한 조사에서 우리나라 성인들은 학벌과 학력 차별을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차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학벌과 학력은 18세 전후에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대학 진학 여부에 따라 학력이 결정되고, 어느 대학에 들어갔느냐에 따라 학벌이 결정되는 것이다. 한번 정해진 학력과 학벌은 평생 개인을 따라다닌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90세 인생에서 18세 전후의 시기에 얼마나 시험 성적이 좋았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대학 진학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부모가 있었느냐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남은 평생 학벌과 학력 차별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반대로 다른 사람은 차별 사회의 혜택을 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야구 경기로 치면 1회, 축구의 경우에는 전반전 18분이 된 시점에서 점수가 높은 팀과 낮은 팀을 구분하고, 그 다음부터는 심판이 점수가 높은 팀에게는 유리한 판정을 계속하고 점수가 낮은 팀에게는 불리한 판정을 9회 또는 90분 내내 지속하는 것과 같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현실의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차별적 판정의 피해자를 포함해서 대다수 관중이 이러한 심판의 판정에 큰 불만 없이 동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8세 전후의 시기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대입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존중받을 만한 성취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90년 인생에서 이 시점의 성취만을 토대로 남은 인생 내내 어떤 차별이 가해진다면 이것은 명백한 반칙이다.

따라서 스포츠나 인생 모두에서 역전 승부가 가능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바로 공정한 심판의 존재이다. 그리고 공정한 심판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관중과 선수들이 선택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심리학의 힘 P: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11가지 비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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