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표류’하고 곳곳에서 ‘격동’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1.09.2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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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세계 정치 기상도 / 미국·러시아·프랑스 등 주요 10여 개국에서 대선 등으로 권력 변화 예상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칠레가 새로운 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순간에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은 의미를 상실했다. 애당초 너무 많은 짐을 떠안은 것이 잘못이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퇴색했다. 천문학적 국가 부채는 부도 위기까지 갔고, 실업률은 9%나 된다. 8월 중에는 고용이 단 한 건도 없었다. 1945년 이후 처음이다. 공화당은 이를 두고 “오바마는 제로 대통령이다”라고 비꼬았다.

9·11 사태가 10주년을 맞았으나 미국은 10년 전보다 더 안전하지 못하다.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어도 9·11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알카에다가 비틀거린다고 해서 테러가 줄어든 것도 아니다. 노르웨이는 자생 테러로 몸살을 앓았다. 분명히 새로운 세계 질서가 태동하고 있다. 유럽이 주요 위기에서 한가롭게 잠자고 있는 동안 아랍에서는 독재 정권들이 퇴장하고 있다. 이 틈을 타 이슬람 극단주의를 완화한 세속주의로 국력을 키운 터키가 중동의 맹주로 등장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아직 안갯속이다.

지구촌의 안정과 번영 좌우할 전환점

2012년은 그 어느 해보다도 세계 정치에서 격동의 한 해가 될 전망이다.

2012년 세계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다. 하지만 러시아, 인도, 터키, 일본, 한국, 브라질의 역할도 유의할 일이다. 2012년은 여러 관점에서 지구촌의 안정과 번영을 좌우할 전환점이다. 1세기 전의 세계는 정치 지도자들의 오판으로 1차 대전을 일으켰고, 이것은 다시 대공황으로 이어져 2차 대전을 유발했다. 이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은 지난 10년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두 나라에서 전쟁에 1조3천억 달러를 썼다. 이 천문학적 전비를 쓰고도 미국 경제에 전쟁 특수는 오지 않았다. 나타난 것은 예산 적자와 국가 부채 증가 그리고 비틀거리는 경제뿐이다. 올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지출된 전비만 1천2백억 달러이다. 이 돈이 어째서 미국 경제를 살리는 데는 한 푼도 쓰이지 않느냐는 불만이 도처에서 나온다.

2012년의 세계 정치 기상은 현재로서는 시계(視界) 제로 상태이다. 내년에는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독일, 이란 등 10여 개 국가에서 대통령 선거 등이 치러진다. 관심의 초점은 오바마의 재선 여부이다. 민주당이나 공화당에서 아직 두각을 나타내는 경쟁자가 없어 오바마의 재선 가능성은 50 대 50으로 전망되지만 경제 회복이 관건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고 엄청난 전비를 국내 고용 창출로 돌릴 수 있다면 오바마에게 다시 기회가 올 수 있다.

리비아 사태 개입이 득이 될지 독이 될지도 미지수이다. 중국에서는 후진타오(胡錦濤)가 물러가고 시진핑(習近平)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국가주석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중국의 정권 변동은 공산당 체제의 특성상 서방 국가의 정권 교체와는 의미가 다르다. 다만 시진핑이 전임자에 비해 더욱 개방적 마인드를 가졌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변화는 예상되지만 지각 변동 같은 변혁은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소득 격차로 인한 인민들의 불만과 소수 민족들의 소요로 예상 외의 격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3기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된다. 비밀경찰(KGB) 출신으로 스탈린주의로의 복귀를 노리는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국제 무대에서 러시아의 목소리가 커질 것은 분명하고, 그에 따른 미국과의 갈등도 예견된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사회당의 유력 경쟁자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이 뉴욕 호텔에서의 섹스 추문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직에서 낙마함으로써 재선이 유력해 보이지만 프랑스 역시 경제 침체로 고전하고 있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일련의 지방선거에서 패배할 듯하다. 사르코지가 재선된다면 메르켈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약화될 것이고, 유럽연합(EU)의 주도권은 프랑스로 넘어간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2009년 선거 부정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재선에 도전할 예정이나 당선 가능성은 미지수이다. 더구나 신정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와의 권력 암투까지 겹쳐 전도는 어둡다.

미국인 60% “미국이 잘못된 길 가고 있다” 

그 밖에 지난 2월 민주화 봉기로 정권이 무너진 이집트와 튀니지 그리고 최근 카다피의 퇴장으로 권력 공백이 생긴 리비아에서 누가 정권을 잡느냐 하는 것도 관심의 대상이다. 현재 참혹한 유혈 사태가 계속되고 있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혹시 실각한다면 역시 후임 문제가 변수로 떠오른다. 미국 예일 대학의 폴 케네디 교수는 내년 세계 정치 전망과 관련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미국의 ‘표류’(drift)를 지적했다. 퓨(Pew) 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0%는 미국이 현재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소모적 전쟁을 너무 오래 했고, 설상가상으로 민주·공화 양당이 사사건건 정쟁만 하고 있어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케네디 교수의 한탄은 미국인의 절대 다수가 중국과 러시아의 등장이나 중동의 민주화보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 지위로 복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전쟁이 났을 때 함께 싸워줄 나라는 어디이냐고 묻는 질문에 다수의 미국인들은 영국뿐이라고 응답했다. 영국 외에는 그 어떤 나라를 위해서도 피를 흘릴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이것은 미국의 신고립주의를 예고하는 것이다. 9·11이 미국에 남긴 가장 중대한 상처는 주요 세계사에서 미국이 소외되거나 스스로 무관심해진 점이다. 또 다른 후유증은 경제 대국으로서의 경쟁력과 신뢰를 상실한 것이다. 최근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두고 러시아와 중국 지도자들이 미국을 조롱한 일은 예사롭지 않다. 미국이 원래의 자리로 복귀하느냐의 여부는 워싱턴 정치인들의 각성에 달렸다. 이 점에서 오바마의 재선 여부는 미국의 진로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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