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길 지키는 ‘또 다른 가족’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1.09.2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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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병동을 움직이는 일꾼들의 24시 밀착 취재 / 성직자·자원봉사자도 환자 돌보기에 열성

▲ 서울 구로구 고대구로병원 완화의료센터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이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시사저널 윤성호

고대구로병원 호스피스 병동인 완화의료센터는 말기암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편안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완화의료센터에서는 환자들의 통증 완화와 복수 제거와 같은 신체적 치료에서부터 심리 치료 및 영적 상담과 같은 사회적 치료 등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다.

고대구로병원 완화의료센터팀은 주치의 및 전문의로 구성된 의료진과 수간호사, 코디네이터, 영적심리상담사 및 사회복지사, 영양사, 약제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원목실의 성직자와 자원봉사자가 합류해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기자는 지난 8월22일부터 9월4일까지 14일 동안 고대구로병원 완화의료센터에서 생활하며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수많은 일꾼의 일상을 밀착 취재했다.

매일 오전 8시. 고대구로병원 지하 1층에 있는 가정의학과 회의실 의국에서는 회의가 한창이다. 가정의학과의 여덟 명 남짓한 의료진은 매일 이곳에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의 심리 및 신체 상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1시간 정도 진행되는 회의를 마친 뒤에는 바로 8층의 완화의료센터로 이동해 회진을 시작한다. 

▲ 고대 구로병원 완화의료센터의 의료진이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환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다양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시사저널 윤성호
“오늘 기분은 좀 어떠세요.” 8층 병실에 들어서면 아침 진찰을 나온 의료진의 방문에 잠을 깬 환자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대개가 전날 통증으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무기력한 모습들이다. 의료진은 환자들의 통증이 덜한지 더한지, 잠은 잘 자는지, 음식은 얼마나 먹는지 정도를 살펴보는 수준으로 진찰을 마무리한다. 아침에 너무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자칫 환자들에게 무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회진이 끝날 즈음이면 완화의료센터 내 다양한 팀들의 의사소통 역할을 맡고 있는 코디네이터가 환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개별적인 상담을 시작한다. 곽지현 코디네이터(31)는 “이곳은 팀별로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누가 무엇을 하는지 잘 포착해두어야 한다. 또 완화의료센터에서는 환자들의 심리와 신체 상태뿐만 아니라 상담을 통해 사회·재정 상태까지 세밀하게 살핀다. 이를 통해 후원 기관의 지원 및 무료 간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환자가 원할 경우 ‘영적 돌봄’ 서비스 제공

완화의료센터의 진료 대상에는 환자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도 포함되어 있다. 24시간 환자의 곁에서 간호에 매달리는 가족들 가운데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완화의료센터의 원예 치료와 미술 치료, 음악 치료 및 영적 상담 치료에는 대부분 환자와 그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완화의료센터의 임지현 미술치료사(33)는 “사실 가족들 가운데에서는 간병 생활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다가올 가족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미술 치료를 통해 가족 간에 마음의 문을 열거나 자신 혹은 가족의 죽음에 대해서 의미를 되새기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라고 설명했다.

▲ 완화의료센터에서는 영적 치유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완화의료센터의 영적심리상담사가 환자와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위), 자원봉사자인 비르짓다수녀가 환자를 위해 기도를 하고 있다(아래). ⓒ시사저널 박은숙

환자들이 원하는 경우에는 ‘영적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양은숙 영적심리상담 코디네이터(50)는 “영적 돌봄이라는 것이 거창한 것은 아니다. 이야기를 통해 환자의 심리 상태를 분석하는 전인적인 치료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환자의 가족들이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주 한 보호자는 오랜 병원 생활로 인해 우울감이 심각할 정도였는데, 이를 터놓고 말할 곳이 없어 자신의 심정을 장문의 글로 써서 상담을 의뢰한 적도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 ⓒ시사저널 윤성호
영적 돌봄 활동은 영적심리상담사 이외에 고대구로병원 원목실의 성직자와 자원봉사자가 함께하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고대구로병원 완화의료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비르짓다 수녀(72)는 “죽음에 이르기 전 종교에 귀의하는 이들이 많다. 내가 하는 일에 별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대세(생명이 위급할 때 세례를 베푸는 행위)를 받고 기뻐하는 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의무감을 가지고 찾게 된다”라고 말했다.

고대구로병원에서 비르짓다 수녀와 만난 지난 8월31일 세례받기를 청하는 환자가 있었다. 완화의료센터에 머무르고 있던 환자 이철운씨는 “다른 환자들에게 기도를 드리는 수녀님의 모습을 보니 나 역시도 기도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곧 죽을 날이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세례를 꼭 받고 싶다”라며 비르짓다 수녀에게 도움을 청했다. 비르짓다 수녀는 “언젠가 나 역시도 죽을 준비를 해야 할 것 아니겠나. 이곳에서 활동을 하면서 그 과정이 꽤 어려운 한편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금 내가 활동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고요한 듯이 보이는 완화의료센터가 잠시나마 활기를 찾는 시간은 바로 자원봉사자들이 방문할 즈음이다. 고대구로병원 완화의료센터에서는 총 22명의 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다. 환자와 가장 많이 접촉하는 이들이 바로 자원봉사자이다. 그들은 손과 발 마사지에서부터, 목욕과 발을 씻기는 것 같은 일상 활동을 돕는가 하면 말기암 환자들의 말 동무가 되어주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자원봉사자 되는 길도 만만치 않아

호스피스 병동의 자원봉사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동안 진행되는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을 이수하면 수료증이 나오는데, 수료증을 받고 나서도 3개월 정도 정기적으로 활동을 이어가야 비로소 자원봉사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3개월이라는 수습 기간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봉사자도 꽤 많다.

고대구로병원 완화의료센터에서 4년째 세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미용사 출신의 조광심씨(63)는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을 받으면서 직접 관에 들어가보는 등 특별한 체험을 많이 했다. 호스피스 자원 봉사 활동은 위중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라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나는 일부러 환자들의 얼굴은 익히지 않으려고 한다. 한 주 지나고 나면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아 심리적으로 영향을 꽤 많이 받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윤성호
호스피스 병동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은 바로 ‘아무리 두들겨도 열리지 않는 환자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다. 병실의 침대 위에 누워 온종일 잠만 청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또 환자 가운데에는 온몸의 통증으로 누군가의 손길이 닿는 것 자체를 꺼리는 이들도 있다. 자원봉사자 박명자씨(60)는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굳게 닫힌 문이 열린다. 한번이라도 더 손을 잡으려고 하고, 한마디라도 더 말을 나누려고 하면 아무리 지쳐 있는 사람이라도 저절로 마음을 연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 12월부터 고대구로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박씨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만났던 한 환자가 아직까지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소문난 조폭이었던 그는 자기가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올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그도 이곳에서 생활하며 죽음을 인정했다. 죽기 전에 그는 내게 ‘이모, 내가 먼저 가서 좋은 자리 마련해둘 테니 걱정마라’라는 농담을 던졌다. 그런 것을 보면 누구나 결국은 인정하게 되는 것이 바로 죽는다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온 이들은 대개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죽음을 인정 하든 부정하든 그 결과는 항상 같다. 편안한 임종을 맞이하기 위해 찾는 곳, 호스피스 병동. 이곳에서 죽음은 일상처럼 흔한 것처럼 여겨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알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고대구로병원 완화의료센터의 이준용 교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가 바로 임종을 미리 예상하는 것이다. 호스피스 병동은 5인실에 있는 멀쩡해 보이는 환자가 다음 날 바로 죽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다. 때문에 임종의 순간을 고지하는 것은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환자 가족들은 항상 왜 미리 임종을 알려주지 않았느냐며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많아서 난감하다”라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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